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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리흘라] 아직도 해외 여행가서 한식을 찾으시나

by 데일리아트

8월 초입니다. 예전 같으면 여름휴가의 절정기입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지난 주말 인천국제공항이 제일 붐볐다는 기사가 있는 걸 보면 아직도 휴가의 정점은 가장 더운 시기와 맞물려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도 휴가의 개념이 연차휴가의 개념으로 넓혀져 1년 전 기간에 걸쳐 언제든 갈 수 있게 분산된 탓에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최성수기를 피해 비수기를 이용하는 추세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더운 이 시기에 가장 시원한 곳이 사무실임은 다들 인정하실 겁니다. 휴가지에서 즐기는 시원함도 좋지만 사무실의 시원함으로 여름을 나고 여행 비수기인 시기에 싼 값에 휴가를 즐기는 방법도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어떠신가요? 여름휴가를 즐기고 계신가요? 아니면 사무실과 근로 현장에서 여름을 이기고 계신가요?

그래도 휴가시즌이니 휴가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족여행으로 국내여행 갈 때도 음식을 싸가서 해 먹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펜션이라도 예약을 하게 되면 객실 앞 테라스나 야외 벤치에서 삼계탕이나 특히 삼겹살 등을 많이 해 먹습니다. 여행을 간 지역의 토속음식을 즐기는 것과 더불어 직접 삼겹살을 구우며 가족이나 동료와의 우애를 다지는 좋은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갈 때도 여러 밑반찬 거리를 준비해서 가지고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국가마다 반입이 안 되는 식료품의 종류가 있고 위반할 때는 벌금까지 부과됨에도 굳이 숨기고서라도 가져가려 합니다. 지금은 웬만한 해외도시에는 한인마트들이 있어 언제든지 김치와 김, 라면, 소주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지에서 사면 비싸다는 이유로 바리바리 케리어에 넣어 가가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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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해외에서 한 끼라도 한식을 안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취향이십니까?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반드시 한식 식사를 해야 하는 비율이 높아지기도 합니다만 음식 취향은 개인적 편식의 차이라 나이와는 상관없는 듯합니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호텔 아침 조식 때 만나는 패키지 관광객들 중에는 김이나 고추장을 들고 내려와서 계란 스크램블과 같이 먹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호텔에서는 아침 뷔페 메뉴에 김치가 반드시 있기도 합니다.

한국인들의 이런 한식 부심을 달래주는 일등공신으로 대한항공의 튜브형 고추장이 있습니다. 대한항공이 1997년 비빔밥을 이코노미석에 선보임으로써 시작된 고추장은 특히 당시 배낭여행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 품목이 되었습니다. 튜브형이라 휴대가 편리한 덕에, 기내식으로 비빔밥을 주문하고 고추장을 2-3개 더 달라고 해서 안 먹고 가지고 내려 여행 중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예 기내면세판매품 속에 튜브형 고추장이 들어가 있을 정도로 여전히 인기품목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리 달린 건 책상 빼고 다 먹고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 빼고 다 먹는 스타일'로 가리는 게 없어서 해외여행할 때는 한식을 아예 잊고 다닙니다만, 2002년 월드컵 하던 해 봄에 호주관광청과 함께 멜버른-애들레이드-울루루를 거쳐오는 일주일 일정의 언론인 초청행사에 동행을 했었는데 그때 같이 동행했던 언론인 한 분의 취식 성향이 매우 까다로웠는데 일정 내내 매 끼니마다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당시 기내에서 승무원이 고추장을 정말 한 보따리 챙겨주셨는데 그 고추장으로 일정 내내 연명을 했습니다. 아예 투어 내내 튜브고추장을 입에 물고 있을 지경이었는데 결국 입에 장독이 오른다고 하나요. 입술 주변이 벌겋게 부어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음식에 인이 박혀 반드시 식사 때마다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음식의 반은 기억이고 반은 추억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먹어본 경험이 있어야 하고 지속적으로 먹어서 혀가 음식 맛의 분자구조를 기억하여 맛을 음미하는데 에너지가 들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이 그렇고 할머니가 구워주신 생선의 맛이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개울가에서 천렵을 하며 잡은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의 맛도 기억 깊숙이 저장된 추억의 맛입니다.

이런 추억의 맛을 소울푸드(soul food)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형적인 콩글리시입니다. 원래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 지역 흑인 사회의 전통 요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의미, 즉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음식이나 감성을 자극하는 음식이라는 해석은 그 의미를 확장해서 받아들인 경우죠.

입맛은 기억이고 추억인지라 쉽게 바뀌거나 하지 않습니다. 특히 처음 접하는 해외 현지 음식의 낯선 향과 식감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었던 음식도 자꾸 먹다 보면 익숙해지고, 나중에는 즐겨 찾게 되기도 합니다. 쿰쿰한 홍어나 과메기처럼, ‘한 번 먹어보면’ 바뀌는 것도 많습니다. 그저 경험해 보기 전에 지레짐작으로 거부할 뿐이죠.

여행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입니다. 음식 역시 그 만남의 일부입니다. 현지 문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새로운 맛에 마음을 열 때, 여행은 훨씬 풍부해집니다. 지금 여행 중이시라면, 또는 조만간 떠나실 예정이라면, 이번에는 한식을 잊고 현지의 낯선 음식에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잊지 못할 여행의 기억 한 조각이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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