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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Aug 06. 2024

스페인 레이나 소피아 국립중앙미술관

[고영애의 건축기행]

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피카소의 '게르니카'만으로도 꼭 들러야 할 미술관"
-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에 의해 확장
- 주소: Calle de Santa Isabel, 52, 28012 Madrid, Spain
- 홈페이지: www.museoreinasofia.es  
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소피아 미술관의 전경 (사진 고영애)

수도 마드리드는 이베리아반도의 중앙에 위치한 스페인의 정치·예술·문화의 중심지이며 수많은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본향이기도 하다. 초현실주의 작가이며 엽기 예술가 달리, 광기의 영화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광적인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을 비롯해 마요르 광장 주변에서 매일 벌어지는 기이한 퍼포먼스는 멋진 볼거리 중 하나다.


마드리드 시가지를 지나 마요르 광장과 에스파냐 왕궁을 들른 후 레이나 소피아 국립중앙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미술관은 스페인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줄여서 ‘소피아 미술관’이라고도 부른다.

장 누벨이 리모델링한 복잡한 형태의 천정과 외부 계단 (사진 고영애)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재 미술관의 본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16세기에 펠리페 2세에 의해 왕실을 위한 병원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후 18세기에 카를로스 3세에 의해 또 다른 병원 시설이 추가되고 확장되었지만 1965년에 폐쇄되기에 이른다. 이 건물은 수차례 철거의 위기를 넘기고 마침내 1986년 레이나 소피아 아트센터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1988년 국립미술관이 되었으며, 1992년 스페인 왕비인 소피아의 이름을 따서 재설립하였다. 


2005년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프랑스 건 축가인 장 누벨의 디자인으로 증축 공사가 완료되었다. 새로운 신관 건물을 누벨 관으로 부른다. 


확장된 신관 건물은 전시관 외에도 콘서트 홀, 도서관, 서점, 레스토랑 등을 갖추고 있다. 장 누벨은 열린 벽과 사선으로 뚫린 천장을 통해 빛을 내부로 끌어들여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모호하게 만들고, 외장재로는 빨강과 검정(red-black) 컬러를 사용해 더욱 대조를 이루었다.

신관과 구관을 연결하는 공간에, 리히텐슈타인의 조각 '붓 자국' (사진 고영애)


소피아 미술관 레스토랑의 전경 (사진 고영애)

기존의 구관 건물은 가운데에 중정을 두고 ㅁ 자형으로 구성된 고전 양식의 건물이지만 외부의 통유리 박스로 된 엘리베이터에 의해 확연하게 현대적인 느낌을 더했다. 중정에 놓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조각 <붓 자국(Brush stroke)>은 지붕이 오픈된 ㅁ 자형 공간을 한층 멋스럽게 하였다. 바로 옆에 있는 레티로 공원(Parque de Retiro) 안에 있는 크리스탈 궁과 벨라스케스 궁 역시 소피아 미술관 소유로 사용되고 있었다. 


소피아 미술관에는 스페인의 근현대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한 4000여 점의 회화를 포함해 조각, 판화, 사진, 비디오, 설치미술을 총망라한 1만 6200여 점에 이르는 소장품이 있다. 피카소, 달리, 미로, 타피에스 등 20세기의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소피아 미술관 구관 앞에 놓인 조각 (사진 고영애)

소장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단연 20세기의 거장 피카소의 <게르니카>다. 이 작품은 1937년 파시스트 장군 프랑코를 지원하는 독일의 무차별 폭격에 의해 게르니카(Guernica)라는 바스크 지방의 작은 도시가 폐허가 된 비참한 상황을 묘사한 피카소의 대표작이다. 마침 그해에 열리기로 예정된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 벽화 제작을 의뢰받았던 피카소는 조국의 비보를 듣고 한 달 반 만에 대벽화를 완성하여 ‘게르니카’라고 이름을 붙였다.


미술관 4층의 커다란 방에는 오로지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 크기의 <게르니카> 한 작품만을 전시하고 있었고 이와 더불어 <게르니카>의 제작 과정에서의 스케치들과 부분 습작들을 전시하여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전쟁의 무서움과 민중의 분노, 슬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 <게르니카>는 극적인 구도와 흑백의 대비 효과를 통해 죽음의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피카소의 '게르니카' (사진 고영애)

상처 입은 말과 버티고 서 있는 소의 상징은 피카소가 즐겨 다루던 투우의 테마이기도 하다. 이 테마를 흰색과 검정색으로 압축시켜 처절한 비극성을 극대화시킨 <게르니카>를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게르니카 >는 파리 만국박람회 전시 이후에 구미 여러 나라에서 순회 전시를 가졌다. 그러나 스페인이 프랑코 체제로 독재화되자, 공화파 지지자였던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 <게르니카>가 스페인으로 반입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에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자유 회복 후에는 이 작품을 반드시 프라도 국립미술관에 되돌려줄 것을 조건으로, 뉴욕 근대미술관에 무기한 대여 형식으로 빌려주게 된다. 프랑코의 독재 시기에는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했던 피카소의 신념을 존중하여 1981년에야 비로소 스페인에 반환되어져 조국의 품 안으로 돌아와 마드리드의 프라도 국립미술관에 소장되었다.


그 후 보관상의 문제 제기로 인해 <게르니카>는 정치인과 예술가들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1992년 레이나 소피아 국립 중앙미술관으로 옮겨져 이 미술관의 가장 자랑스러운 소장품으로 자리한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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