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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심언(心言)의 교감을 꿈꾸다 - 작가 이건만

[강의실 밖 그림 이야기]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이건만 작가에게 문자(언어)는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문자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이전까지 한글을 문화적 요소로 활용했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문자, 즉 언어의 의미로 활용하고 있다. 작가는 이번 작업에서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있다. 소통은 상대와의 교감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즉, 언어나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전달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말을 하는 화자(話者)나 듣는 청자(聽者) 모두 상대의 공감이 있어야 소통하게 된다. 이 작품은 자기만의 언어로 말하거나 듣는 일방통행식에 대한 자성으로부터  시작된다. 



말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심언(心言), 입으로 내뱉는 구언(口言), 그리고 두언(頭言)이 있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은 상대의 심금을 울리는 귀한 메시지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일상적으로 흔하게 하는 말로 기억 속에 오랜 시간 머물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머리에 오래 기억되는 말은 가슴을 울리지는 않더라도 생각하게 하는 말로서 잔상으로 오랜 시간 머물게 된다. 많은 대화는 입으로만 떠드는 말장난에 불과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를 알아간다고 또는 이해했다고 하지만, 마음으로 이루어지는 근본적인 대화는 없다. 모두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가고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부터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사람과 사람, 부모와 자식, 형제 간에도 대화는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그렇게 태어났다.  인간과 인간의 대화는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가?  우리가 글을 깨치고, 말을 배우고, 언어를 구사하는 행위는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습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작가는 말을 배우는 것, 글을 쓰는 것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기 좋게 다듬어 보여주는 변명을 위한 도구로 설명하고 있다. 글을 처음 배울 때 사각형의 옅은 색의 틀이 그려진 공책에 자음과 모음을 쓰면서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 기억의 연장선에서 작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그 사각형을 독립된 공간으로 인식하고 한글의 자음이나 모음과 같은 문자를 조형 요소로 표현하고 있다. 하얀 캔버스 위에 격자로 화면 전체를 그리는 초벌 작업을 마친 후 본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데, 글을 쓰기 위해 가이드가 필요한 것처럼 작가도 바른말을 하기 위한 틀로서 사각형의 유닛이 필요했으리라 짐작된다.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92.9 x 70.7cm

정방형으로 구획된 사각의 대지 위에 오래 전에 뿌려 놓은 글 씨앗을 하나 둘 채워가며, 글자 모양으로 오려낸 마포(麻布)로 퍼즐을 완성하듯 글판을 완성한다. 그러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심언(心言)은 점차 잃어가고 입으로만 내뱉는 구언(口言)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대화의 공감을 위한 노력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글이나 말은 순서가 조금 바뀌거나 겹치면 무슨 뜻인지 내용 전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다. 또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무엇을 전달할지에 대한 고민을 말하고 싶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형제, 친구 등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대화가 통할 수 없는 존재이다. 상대를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92.9 x 70.7cm

말의 유희와 논리적 반박으로 유죄를 무죄로 만드는 변호의 사례에서 보듯이, 지위가 높아지거나 권력이 강해질수록 언어는 논리를 내세우고 진실을 왜곡하는 역기능을 가지고 있다. 언어는 합리화를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소통을 전제로 활용되는 의사전달 수단인 언어는 가슴으로 읊조리는 심언(心言)의 교감이 없으면 그 생명력은 소멸될 것임을 작품으로 전하고 있다.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캔버스 위에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이 움직이는 인간 세상을 꿈꾸는 작가의 세계가 크게 확장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의 향기가 배어나는 세상을 바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이해해야 할 존재이며 사랑해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는 작가의 붓질에 힘이 실리기를 바란다.

무제, 2024, 캔버스 위에 아크릴 컬러, 72.7cm x 60.6cm





-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장 정병헌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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