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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는 '현대 미술의 꽃'입니다 - 한국민화센터 박금희

by 데일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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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화센터 제7대 박금희 이사장

-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먼저 데일리아트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 간략히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제7대 한국민화센터 이사장으로 취임한 박금희입니다. 대학에서 문화재관리를 가르치다가 퇴임 후 학술연구소 '온고지신'과 '운향차문화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민화의 매력에 빠져 민화 관련 연구를 평생해 왔습니다. 틈틈이 한국 차 문화와 한국 전통 꽃꽂이 연구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인문학적 시선으로 민화·차·꽃꽂이 등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탐구해 왔습니다. 이번에 한국민화센터 이사장으로 취임하니 어깨가 더 무겁네요.

- 경주를 기반으로 활동 중인 한국민화센터는 국내에서 가장 긴 역사를 지닌 민화 전문 단체로 알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이며, 대표적인 사업은 무엇이 있는지 말씀 부탁드린다.

우리 단체는 민화를 바탕으로 연구·교육·창작·전시를 통해 민화의 대중화와 현대화를 선도합니다. '경주국제민화포럼'을 통하여 민화의 학술성를 조명해 왔습니다. 민화 연구자· 민화작가들이 활발히 소통하는 네트워크를 강점으로 삼고 있죠. 예술의 기반인 연구를 소홀히 하면 작품의 이론적 근거가 취약해 지기 때문에 우리는 연구자와 작가가 함께 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최하는 '경주국제민화포럼'은 이런 바탕 위에서 민화 연구·이론 및 실기 강좌 개설, 성인·어린이 민화 공모전은 민화의 저변 확대와 다각화에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 민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다. 이사장께서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한편으로 궁금하다.

민화에 처음 매혹된 건, 초등학생 시절 겨울방학 때로 돌아갑니다. 하얀 눈덩이에 버려진 화투가 민화 연구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화투는 48장 12패로 구성되어 있죠. 그런데 화투의 그림이 민화입니다. 가장 쉽게 접하는 민화인 것이죠. 그런데 내가 주은 화투가 30여 장 밖에 없는 거예요. 잃어버린 화투짝을 맞추며 그림을 본 것이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된 첫 기억입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초등학교 때 '하얀 눈덩이에 버려진 쨍한 색채의 그림(민화)'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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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송하맹호도, 18세기

20대에 두 번째 민화와 인연을 맺었죠. 어느 날 꿈에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진 <맹호도>를 보았죠. 꿈이 유난히 생생해서, 잠에서 깬 후에도 머릿속에서 그림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골목을 걷는데 녹슨 리어카 위에 민화 그림의 족자, 화조화 병풍 등을 싣고 가는 고물 장수를 만났죠. 그런데 내가 꿈에서 본 <맹호도> 가 실려 있었습니다. 소스라치게 놀랐죠. 김홍도 <맹호도>가 틀림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맹호도는 영인본이었고 12폭 병풍은 화조화 영인본으로 캘린더를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민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탐구했습니다. 화투라는 놀이를 통해, 꿈이라는 직관을 통해, 그리고 낡은 리어카 위의 우연한 조우를 통해서 알게 된 것은 민화는 ‘민중의 그림, 내 마음의 그림’이라고 느꼈습니다. 민화 도상의 의미와 구조에 대한 궁금증은 내 안에 오랫동안 숙성되었던 것 같아요.

그 감각은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어린 시절 ‘하얀 눈덩이에 버려진 쨍한 그림의 화투'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제대로 해석된 적 없던 이미지들, 이 모든 도상이 제각기 흩어진 화투패처럼 느껴졌고, 그 의미의 짝을 찾아 하나하나 추적하는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이는 <화투 도상의 변천과 화조화 병풍 형식 연구>라는 박사학위논문까지 이르렀습니다.

일본 미술에 잔존하는 한국 민화의 단편, 병풍과 화투 속 상징의 왜곡을 추적하며 지금도 눈 내리는 날이면 문득 강렬했던 쨍한 화투패의 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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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희, 책빛, 2024, 49x150cm. ⓒ 장경희

- 미술사학계에서 민화와 관련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미술사학계에서 민화는 단순한 민중예술로 보는 시각을 넘어 한국 회화사 전체의 틀 속에서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합니다. 민화는 전통적으로 궁중이나 사대부의 회화(궁중화, 문인화)에 비해 민중적 그림으로 간주되어 홀대 받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하위문화가 아닌, 조선후기의 중요한 미술의 축으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은 그래서 민화를 속화(俗畵)·방화(倣畵)·통속화·길상화·채색화 등 다양한 용어와 비교하여 연구하기도 합니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회화사 흐름 속에서 민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체계적으로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활발합니다. 이러한 역할 속에 '한국민화센터'가 15여 년 동안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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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경주민화포럼 모습 /사진: 김용덕

- 해외까지 민화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민화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민화에 열광하는 가장 큰 매력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토적 판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화는 누구나 봤을 법한 익숙한 소재(까치와 호랑이·연꽃·모란 등)를 다루지만, 그 표현 방식은 자유롭고 상상력이 가득하여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민화는 의미와 상징, 서사성을 중시하다보니 그림을 ‘읽는 재미’가 큽니다. <까치와 호랑이>는 권선장악 계급 풍자, 길상과 경계의 이중적인 상징인가 하면, <문자도>는 유교 윤리와 가훈, ‘수신제가치국(修身齊 家治國)'의 도상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형식에서 벗어난 구도, 과감한 생략, 과장된 비례, 선명한 원색 등으로 구성된 색채미가 현대 디자인, 일러스트, 애니매이션 등에 응용하기 좋은 시각 예술입니다. 그래서 민화의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문화적 회귀와 재해석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런 것이 민화의 매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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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경, 비네트, 2024, 25x 25cm. ⓒ 김남경

- 전통미술을 접목한 박물관 굿즈 상품부터 생활용품· 의류· 악세사리 등을 살펴보면 민화 문양을 활용한 사례가 많다. 어떤 분야까지 활용이 가능한가?

민화는 여러 분야로 확장 가능성이 높은 예술 분야입니다. 디지털 콘텐츠 및 메타버스 분야로 이모티콘· 웹툰·게임·디자인 요소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AR/VR 가상현실 속에서는 전통 공간 으로 가상으로 표현한 다실, 화조화 속 민화 정원 등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또한 유아 및 초등용 전래동화 교육자료로도 활용하여 놀이책· 색칠 공부·교육 영상·전통놀이 창작· 워크북·디지털 일러스트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민화 도상을 이용한 벽화·노면 디자인·마스코트 개발 등이 있습니다. 민화는 단순한 ‘그림’의 차원을 넘어서, 문화IP로서 무한한 확장성을 지닌 자산입니다.

- 흔히 민화라고 하면 조선시대 무명 화가의 작품을 지칭하는 용어로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 창작민화, 혹은 현대민화라는 표현이 많이 보인다. 창작민화와 현대민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현대 민화와 창작 민화는 전통민화를 계승하면서도 오늘날의 감성과 표현 방식에 맞게 새롭게 해석한 그림입니다. 우선 현대 민화는 전통민화의 형식과 주제를 바탕으로 하되, 현대적 감각과 소재, 기법을 도입하여 재해석한 민화입니다. 전통민화의 도상(圖像)과 형식을 유지하면서 현대인의 미감에 맞게 조형 요소를 조정하여 아크릴, 캔버스, 디지털 등 다양한 재료와 표현기법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창작 민화에 있어서는 전통민화의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도상 자체를 새롭게 창안하고, 주제와 형식 모두를 작가의 창의성에 따라 구성합니다.

작가의 상상력과 서사가 중심이 되어 기존 민화의 틀을 탈피하고 재현이 아닌 창조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 앞서 말씀하셨듯이 한국민화센터는 경주국제민화포럼과 전시 사업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른 활동도 계획 중인가?

한국민화센터는 앞으로 타 민화와 타 전통 문화간 융합 프로젝트 기획을 중심으로 실행 자격 제도와 인증 고시 체계구축하려고 합니다. 민화 콘텐츠의 디지털화 및 국제 글로벌 플랫폼화 추진 등 조직을 재편하고 활동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에서 민화가 나아가야 할 길과 발전 방안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린다.

전통 계승과 현대적 융합, 그리고 국제적 확장이라는 세 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통문화의 복원과 사료 기반 연구 강화, 두 번째 민화 교육의 체계화와 전문인력 양성, 세 번째 산업화 기반 확대, 글로벌 문화자산으로서의 전력적 홍보 등입니다. 다른 전통예술과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감동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융복합 콘텐츠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창의적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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