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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뮤지엄 산, 안도 다다오와 리처드 세라의 대화 ②

[최영식의 뮤지엄 순례]

뮤지엄 산

현재 뮤지엄 산에서는 스위스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Ugo Roninone)의 개인전 "BURN TO SHINE"이 열리고 있다.

뮤지엄의 세 전시실은 물론 야외 스톤 가든을 아우르며 40여 점의 작품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대표작 <노란색과 빨간색의 수도승>은 1층 백남준관에 있다. 작품도 훌륭하지만, 안도 다다오의 안과 밖의 ‘조화’라는 철학에서 볼 때, 미국 뉴욕 허드슨 강변에 있는 현대미술관 디아 비컨(Dia Beacon)의 리처드 세라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다.

디아 비컨에 전시 중인 리처드 세라의 '비틀린 타워(Torqued Ellipse)' , 2024년 1월 촬영


디아 비컨에 전시중인 '비틀린 타워(Torqued Ellipse)', 2024년 1월 촬영

금년 1월 디아 비컨에서 리처드 세라의 <비틀린 타워(Torqued Ellipse)>를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있다는 감정이었다. 세라에게 신체의 지각은 중요한 화두였다. 우리의 몸이 공간을 어떻게 지각하는가. 몸이 지각의 측정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공간이 곧 작품의 내용을 구성한다는 미니멀리즘 철학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비틀린 타워>는 1996년 한 겹의 타원 형태로 시작했다. 거대한 철판을 위가 열린 형태로 구부려 만든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작품 밖에서 안이 보이고, 안으로 들어간 관람객은 열린 윗 공간으로 밖과 소통한다. 작품 앞에 섰을 때 처음으로 느끼는 것은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세라의 작품은 그 크기와 무게로 한눈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어렵다.

'비틀린 타워' 내부모습


대신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품 안으로 들어가서 경험하게 된다. 거대한 강철 벽들이 곡선과 비틀림을 이루며 공간의 흐름을 재창조한다. 마치 거대한 미로 속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좁아졌다가 넓어지는 통로와 벽은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며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한다.


작품 내부를 거닐 때 강철의 차가운 질감과 중량감이 손끝에서 느껴지며, 세라의 정교한 설계가 빚어낸 형태의 왜곡과 변화가 시각적으로 펼쳐진다. 관람객은 작품과 하나가 된 듯한 몰입감을 느끼게 된다.

'비틀린 타워' 외부로 나가는 공간

리처드 세라는 이 작품을 통해 단순한 조형미 이상의 것을 추구했다. 공간의 본질을 탐구하게 하고 물리적 존재감과 심리적 경험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작품 안에서 느껴지는 고요와 압도적 존재감은 자신의 존재와 공간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는 사유의 순간이다.


안도 다다오의 백남준관 역시 안에서 밖이 보이고 공간의 꼭대기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창문을 통해서 안과 밖의 경계가 없어진다.

백남준관 입구


백남준관 천장

뮤지엄 산의 공간이 보여주는 경계의 허물어짐은 건물 안이라는 분명한 물리적 공간 속에 위치한 백남준관으로 이어져서, 작품을 경험할 때 인위적인 공간의 경계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공간의 경계를 허문다는 공통점과 함께 둘 사이에는 ‘빛의 활용’이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디아 비컨의 별명은 ‘자연광 미술관(Daylight museum)'이다. 사계절 늘 변하는 햇볕이 미술관 구석구석을 비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광이 작품과 만나 독특한 공명을 한다. 그 공명이 가장 극대화 되는 작품이 세라의 <비틀린 타워>이다.

'비틀린 타워' 외부에서 바라 보는 모습

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독특한 빛 그림자를 만들어 낸다. 계절에 따라 빛이 들어오는 각도가 달라지기에 자연스레 세라의 작품도 다양한 매력을 갖게 된다.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의 또 다른 면모를 드러내며, 한 번의 방문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다채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뮤지엄 산 역시 지붕과 벽체 사이 공간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뮤지엄 산의 천장 벽면 자연광

안도 다다오는 자연광을 건축물에 도입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공간이 변모하도록 설계했다. 이로 인해 방문객은 하루 동안 다양한 얼굴을 가진 건축물을 경험할 수 있다. 내부 공간은 단순한 전시실을 넘어, 관람객이 직접 몸으로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의 역할을 한다. 각 전시실과 복도,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공간의 깊이와 분위기를 변화시키며, 건축물 자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뮤지엄 산의 자연광은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것을 넘어 방문객들에게 자연과의 조화와 연결을 느끼게 한다. 이는 중세시대 성당의 자연광과 비슷한 면이 있다. 중세의 성당은 높은 천장과 커다란 창문을 통해 자연광을 최대한 활용하여,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신앙적 경험을 증진시켰다.


‘위대한 성당의 시대’였던 1150~1250년 1세기 동안 진행된 고딕 건축의 특징은 풍부한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대형 창문의 설치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신성한 창을 통해 밀려드는 기적과 같은 빛은 하나님의 영혼이 신비롭게 현시된 성광(聖光)으로 화한다.

파리 노트르담성당

마치 하늘에서 비추는 빛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것처럼, 뮤지엄 산의 자연광 역시 방문객들에게 자연과 인간의 심오한 조화를 부여한다. 백남준관의 꼭대기 유리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인공의 공간 안에서 자연의 신비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이다.


백남준관의 유리 천장에서 바로크 시대 천재 조각가 잔로렌초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 1598-1680)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1645-1652)의 ‘작열하는’ 광채를 떠올린다면 비약일까?

잔로렌초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 로마 산타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베르니니의 성스러운 광채처럼 백남준관의 자연광 아래 빛나는 작품은 신앙적 의미를 가진 <노란색과 빨간색의 수도승>이었다. 재미있는 공통점이다.

노란색과 빡간색의 수도승

뮤지엄 산의 자연광은 중세 성당과 유사한 면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다. 성당은 하늘에서 비치는 빛을 통해 신성한 경험을 부각시킨 반면, 뮤지엄 산은 예술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며 공간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예술적 창작물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고 있다. 그렇지만 두 건축물은 모두 자연과 인간의 연결과 조화를 강조하는 공통점이 있다. 시공간을 넘어 교감하는 예술의 미적 가치를 뮤지엄 산에서 충분히 누리는 시간이었다.


기자는 뮤지엄 산의 관람을 마칠 즈음 신기한 점을 알게 되었다. 이곳의 리조트는 주변이 온통 골프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곳이다. 기자가 뮤지엄 산으로 오는 옆으로도 평일 골퍼들이 홀마다 골프를 즐기고 있었다.

뮤지엄 산으로 오는 도로변의 골프장 모습

그런데 뮤지엄 산에 들어온 후에는 인공의 공간인 골프장을 볼 수 없었다. 안도 다다오는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건축물이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공적인 골프장과 대조되는 뮤지엄 산의 모습은 인간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한다.


OUTDOOR GARDEN에서 전시 중인 우고 론디노네의 <수도승과 수녀> 시리즈에 대한 퀴즈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아래 두 조각 중 어느 쪽이 수도승이고 어느 쪽이 수녀일까?(힌트 : 수도승은 손을 펼치는 자세를 한다.)

수도승과 수녀


수도승과 수녀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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