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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18. 2024

봄으로 가는 길목, 자화상

[사진가의 펜으로 보는 세상]

[ 봄으로 가는 길목]

자화상

 

잘 아는 누군가가 얼마 전 자전거를 내게 권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던 나는 지체 없이 하천변을 질주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비록 초보이기는 했지만 수십 년 전 중학교시절 이십여리의 등하굣길을 3년간 자전거를 탄 기억을 내 몸은 가지고 있었기에 3-40킬로는 거뜬하게 폐달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나는 도무지 그 것에 대하여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문제는 속도감에 대하여 즐거움을 가져야 하는데 그 보다는 걷는 취미를 내게서 빼앗아 간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제 부터인가 평지를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으로 걷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아마도 그 취미는 내가 사진가가 된 것과 괘를 같이 하는 듯하다. 느리게 걷는 것에는 늘 생각이라는 것이 함께 한다. 그 것은 굳이 내가 카메라를 들고 있지 않아도 대상과 대화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착해서는 주로 탄천변을 걸으며 거기에서 마주치는 버드나무와 갈대 그리고 이따금씩 숲을 이루는 많은 식물들을 바라 볼 수 있고 또 흐르는 물에서 노는 오리들도 마주한다. 그 뿐일까, 지금은 노란색의 잔디사이로 며칠 후면 노란 민들레가 고개를 들것이고 이를 신호로 온갖 풀들이 삐죽삐죽 올라올 것이다.



 대지의 삼월은 아직 봄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굳이 봄을 우기는 노란 산수유나무가 가녀린 몸으로 세찬 바람을 마주하고 피어있다. 그렇지만 찬바람에도 가장 먼저 피어 나 자신을 뽐내는 그 노랑꽃들이 나는 부러웠다. 나는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대중에 섞이기를 언제나 바래왔기에, 그렇다고 잘 섞이지도 못하면서도. 이따금씩 건너편으로 강아지를 끌고 지나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 사이를 자전거를 탄 검은 무리들이 질주한다. 그리고 느리게 흐르는 하천이 이따금씩 구름사이로 나오는 햇살에 은색 깃털처럼 보였다.



 길게 늘어선 갈대들이 지나온 시간 사이로 그 푸석푸석한 머리를 흔들어대고 있지만 이 또한 새 시간에게 자리를 내어 주어야하는 계절로 진입한 것이다. 비록 그 시간으 로의 항해에 오늘의 바람처럼 흔들림은 있을지언정 초록색 대지의 순간은 어김없이 온다. 봄은 그냥 쉽게 우리에게 오지 않아도 틀림없이 온다. 어쩌면 이것은 이 대지가 사진가인 나를 향하는 약속인지도 모른다. 하여 봄은 계획해야하는 계절인 것이리라.



 봄은 실천의 계절이기도하다. 산수유는 벌써 그 계획을 실천하고 또 새로 올라오는 갈대는, 연두색을 듬성듬성 뿌리기 시작하는 버드나무는, 그리고 잔디밭에는 내가 좋아하는 민들레가 계획을 이미 마치고 올라올 준비를 끝냈으리라.



 어릴적 살았던 시골의 이맘때쯤은 분주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고단함의 시작이기도하지만 기대감으로 차오르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봄은 사진가에게는 어떤 시간일까, 대부분 추운 겨울을 움츠려 있다가 이제 서서히 카메라 가방을 챙기지는 않을까. 겨울 사진을 생각해 두었다가 끝내 포기하고 말 았다. 그리고 봄으로의, 여름으로의 여행의 게으름에 대한 핑계로 두었다.



 이제 낮선 곳으로 향하는 시간이 다시 온다. 나는 끝없이 대화하려한다. 만나게 될 모든 사물과 시간과 사고에 대하여. 사진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다. 설령 그런 것이 아니더라도 상관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많이 만나게 될 오브제들과의 대화가 내게는 전부이니까. 사진은 생각이 만들어 낸 일기이지 마치 만리장성 같은 거대한 건축 물은 아니다.



 아직 대지를 달리는 바람이 차지만 그 향기는 이제 다르다. 확연하게 내가 선 곳은 봄의 길목일 것이다.



“ 데일리아트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2024년3월에 참조: 사진제목: Self Portrait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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