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mbc
이제 막 소녀를 벗어난 아가씨가 있다. 이 아가씨의 이름은 세진이다. 세진은 태어날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이후였을까? 어떤 이유로 청각장애인이 되었는지 이 작품에서는 알 수 없다. 수어를 할 수 없는 이들과의 소통은 그들이 말하는 입 모양을 보고서 듣고 자신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으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여동생이 하나 있는데 도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녀 방학 때나 잠깐 본다. 거의 말을 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가 조금은 수다스러워 보일 때가 있는데 여동생과 대화할 때이다. 차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세진이는 어느 것 하나 욕심내어 가져볼 생각하지 않고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세진에게 갑작스럽게 한 청년이 나타났다. 농장주의 외손주이고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며 야생화 사진을 찍는다. 몇 번의 우연한 마주친 이후로 그녀의 시선은 자꾸 그를 찾고 그를 지켜본다. 그녀의 눈빛과 행동은 영락없이 사랑에 빠졌다. 그녀와 농도의 차이는 있어 보이지만 청년도 시골 농장에 자신의 또래가 그녀밖에 없어서 그녀에게 시선이 간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부끄러운 많은 그녀지만 낯선 자기 심장 소리를 따라가 보기로 한 것 같다.
이 아가씨가 나오는 이야기는 MBC 베스트 극장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이다.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1998년도 작품이니까 20년도 더 지난 작품이다. 이때 전도연 배우는 영화 〈접속〉으로 연기력과 인기를 인정받은 배우였는데 단막극에 출연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기억난다. 가끔 이 드라마가 문득 생각나는데 초록빛의 차밭이 아름다워서이기도 하고 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세진이가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예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내 마음속에 자라는 생각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이 뭐길래 사랑 하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 전부를 포기한단 말인가이다. 그 청년은 그럴만한 가치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상대방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따지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도 외모, 재산, 능력 등 외부적인 조건이나 내게 주는 이익을 따지지 않고 존재 그 자체를 사랑하고 소유하거나 통제하려 하지 않고 청년의 행복과 성장을 바라는 순수한 사랑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나를 아프게까지 하는데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다. 그런데도 기를 쓰고 세진을 이해하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
그녀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지만, 주어진 조건을 봤을 때 그녀는 외로운 사람이다. 20대는 또래와 한창 어울릴 나이가 아닌가? 주변에 또래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같이 일하시는 분들은 어머니 또래의 아주머니들이시다. 그들과 대화할 수도 없다. 세상은 너무나 적막하다. 책을 벗 삼아 살지만, 그녀의 무료함을 달래줄 만큼 많지는 않아 보인다. 앞으로 이런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반면 책 속의 어느 연인들처럼 사랑하고픈 마음은 계속 자라고 있지 않을까? 그런 순간이 찾아왔을 때 그녀는 자기 전부를 걸어 자신만의 소중하고 애틋한 사랑을 간직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녀의 얼굴은 결말을 향해 갈수록 결연해 보인다.
동생이 사다 준 책 속의 이야기,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 아나스타샤가 자신이 사랑하는 혁명군의 이름을 말하지 않고 혀가 집게로 뽑혀 화형당한 것처럼 그녀는 자신을 오토바이로 친 청년의 이름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사고 경위를 말하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말하지 않으니 주위 사람들은 애가 탄다. 결코 그녀는 말하지 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니라 그저 하모니카를 받은 연인의 관계로 남고 싶지 않았을까? 사람들이 알게 되고 사람들 마음대로 관계를 정의 내리기 전에, 자신만이 이 사랑을 간직하고 싶지 않았을까?
드라마 배경지는 보성의 차밭이다. 보성은 다른 한국의 차 생산지에 비해 잘 가꾸어져서 관광 농원으로도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는 곳이다. 우리나라는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사신 대렴(大廉)이 차 씨앗을 가져와 지리산에 씨를 뿌린 이후로 경상도와 전라도에 걸쳐 차가 주로 생산되고 있다. 어떤 농작물이건 기후와 토양이 그 농작물과 맞아야 하는데 이 지역의 기후와 토양이 차 재배에 적합하다고 한다. 보성, 하동, 제주가 대표적인 우리나라 차 재배지이다.
작품 속 차 마시는 장면 /출처: mbc
세진이 차를 마시는 순간이 있다. 동생 수진이가 읍내에 갔다가 비를 쫄딱 맞고서 감기 몸살에 걸렸을 때 언니 세진은 차를 권한다. 집에 해열제가 없을 때 녹차는 열을 식혀주니까 상비약으로서 차 농가에서 훌륭한 약이 되어 줄 것이다. 한국에서 차가 약으로 쓰인다하면 나는 두 개의 차가 생각난다. 하나는 하동의 '잭살차', 또 하나는 다산 정약용의 '떡차'다.
하동의 잭살차는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생산되는 전통 홍차이며 ‘작설(雀舌)’의 하동지방 방언에서 유래되었다. 작설차는 참새의 혀라고 해서 곡우에서 입하 사이에 딴 찻잎으로 만든 차를 세작이라고 하고 찻잎의 모양 때문에 작설차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잭살차라고 불리는 것은 이 작설차와 달리 녹차가 아니라 가공 방식이 홍차와 닮아서 홍차에 가깝다. 하동에선 오래전부터 집집마다 잭살차를 만들어 한지에 싸서 매달아 놓고 감기에 걸리거나 배가 아플 때 비상 상비약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동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민요가 있는데 삶의 고달픔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배어 있다.
초엽따서 상전주고
중엽따서 부모주고
말엽따서 남편주고
놁은잎은 차약지어
봉지봉지 담아두고
우리아이 배아플때
차약먹여 병고치고
무럭무럭 자라나서
경상감사 되어주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조선 차 문화사에서 차 문화를 중흥시키는데 기폭제가 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기호음료로 차를 즐기기보다 약으로서 차를 대했다.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기 전에도 차를 마셨는데 그것은 고질병인 체증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다산초당에 거하면서는 차나무를 발견하고 직접 차를 채다하고 제다까지 했는데 그가 이렇게까지 차를 자급자족한 것은 체증을 위해서 상비약으로 마련하기 위했음을 그가 남긴 글과 편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다산이 만들어서 마셨던 차는 주로 떡차였다. 우리가 요즘 마시는 잎차 형태로 즐길 수 없었던 것은 포장술과 보관 방법이 마땅치 않아서 당시에 떡차가 아니고는 여름철을 넘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그가 삼증삼쇄(三蒸三曬)한 떡차로 주로 만들었으리라 이야기되는 이유는 녹차의 성질이 차기 때문에 위에 가한 자극을 주고 정기를 손상한다고 여겨서다.
열을 내리기 위해서, 체증을 다스리기 위해서 상비약으로 쓰인 우리나라의 차를 소개해 보았다. 하지만 차는 만병통치약은 분명 아니다. 지금에는 상비약도 아니다. 열을 내리기 위해서는 해열제를 먹고 체증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소화제를 마시면 된다. 차는 즐기기 위한 기호 음료로서 주로 존재한다. 하지만 약으로 존재하는 차가 그립다. 약으로 차를 대하는 마음의 간절함이 좋다. 나도 차를 마셔보아야 하겠다고 처음 생각했을 때 건강해지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결국엔 차를 대하는 나의 첫 마음이 그리운가 보다.
세진이에게 말하고 싶다. 네가 사랑하는 그 마음은 보성 차밭만큼 아름답다. 상대방에 대한 원망도 없는 그 마음이 귀하다. 그래도 살았으면 좋겠다. 청년에게 그리 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이내 잠잠해질 것이다. 그래도 아플 것이고 슬플 것이다. 그때 네가 하는 그 일이 약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족들도 분명 약이 되어 줄 것이다. 찻잎을 따면서 가공하면서 포장하면서, 차를 마시면서 노래하면서 사랑의 맛뿐만이 아니라 인생의 맛도 알아가며 나이 먹어 갔으면 좋겠다.
[이은영의 작품 속 차 이야기 ⑧] 간직한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