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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궁극의 이름다움, 소나무에 매혹된 화가: 김영철

인물 [화가의 아뜰리에]


아뜰리에에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붓을 보여주는 김영철 화백. 붓은 한 평생 그의 절친이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화가의 아뜰리에]는 지나온 세월동안 그림 밖에 모르고 살아온 김영철 화가이다. 70년대 대학 다니면서 민중 미술에 잠시 경도되었을 때나 지금이나 구상과 비구상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화업과 후학 양성을 지속하면서 그림 인생을 꾸준히 개척한 김영철 화백을 인사동  아뜰리에를 찾아 만났다. 그의 삶과 그림 이야기를 들어 본다.

- 어떻게 해서 화가가 되었나?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미술을 시작했다. 중구 필동 남산 아래에서 살았다. 일신국민학교, 배명중학교, 한영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배명중학교 다닐 때 비구상으로 작업하는 하영식 미술 선생님을 만났고 그분의 격려와 지도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당시 미술부에 우연히 들어갔는데 거기 놓여 있는 이젤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그 감동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어릴 때부터 만화를 잘 그렸는데 이젤이 나의 미술적 감성을 깨웠다. 하영식 선생도 늘 대가들이 사사했다. 대가들이 학교에 가끔 와서 선생님을 보고 갔다. 우리는 미술반에 품평회를 한다고 이젤에 그림을 세워 놓고 있었는데, 대가되는 분이 하영식 선생 그림을 지도하고 나가면서  내 그림을 보았다. "이것은 누가 그렸는가?" 물었고, 나에게 한 칭찬 한마디가 그림 세계로 인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림 괜찮네. 열심히 하면 되겠네." 

그림은 인정을 받았지만 성적이 시원찮아 소위 '스카이'는 못 가고 아현동 추계예술을 과 수석으로 입학 했다.대학을 실기 1등으로 들어갔다. 대학원은 건국대를 졸업했다. 대학원을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학교 졸업 후 백석대 강의를 나가는데, 학교 측에서 2년 안에 대학원을 마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40대에 만학을 해서 석사가 되었다. 돌이켜 보면 다른 일은 별로 한 것 없고 한평생 그림 그리고 짬짬이 강의를 한 것 같다. 지금은 경희대에서 교육대학원 미술 과정을 맡아서 강의하고 있다. 





학창 시절의 김영철 화가





- 대학 시절에 대해 얘기해 달라.

78학번이다. 그때는 학교에서 데모를 많이 했다. 자연히 민중 미술이 주류를 이룬 시기이다. 당시 민중 미술을 하는 오윤 선생은 나보다 많이 위고, 박불동 같은 사람들과 어울렸다. 내가 한 장르는 민중 미술이 주로 하는 판화는 아니었다. 구상 작업을 많이 했다. 주로 데모하다 쉬는 장면, 방독면, 최루탄 널부러진 그림 같은 것을 수채화, 유화로 많이 그
렸다. 이런 그림을 중국 천안문 사건이 일어날 때인 1990년대 초반까지 했다. 민중 미술할 때 데모는 많이 안하고 그림으로 시대에 저항했던 것 같다. 인사동에 청년미술관이 있었는데 거기가 아지트였다. 나는 민중 미술과 일반 그림을 같이 그렸다. 차츰 민중 미술에 대한 명분을 잃어가면서 풍경을 중심으로 하는 수채화와 유화, 특히 소나무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되었다.

- 왜 소나무를 그렸나?

나는 남산 아래 필동에서 태어났다. 애국가 가사에도 있지 않은가? 남산 아래 저 소나무. 남산에는 소나무가 참 많았다. 소나무를 보고 자랐고, 지금도 소나무가 많은 인제에서 국립미술관장을 하고 있다. 필동도 남산 아랫마을에도 소나무가 많았고, 인제에 작업실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집에도 소나무 숲 사이 중앙에 있다. 나는 필동이나 인제에서나 소나무를 떠나 본 적이 없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그림의 소재인 소나무 말고 뭘 더 그리겠는가.




솔숲 사이로, 2023, 캔버스에 오일, 162*112cm




국방호텔 로비에 있는 200호의 대작 소나무 이다.




소나무의 삐죽삐죽한 것, 소나무가 모여 있을 때의 농도 변화를 디테일하게 그려보고 싶었다. 전체의 소나무 숲이 아니라 함께 모여 있을 때, 앞으로 옆으로 모여 있는 소나무의 농도 변화를 신기하게 보았다. 한 장소의 소나무를 복제하는 하이퍼리얼리즘이 아니고,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소나무를 한 장소에 모아서 함께 그리는 방식이다. (그림을 가리키며) 이거는 경복궁에 있는 소나무, 이거는 분당에 있는 소나무인데 공간을 이동해서 한 장소의 숲을 이루는 작업으로 소나무를 그렸다.

- 자신의 화풍 변화에 대해 말해 달라.

학교가 추계이다 보니 '구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학교는 거의 '비구상'이어서 나도 처음에는 비구상을 중심으로 작업을 했다. 그런데 당시가 70년대 중반아닌가? 유신 정권의 독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였다. 나도 자연히 민중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민중 미술만 한 것은 아니었다. 민중 미술과 비구상을 동시에 했다. 졸업 후엔는 '초현실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30세 이후이다. 당시 달리나 마그리트에 관심이 많았고 그분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일종의 관성, 공중 부양 등의, 주제를 더 강조하기 위해 공중에 띄우고 부각시키는 것. 마그리트의 좌상 등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을 그렸다.

- <상충된 이미지> 시리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상충된 이미지, 1994년



이 작품은 몇 가지의 다른 이미지가 한 화면 안에 그려져 있다. 왼쪽은 소나무와 구름, 아래에는 이런 자연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안내 표지판이다. 전부 각자 노는, 서로 통할 수 없는 것들이다. 풍경으로서 전혀 이질적인 것들의 조합을 배치함으로써 세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세상이 결국은 맞지 않는 것끼리의 조합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것들이 모여서 하나의 세상을 이루어 간다. 


상충된 이미지, 1994년



이 작품은 '달리'의 작품처럼 주제를 부각시키려 큰 바위를 공중으로 띄웠다. 그런데 왼쪽은 자연의 풍경이고 오른쪽은 자연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겨눔대(붉은색과 흰색의 폴대)를 등장시켰다. 소나무와 겨눔대는 이질적인 것이다. 소나무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것이고 겨눔대는 개발을 하기 위한 측량의 도구이다. 서로 상충되는것. 자연과 인공의 조합이지만 두 가지 요소 또한 상충될수록 이 세상에서 함께 공존해야 할 가치이다. 이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아뜰리에에서 소나무를 그리고 있다. 사시사철 변하지 않는 소나무는 김영철 화가의 인생 동반자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구상 계열로 돌아섰으나 지금은 구상과 비구상을 동시에 다 하는 위치이다. 구상은 구상인데 내용과 형식이 있는 작품을 많이 했다. 현재 '인사동475번지' 그룹에 속해 있다. 40대에 모인 50년대생, 70년대 학번의 모임이다. 주로 57, 58년생들이 중심을 이룬다. 15명이 모인다. 이곳의 멤버들도 구상, 비구상을 같이 작업 한다. 이분들은 민중 미술을 할 무렵부터 알게 된 사람들이다. 주로 그림의 아웃사이더라고 해야 되나. 현재는 57년생이 회장을 한다. 만장일치로 회원을 받는다.



목련, 2011



저 사진은 누구의 초상화인가?


아뜰리에에 걸려 있는 어머니 초상화



어머니의 초상화이다. 어머니는 처음에 내가 화가되는 것에 반대를 많이 했다. 화가가 되면 배를 곯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날 예수님 성화를 어머니를 위해 그려드렸다. 어머니는 큰 교회 권사님이셨는데 예수님 그림을 보고 나를 조금은 화가로 인정해 주셨다.

어머니는 신의주 태생이고 아버지는 평양의 선천지방 태생이다. 전주 김씨이다. 김일성과 같은 본관이다.  김일성이 싫어서 넘어온 부모 덕분에 사상적으로도 좌경화는 싫어한다. 유신정권 때의 현실 독재도 싫어했다. 운동권에 깊이 들어가니 모택동 서적을 읽더라. 그래서 도저히 같이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그 단체에서 나왔다. 이후 민중 미술은 완전히 손을 끊었다.


가을 숲 속, 1995년



- <역사> 시리즈에 대해 설명 해 달라. 



역사 속으로, 1998년


 나이가 들면서 역사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박물관에 가서 이런 신라 시대의 토기에 마음을 빼앗겼다. 기마에 탄 옛 선조의 모습을 보며 감동을 느꼈다. 이들이 나의 조상이고 이들의 예술혼이 결국 나같은 그림쟁이를 만든 것이 아닌가. 이것을 떠나서 나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이런 역사를 그림의 소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시리즈로 많이 그렸다. 한동안은 암벽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램프

                                                                    


램프를 그린 적도 있다. 나도 어릴 적에 불장난을 많이 해서 이런 램프를 가지고 싶어 했다. 우연히 황학동에 가니 헌 램프를 구경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하나 둘씩 사 모으기 시작해서 지금은 30여 개를 가지고 있다. 재미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떨 때는 이 램프에 불을 붙이고 불멍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램프를 소재로 그림을 여러 장 그렸다.

사고의 전환, 2018년


한 화면에 이질적인 것을 배치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꽃을 담은 화분과 인공적인 등산 도구를 같이 배치했다. 나이가 들며 서로 다른 요소들끼리 어울리는것이 인생인 것 같다. 누구나 자신의 삶의 모습에는 이런 이질적인 것들이 배어 있지 않겠나? 서로 이해하고 보듬으며 살아가야 한다.

-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물 위의 솔 숲


해변의 솔 숲, 캔버스에 오일, 162*112cm


솔 숲을 그린 그림으로 둘 다 백 호 짜리이다. 작년에 한가람에서 전시한 그림이다. 올림픽공원에 있는 소나무를 옮겨 와 한 화면에 공간 이동을 해서 그린다. 겉으로 보면 소나무 그림인데 이건 풍경이다. 남이 안 하는 것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디테일을 안 하고 느낌만 하는데 나는 멀리 보면 느낌과 디테일을 같이 한다. 2개월 반 동안 눈이 빠지도록 느낌이 나올 때까지 작업했다.


- 인사동으로 온 지는 얼마나 되었나?


인사동 번화한 거리의 한 건물에 그의 아뜰리에가 있다.


원래 송파 미술협회 자문위원으로 있고 2003년 인사동으로 이전해서 화실에서 작업하고 있고 설악산 아래에도 작업실을 두고 있다.

- 미협 이야기를 해 달라.

2023년 5월에 한국미술협회 이광수 이사장이 세계 조형협회(IAA, internation asociation of art) 회장이 되면서 내가 미술협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미술협회는 순수 회화를 하는 사람들의 단체이다. 세계 조형협회는 파리 유네스코회관 내에 사무실이 있다. 전 세계 60여 개국 단체이다. 초대회장이 그 유명한 화가 '달리'이다. 정식 유네스코 산하에 등록된 단체이다.

협회의 실무적인 일을 나와 총괄이사, 사무처장, 여직원들과 같이 한다. 우리나라 미술단체로는 미술협회가 가장 큰 단체이다. 등록 인원은 4만 명이고 활동 인원만 3만 여 정도이다. 선거 하면 2만 명까지 모인다. 전체 지구가 200여 개이다. 170개 지부와 18개 지회가 있다. 


김영철 화가의 아뜰리에. 무수한 회화 도구에서 작가로 한 평생 살아온 그의 인생 궤적이 엿보인다.



- 어떻게 이 일을 하셨는가?

2023년 11월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과 미술계 현안 논의


2023년 한국미술협회전 개막식에서(가운데가 김영철 미협사무총장)


학교 인맥이 있지 않나? 한국미협에 들어가려고도 안 했는데, 지금 이광수 이사장이 일을 같이 해 보자고 해서 하게 되었다. 이광수 이사장은 고등학교 2년 선배이다. 회원 자격은 미대를 안 나온 사람은 9년 동안 미술 활동을 한 것이 인정되어야 회원 자격이 있다. 그것이 인정되면 서류가 이사로 구성된 심사를 통과해야 가입된다. 입회비가 20만원, 연회비는 25,000원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저렴하게 회비를 받는 단체이다. 미협 회원은 화가의 주민등록증이나 마찬가지다. 이 회원자격증은 세계 어느곳에서도 통한다. 이 자격증만 가지고 있으면 세계 어느나라 박물관 등과, 루브르박물관 같은 유수의 미술관에서도 모두 공짜이다. 왕궁 같은 데는 도슨트가 해설도 해 준다.

- 미술업계의 고칠 점이나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미술하는 사람들은 그림에만 전문적이다 보니 행정, 그림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없다. 뻗어 나가는 방법을 너무 모른다. 나도 그림밖에 모른다. 작품 매매나 작품을 광고하기 위한 과정이나 세미나가 필요하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실질적으로 화가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체계적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림을 팔아서 살아 나가는 시스템, 그런 것들을 공부해야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런 것들을 전혀 전수받지 못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모전이나 그림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전을 하면 때문에 정학 처분까지도 받았다. 또한 앞으로는 옥션의 세미나 등을 교육받아야 한다.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그게 중요한데 그런 교육이 너무 없다.

- 미술 작품 감상법이나 수채화에 대해서 한 말씀 해 달라. 수채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

재료가 쉬워 시작하지만 보통 그리다가 유화로 갈아탄다. 그러나 수채화나 유화는 다른 장르이다. 수채화 종이도 유화보다 비싼 것도 많다. 수채화는 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물을 가지고 노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가는 방법, 어떤 화실에서든 배워서 그것이 훈련이 되어 점점 나아가면 된다. 아트만지나 전문가용 아르쉬지등을 사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물을 겁내지 말라는 것이다. 망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휴선


- 앞으로 한국 미술협회의 계획과 데일리아트에 바라는 것은?

올해는 2월에 행사가 끝났고 9월에 협회전이 예술의 전당에서 한다. 각 지역별로 지부지회의 지회전이 있다. 앞으로 데일리아트가 미술업계에서 중요한 매체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잘 정리해 주기를 바란다.


화가의 작업실에 있는 미술용품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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