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출처: 티시 이노호사 공식홈페이지
1989년 발표된 멕시코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 티시 이노호사(Tish Hinojosa)의 〈Donde Voy〉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넘는 이들의 삶을 담은 노래다. 이민자의 고단한 현실을 서사로 삼되, 단순한 체험의 재현이 아닌 시적 언어로 승화시킨 이 곡은, 떠남과 기다림,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사랑과 희망을 노래한다.
Donde voy, donde voy Esperanza es mi destinación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
스페인어로 ‘Donde Voy(돈데 보이)’는 ‘어디로 가야하나’를 뜻한다. 곡은 어스름한 새벽, 누군가가 사막을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속을 피해 어둠을 가르고,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며 몸과 마음이 타들어가는 순간이다. 그러나 반복되는 후렴구에서 “희망은 나의 목적지”라 부르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담았다.
두 문화의 경계 속에서
티시 이노호사는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서 태어났다. 멕시코 북부 출신 부모 밑에서 자란 13남매 중 막내였던 그녀는, 집에서는 스페인어로, 학교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며 자랐다. 두 언어를 일상 속에서 사용했던 환경은 음악 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마리아치와 컨트리, 포크와 라틴, 테하노(Tejano) 리듬이 모두 그녀의 정체성이 되었다.
그녀는 젊은 시절 내내 미국 내 라틴계 이민자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과 정체성의 혼란을 곡으로 풀어내려 했다. 포크와 라틴을 결합한 음악은 장르의 혼종을 넘어 문화적 교차점에서 태어난 목소리였다.
티시 이노호사의 과거 사진 /출처: 티시 이노호사 공식홈페이지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Es mi alma que llere de amor
가슴 깊이 밀려오는 이 고통은 당신을 향한 그리움에 아파오는 영혼이에요.
한 줄의 가사에 이 곡의 모든 정서가 응축돼 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사랑을 위한 여정으로 겹쳐지고, 현실의 고통이 시의 리듬 안에서 울린다. 〈Donde Voy〉는 디아스포라(Diaspora, 이주민 또는 본토를 떠났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는 사람 및 현상)의 발라드다.
이노호사의 음악에는 다양한 사회적 메시지가 깃들어 있다. 국영 농장의 계절노동자, 불법 체류 이민자, 보수적인 교육 환경에서 소외된 이민자 아이들. 그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한 ‘소수자’의 서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감정의 언어로 풀어낸다. 〈Donde Voy〉는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노래다.
한국에서 되살아난 국경의 노래
이 곡이 미국과 멕시코를 넘어 전혀 다른 문화권인 한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는다. 1990년대 초, 홍콩에서 제작된 한 드라마가 한국에 방영되며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Donde Voy〉는 국내 라디오와 방송을 통해 입소문을 탔다. 당시 해외 팝 발라드에 대한 감수성이 높던 한국 청중에게 이 곡은 묘한 정서를 자극했다. 스페인어라는 언어적 낯섦, 담담한 음색, 애잔한 멜로디가 이국적이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감정을 건드렸던 것이다.
2018년 한국에 방문한 이노호사 /출처: 티시 이노호사 공식홈페이지
〈Donde Voy〉가 수록된 이노호사의 앨범 《Homeland》는 한국에서만 약 10만 장 이상 판매되기도 했다. MBC ‘별이 빛나는 밤에’ 등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이 곡을 종종 소개했고, 팬들은 가사를 손수 번역해 카세트 테이프에 덧붙여 친구들과 나눴다. 당시 언론은 '디아스포라의 감성이 한국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2018년, 팬들의 꾸준한 요청에 응해 처음 한국을 찾은 이노호사는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다. 그녀는 ‘미국-멕시코 국경과 남북한 사이의 분단은 다르지만, 사람을 갈라놓고, 그리움을 만들며, 사랑을 방해한다는 점에서는 같다’며 '〈Donde Voy〉는 국경을 넘은 사람들만의 노래가 아니다. 고향을 떠난 이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이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노래'라고 말했다.
티시 이노호사의 과거 사진 /출처: 티시 이노호사 공식홈페이지
〈Donde Voy〉는 이민자의 경험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그 노래가 건네는 물음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된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물음은 국경을 넘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이별을 겪은 사람, 낯선 도시에서의 삶에 적응해가는 사람, 삶의 목적을 되찾기 위해 방황하는 이들에게도 통한다. 이노호사의 목소리는 노래로 답한다. 언어를 알지 못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음색은, 곡이 지닌 리듬과 감정만으로 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삶과 사랑, 분단과 재회의 감정이 뒤섞인 그 노래는 결국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음악 감상
가사 전문
Madrugada me ve corriendo
동틀 무렵, 나는 달리고 있어요
Bajo cielo que empieza color
빛이 들기 시작한 하늘 아래에서
No salgas sol a nombrarme
햇님, 제발 나를 드러내지 말아줘요
A la fuerza de “la migracion”
이민 단속반의 눈에 띄지 않도록요
Un dolor que siento en el pecho
가슴 깊이 밀려오는 이 고통은
Es mi alma que llere de amor
당신을 향한 그리움에 아파오는 영혼이에요
Pienso en ti y tus brazos que esperan
당신과, 내게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그 품을 떠올리며
Tus besos y tu pasión
당신의 입맞춤과 그 열정을 기억해요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Esperanza es mi destinación
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
Solo estoy, solo estoy
나는 외로워요, 정말 외로워요
Por el monte prófugo voy
이 광야를 도망자처럼 떠돌아요
Días, semanas y meses
하루하루, 몇 주, 몇 달이 흘러가지만
Pasan muy lejos de ti
당신과는 너무도 먼 거리예요
Muy pronto te llega dinero
곧 돈을 부쳐줄게요
Yo te quiero tener junto a mí
당신을 내 곁에 꼭 두고 싶어요
El trabajo me llena las horas
일로 하루를 채우고 있지만
Tu risa no puedo olvidar
당신의 웃음소리는 잊을 수가 없어요
Vivir sin tu amor no es vida
당신 없는 삶은 삶이 아니에요
Vivir de prófugo es igual
도망치듯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죠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Esperanza es mi destinación
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
Solo estoy, solo estoy
나는 외로워요, 정말 외로워요
Por el monte prófugo voy
이 광야를 도망자처럼 떠돌아요
Donde voy, donde voy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Esperanza es mi destinación
희망이 나의 목적지예요
Solo estoy, solo estoy
나는 외로워요, 정말 외로워요
Por el monte prófugo voy
이 광야를 도망자처럼 떠돌아요
[가사 몰랐던 Old Pop ⑨] 'Donde Voy', 멕시코계 미국인의 슬픔이 한국인의 그리움이 되기까지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