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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평창동 ‘구르메’·‘북악정’

[유성호의 미술관 옆 맛집]

가나아트센터 평창동 시대 열고 견인
고향이 평창동인 셰프의 숙성회 맛집
전 대통령도 고기맛에 반한 랜드마크

평창동에는 1980년대부터 미술관과 화랑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유명 작가들도 이주하면서 자연스레 미술 거리를 만들었다. 미술관으로는 1992년 토탈미술관이 개관한 데 이어 이응노미술관, 김흥수미술관이 연이어 들어섰다.


화랑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가나아트센터가 1998년에 평창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평창동 일대 미술 거리를 견인했다. 화랑과 함께 화랑 운영자들도 평창동에 똬리를 틀었고 일대에 사는 미술인만 해도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평창동 미술 거리 간판 갤러리 가나아트센터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는 미술 거리의 간판 같은 곳이다.[사진=종로구청]

갤러리 중에서 특히 가나아트센터는 외관부터 볼만하다.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가 설계했다. 그는 인사동에 있는 가나아트센터와 양주시 장흥에 있는 가나아트파크도 관여한 ‘가나아트 전문 건축가’다. 그의 건축은 정확한 라인, 안정적인 매스, 섬세한 조명으로 대표된다.


무엇보다 그의 미학은 고객과 공간에 얽힌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것이다. 건물은 크게 전시. 판매. 업무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세 공간 사이는 중정으로 꾸며 야외극장과 조각 정원을 겸하게 하는 등 건축물 자체가 미술품에 버금간다. 야외공연장, 아카데미홀, 공예관, 두레유 등의 부대시설이 있다. 건축가의 건축 의도를 알면 공간의 새로운 면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선혜청 곡물창고 평창서 지명 유래


평창동이라는 지명은 1914년 동명 제정 시 이곳에 있었던 선혜청의 곡물창고 평창(平倉)에서 유래됐다. 조선 태조는 재위 5년(1396) 차에 한성부를 5부 52방으로 나눴다. 이때 지금의 평창동은 북부 의통방 선혜청계 지역이었다. 고종 때는 북부 상평방 선혜청계 지역에 속했다.


1894년 갑오개혁과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합병, 1936년 큰 폭의 관할구역 변경, 1943년 구(區)제도 시행 등으로 소속이 이리저리 바뀌었다가 해방 후 서울시 헌장과 미군정법령에 의해 일본식 동명을 우리말로 바꿀 때 평창리가 됐다. 이후 1950년 서울시 조례로 평창리는 평창동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종로구지만 1975년 전까지 서대문구 관할이었다.


평창동 일대 한 때 사이비 종교인 득실


삼각산 남쪽 기슭에 해당되는 평창동 쪽에 있는 많은 골짜기는 한때 사이비 종교인들이 득실댔다고 한다. 삼각산 산신령의 영험함을 받았다는 사이비 교주들이 골짜기 곳곳에 토굴을 파거나 암자를 짓고 북과 꽹과리를 치며 밤낮없이 굿을 했다. 그러나 불교 정화 운동, 북악터널 개통 등을 계기로 단속이 강화되면서 암자나 굿 행위가 사라졌다.


지금의 평창동은 이런 무속과는 거리가 먼 ‘부촌’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산 중턱에 형성된 주거지는 좋은 공기와 남향 배치로 인해 부유층 주거지로 부상했고 고급빌라들이 속속 들어섰다. 이 동네는 볼거리도 많아 탐방 코스로도 유명하다.


이름하여 ‘한 폭의 그림 속 풍경길 평창동’이다. 답사지는 연화정사, 김종영 미술관, 토탈미술관, 가나아트센터, 키미 미술관, 영인문학관, 보현산신각, 박종화 가옥, 평창 터, 별기군 훈련소 터다. 순방향, 역방향 관계없다.


이곳의 탐방 포인트는 연화정사에서 바라보는 한 폭의 그림 속 풍경 ‘평창동 전원주택 단지’, 가나아트센터, 토탈미술관, 김종영미술관 등 미술관 순례, 박종화 가옥, 영인문학관 등 문인들의 자취 따라 걷는 문학산책로다.


“간판 없어도 단골 많아 괜찮아요”


평창동 108번지, 버스정류장 명으로는 벽산평창힐스아파트에서 하차하면 거대한 섬진장민물장어집 간판이 보인다. 이 식당 때문에 ‘구르메’를 찾을 수 있다. 만약 따로 있었다면 쉽지 않은 외형이다. 일단 간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블루칼라의 물고기 모양 네온사인이 달랑 달려있을 뿐이다. 미술 거리 한가운데 위치해선지 뭔가 예술적이다. 그러나 첫 방문객들에겐 찾아오기 불편하다는 볼멘소리 듣기 딱 좋은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한 번 당황스럽다. 주방이 코앞에 펼쳐지고 주방에서 열심히 뭔가를 만드는 셰프가 반갑게 맞이하기 때문이다. 주방은 마치 실험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복잡하다. 사방에 펼쳐진 나무 도마와 냄비들. 도마 위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있는 횟감. 한쪽 벽을 가득 재우고 있는 사케, 백주, 양주 등 주류들.

주방 한쪽 개수대 위쪽엔 청어 몇 마리가 과메기로 변신하고 있고 그 뒤로는 대물 가자미와 아구가 함께 매달려 건조되고 있다.

주방 한쪽 개수대 위쪽엔 청어 몇 마리가 기름을 빼면서 과메기로 변신하고 있다. 그 옆에는 대물 가자미와 아구가 함께 매달려 ‘쫀득쫀득해지자’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풍경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식당 주방과는 사뭇 달랐다. 손질한 숭어에서 나온 내장으로 젓갈을 만들고 청어 알과 가자미는 찜으로 변신한다.


지하로 들어서니 4인 테이블 5개 정도가 놓여 있다. 한쪽에는 잠수복이 걸려 있다. 심 셰프 취미가 다이빙이란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는 실내장식이다. 이목을, 구스타프 클림프의 프린팅과 심지어 오너셰프 자신의 그림까지 걸려 있다. 오너셰프는 평창동 토박이다. 미술 거리에 사는 주민답다.


그의 요리는 변칙이다. 표준 레시피에 익숙한 식객에게는 파격적이다. 그러나 한쪽으로 생각하면 매우 실험적인 요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심 셰프 자신은 ‘창작요리’라고 규정했다. 그러고 보니 그 표현이 적절하다. 실험적인 시간을 거쳐 만든 자신만의 창작물이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의외로 내공이 느껴지는 각종 요리들이 오마카세로 제공된다.


이곳에선 플레이팅이란 단어가 사치다. 맨 접시에 오직 횟감만 채워진다. 그러기에 두툼한 회가 더욱 커 보인다. 돔 껍질은 마스카와 대신 히비키를 했다. 토치로 돔의 지방을 녹여서 더욱 고소한 맛을 내기 위한 것인데, 숙성회라서 이미 고소한 감칠맛이 극에 달해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감성돔, 방어, 청어회, 청어과메기.

방어가 부위별로 한 접시 담겨 나왔다. 기름지다 못해 씹을 때마다 기름이 콸콸 쏟아지는 느낌이다. 청어알 찜은 양파와 함께 씹으면 식감이 남다르면서 달짝지근한 맛에 혀의 미뢰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청어 사시미는 파와 양념을 살짝 뒤집어쓰고 나오는데, 숙성회로 맛이 우리가 흔히 접했던 횟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잘 삶긴 꼬막에는 스토리가 있다. 꼬막 삶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전남 벌교까지 가서 이틀간 큰 비용을 들여 사사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꼬막이 기막히게 잘 삶겼다.


마지막 코스로 연타석 홈런을 친 것은 청어 과메기와 대물 가자미찜이다. 청어 과메기는 흔히 먹던 거무튀튀한 색이 아니라 붉은빛이 돌았다. 주방 위에 매달려서 기름을 빼던 그 청어였다. 약간 비릴 줄 알았던 예측은 곱창 김에 싸서 한 점 입에 넣는 순간 한방에 날아갔다. 그러고 보니 이 식당에서 제공된 횟감이나 요리 중 비린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북한산 자락 숙성 회 창작요리에 깜짝 놀란 하루다. 이곳에서만 16년 차, 외식경력 19년 차 셰프의 숨은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간판이 없어도 괜찮은 이유는 바로 이 내공에 매료된 단골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평창동 식당가 맏형 격 ‘북악정’

북악정 본관(왼쪽)과 신관

평창동에서 만족스럽게 한 끼를 해결할 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 식객들의 중론이다. 이유는 가성비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번쯤 가볼 만한 곳은 멋들어지게 생긴 둥근 모양의 건물을 가진 ‘북악정’(본관)이다.

지금은 신관이 생겨 다소 위축돼 보이지만 구관은 평창동의 랜드마크였던 곳이다. 1982년 개업한 북악정 업력을 이어받아 갈비명가 이상에서 인수해 옛 이름을 그대로 살리고 옛 건물 옆에 신관을 올렸다.

북악정의 시그니처 메뉴인 한우특선모듬과 갈비탕, 양념갈비.

시그니쳐 메뉴인 한우특선모둠은 눈꽃등심, 살치살, 안창살, 한우생갈비 등 최고의 한우 풍미를 즐길 수 있는 부위로 구성돼 있다. 한우모둠 와인 정식은 숙성등심, 부채살, 갈비살, 살치살에 하우스 와인을 곁들이고 후식으로는 된장찌개나 평양냉면을 즐길 수 있다.


특색 있게 계란말이 고명이 올라간 100% 순메밀 평양냉면, 갈비탕, 불고기, 된장찌개 등 가벼운 점심 메뉴도 있다. 전 청와대 조리 팀장을 지낸 천상현 셰프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옛 ‘북악정’ 고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청와대서 가까운 이점도 작용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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