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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미술관 ‘젊은달 와이파크’의 역할 ③

[최영식의 뮤지엄 순례] 과거의 영월에서 미래의 영월로

작은 마을, 큰 예술 - 영월의 '젊은달 와이파크'와 '나오시마 섬'의 문화 관광 성공기  
예술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도구다

일본의 나오시마 섬(直島)과 한국의 영월 ‘젊은달 와이파크’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앞서 두 차례 기사에서 ‘젊은달’이 갖고 있는 예술적 특징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나오시마 섬과 ‘젊은달’이 어떻게 지역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는지 비교해 보고, 예술이 지역과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본다.

나오시마 섬의 위치


나오시마 섬

시코쿠(四國地方)에 위치한 다카마쓰(高松) 항구에서 배를 타고 약 20분 정도를 가면 나오시마 섬에 도착한다. 이 섬은 면적이 약 14.2km²의 작은 마을로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한적한 곳이다. 섬 전체를 도보로 여행하는 것도 가능할 만큼 작은데, 현재는 세계적인 예술의 성지로 거듭나며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인구 3천여 명인 작은 섬에 연간 수십만 명이 다녀가고 3년마다 열리는 '베네세 트리엔날레' 기간에는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 이처럼 나오시마는 활력이 가득한 섬이지만 이곳에도 어두운 과거는 있었다.


나오시마는 미쓰비시 구리제련산업으로 번영했으나 제련소에서는 끊임없이 매연과 유독 가스가 나왔다. 바닷물은 오염이 되고 섬의 나무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1980년대에는 제련소가 문을 닫아버렸고 나오시마는 버려진 섬으로 전락하였다.

후쿠타케 소이치로 회장

이 황폐한 섬에 변화를 이끌어 온 인물은 베네세 홀딩스의 회장인 후쿠타케 소이치로(福武總一郞)이다. 그는 이 섬에 ‘예술’을 접목했다. 안도 다다오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나오시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2년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이 개장했고, 2004년 ‘지추미술관(地中美術館)’이 설립되었다.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과 마찬가지로, 지추미술관도 나오시마의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신념이 녹아 있다. 뮤지엄 산의 ‘백남준 관’처럼 지추미술관은 안도 다다오 특유의 회유(回游)하는 동선으로 구성돼 있다. 진입 공간부터 점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2010년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현대 미술가인 이우환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우환미술관’이 완공되었다.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



지추미술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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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추미술관 내부



이우환미술관

이처럼 나오시마 섬 곳곳에서는 미술관과 예술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오시마 섬의 미술이 단순히 미술관이라는 ‘비일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오시마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주민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후쿠타케 회장의 바람이 미술관에 녹아 있다. 예술은 주민들에게 활력을 선사했다, 홍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주인공인 주민을 지우지 않았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이었다.


나오시마 섬의 미술관과 예술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가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진정한 아름다움은 주민들의 삶과 어우러져 빛을 발한다. 섬 곳곳에 흩어져 있는 예술 작품들은 주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으며,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단순히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예술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지를 체험하게 된다. 나오시마 항구에 내리자마자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이 무심한 듯 고향에 돌아온 주민들을 맞이한다.

페리 선착장의 쿠사마 야요이 작품 "빨간 호박"

  나오시마 섬의 사례는 예술과 지역 발전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한때 엘리트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예술은 이제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지역 발전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나오시마 섬의 예술적 변신은 단순한 관광 명소의 탄생이 아닌, 지역 주민들의 삶과 어우러져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변화의 상징이다. 나오시마 섬의 성공은 예술이 단순한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젊은달'에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다. 영월의 ‘젊은달’에 주목하는 이유는 예술을 통해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펼쳐나가는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젊은달 와이파크' 전경

‘젊은달 와이파크’, 영월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다


1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젊은달 와이파크'는 과거 술샘박물관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콘텐츠를 도입하고 전시 공간을 리모델링한 미술관이다. 영월이 ‘박물관, 미술관의 도시’라는 별칭을 가진 만큼 술샘박물관도 비슷한 역할을 기대했지만 특별한 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만들어 놓으면 사람들이 자연히 찾아올 것이라는 공급자 마인드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과거 연간 방문객이 5천 명에 불과했던 영월의 술샘박물관이 오늘날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젊은달 와이파크'로 화려하게 탈바꿈했다. 무엇이 이 변화를 가능하게 했고 그 의미는 무엇일까?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

'젊은달 와이파크'의 김대헌 팀장

 그 의미는 ‘젊은달’에 근무하고 있는 김대헌 팀장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김대헌 팀장은 영월에서 태어났지만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젊은달’이 생기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젊은달’의 팀장이 되었다. 나오시마 섬처럼 ‘젊은달’이 영월 지역과 영월 주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례를 김 팀장을 통해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젊은달’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영월 출신들이다. 김대헌 팀장은 관광객들이 "젊은달 와이파크 때문에 영월에 왔다"라고 말하는 순간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말에는 예술이 단순한 전시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삶에 스며들어 그들의 일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힘이다. 이는 미술관이 어떻게 지역 사회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가 느끼는 보람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감동이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함께 성장하는 과정을 나타낸다.


영월의 이미지 변화

단종이 묻힌 장릉(莊陵 )

미술관은 젊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영월의 이미지를 젊고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영월은 비참하게 죽은 단종의 장릉이 있는 곳으로 비극적인 붉은 색을 떠올리게 했었다. 원래 ‘단종’의 ‘단(端)’은 ‘붉을 단(丹)’ 아니라 꼭대기라는 의미지만 단종의 생애 때문에 ‘붉을 단’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젊은달’의 상징색인 붉은색이 단종의 붉은색을 대신해 영월의 색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과 방문객들은 영월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이는 지역의 문화적 분위기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한때의 번영을 간직한 채 시간이 멈춘 듯했던 영월에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영월의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


새로운 콘텐츠와 공공미술의 대안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 ‘열린관광 환경 조성(82억원), 폐산업시설 등 유휴공간 문화재생사업(256억원), 문화도시 조성(364억원), 계획공모형 지역관광 개발(282억원)’등 막대한 예산이 공공미술의 발전에 쓰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예산이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통적인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종종 보여주기식으로 지어지고 실제 지역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젊은달’은 정부 주도의 일방적인 예술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협력하여 지속 가능한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지역의 공무원들이 ‘젊은달’의 성공 방식을 배우기 위해 답사를 오고 있다. 이는 ‘젊은달’이 전국 공공미술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미술관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1960년대 미국에서 엘리트주의 미술관을 비판했던 다니엘 뷔렌(Daniel Buren)은 작품을 미술관의 창문 밖으로 나가게 전시함으로써 미술관 내에서는 추상 회화지만 미술관이라는 '제도'를 벗어나면 단순한 플랭카드로 보여지게 했다. 이러한 제도비판 미술이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발전한 사례로도 볼 수 있는 ‘젊은달’ 이야기는 앞으로도 활약을 기대하게 한다.

다니엘 뷔랑, 기념사진: 틀 안 그리고 그 틀을 넘어서, 1973

생활 속의 예술, 새로운 삶의 풍경


나오시마와 ‘젊은달’은 예술이 지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단순히 작품 전시에 머물지 않고,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며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적극적 역할을 수행한다. 이 두 곳은 예술이 엘리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누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두 예술의 공간은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그 속에는 비슷한 영혼이 깃들어 있다.


‘젊은달 와이파크’에서의 하루는 영월의 변화를 체험하는 시간이었고 이곳이 어떻게 지역 사회를 젊은 공간으로 바꾸고 있는지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영월은 이제 과거의 영광을 넘어 새로운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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