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 루프, 《터치-필리:서울》
2025년 6월 13일 - 8월 9일
전시 포스터 / 출처: 대안공간 루프
촉각의 문이 열리는 순간, 《터치-필리: 서울》
홍익대학교 앞, 소품 가게와 옷 가게가 즐비한 좁은 골목 사이로 각진 형태의 현대 건축물이 한 채 놓여 있다. 대안공간 ‘루프’다. 이곳에서는 지금 《터치-필리: 서울》이 진행 중이다. 전시라기보다 프로젝트라 불러도 좋을 만큼 다양한 형식과 실천을 포함하지만, '전시'라는 단어를 택하겠다.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외부에선 짐작조차 어렵다. 유리문은 종이로 가려져 있다. 이 종이 역시 탄 징(TAN JING)의 작품이다. 내부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채 또 다른 세계를 품고 있다.
전시장 외관 / 출처: 대안공간 루프
현대미술 중에서도 가장 ‘오늘날의 것’은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로 불린다. 《터치-필리: 서울》은 동시대 미술에 익숙하지 않다면 다소 낯설고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 관객에게 직접 참여를 요구하면서도, 해석의 열쇠나 명확한 의미를 쉽게 건네주지 않기 때문이다. 회화, 영상, 조각, 오브제, 설치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지만,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각 요소는 고유한 맥락을 내포한 채 관람객에게 읽고, 생각하고, 연결하도록 요구한다. 이를테면 전시과 연결된 ‘에코 페미니즘(ECO-FEMINISM, 생태계 착취와 여성 억압이 동일한 지배 체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철학적·실천적 사상)’이라는 개념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이 전시는 사유의 공간이 될 것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도무지 접근하기 어려운 전시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현대미술은 늘 그렇듯 우리에게 말을 건다. 단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달라’고 요청한다. 《터치-필리: 서울》의 요청은 명확하다. 그 방법부터 기존 전시와 다른 언어로 구성된다.
전시의 주인공은 바로 ‘촉각’
임연진, 히비스커스(Hibiscus), 2024 / 사진: 구현우
1층 공간은 각지면서도 비정형적인 구조를 갖는다. 삼각형처럼 꺾인 바닥에 서면 천장에서 스며든 빛이 시선을 전시장 안으로 끌어들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인센스 스톤(향료를 머금은 돌)'은 강한 향과 기름기 있는 표면을 갖고 있다. 안내 메세지를 통해 이 작품이 만질 수 있는 것임을 알린다. 이 돌들은 ‘만질 수 있는 전시’의 시작이다. “작품 보호를 위해 손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 대신, 이곳에서는 촉각의 세계가 펼쳐진다.
탄 징(Tan Jing,) 미약 #01(Miyak #01), 2025 /출처: 대안공간 루프
지하 공간은 더욱 과감하다. 신발을 벗고 앉은 자리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듯 설치된 작품들을 올려다보며 공간이 체감된다. 향, 진동, 습도, 앉는 자세, 바닥의 감촉까지, 촉각은 시각을 압도한다. 시선에서 벗어나 ‘몸 전체로 보는 감상’하는 경험은 전통적인 미술 감상의 문법을 철저히 뒤엎는다.
이주영, 드로잉 작업, 2024(상단부 작품), 멜리사 스텍바우어(Melissa Stackbauer), 센소리엄을 위한 도구들(Tools for Sensorium), 2025(하단부 작품) / 사진: 구현우
각 작가의 실천은 촉각을 둘러싼 다양한 층위를 보여준다. 임연진의 <TRACES OF STILLNESS>(2024)은 치유와 에너지 순환의 보디워크를 통해 ‘만짐’의 감각을 회복시킨다. 구민자의 <씨드 볼트(아카이브)>(2025)는 음식과 가족(또는 타인)의 기억을 나누며 돌봄의 흔적을 재구성한다. 이주영은 해조류 염료를 사용한 작품 <드로잉 작업>(2024) 통해 생태적 공존의 물질성(MATERIALITY)을 선사한다. 멜라니 보나요(MELANIE BONAJO)의 <터치미텔>(2019,2023)는 어린이들과 함께 신체 자율성과 경계, 사랑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워크숍과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앞서 언급한 주제들을 실천한다. 전시의 모든 존재가 작품이자 전시의 일부가 되는 시도를 확장해 나간다.
멜라니 보나요(MELANIE BONAJO), 터치미텔(TouchMETell), (2019)
이러한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조건 또한 이 전시는 함께 고민한다. 참여자들과 함께 만든 행동 규칙은 단순한 지침이 아니라, 신체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의 윤리적 상상력이다. 누구를 만질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괜찮은가? 만질 권리와 거부할 권리는 어떻게 조율될 수 있는가? 전시는 이러한 질문들을 제도 안에서 실험하며, 예술이 윤리와 감각을 어떻게 매개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만지고 있는가
《터치-필리: 서울》은 완결된 예술품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열려 있고 불완전하며, 감각적으로 열려있는 공동체와 같다. 이 속에서는 예술은 제품을 넘는 관계다. 감상은 이해가 아니라 접촉이다. 여기서의 돌봄은 의무가 아니라 감각이고, 터치는 결과가 아니라 출발점이다.
우리는 디지털화된 일상에서 점점 더 신체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전시는 바로 그 신체의 귀환, 접촉의 감각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다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지 전시를 보는 행위가 아니라, 새로운 윤리를 실천하는 일이며, 관객 역시 그 실천의 일부가 된다. 예술은 다시금 물어야 한다. 우리는 타자와, 그리고 나 자신과 어떻게 접촉하고 있는가?
서로를 감각하는 방식, 《터치-필리: 서울》 전시 리뷰 < 리뷰 < 전시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