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아트 Aug 09. 2024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 부산 길후 개인전《불이(不二)》

헤아릴 수 없는 진리를 그리다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 길후 개인전 《불이(不二)》개최
구작 10점과 평면 및 조각 50여 점 선보여

만물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인간이 헤아릴 수 없는 ‘진리’가 이미지로 표현된다면, 그것은 칠흑 같이 어두운 적막한 우주 공간 속에 흰 점이 찍힌 모습일까? 아니면 우리 몸속에서 끊임없이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세포처럼 특정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모습일까.

길후 작가, 학고재 제공

부산 ‘빌라쥬 드 아난티’에서 길후(b.1961) 개인전 《불이(不二)》가 8월 31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전시는 2021년 학고재에서 개최된 《혼돈의 밤》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구작 10점과 새롭게 선보이는 평면 및 조각 50여 점으로 구성된다.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다


길후 작가는 만물의 근원과 감각의 영역을 초월하는 정신성을 수십 년간 탐구해 왔다. 고요한 깨달음의 순간을 담은 미륵불의 초상부터 세상의 창조적 에너지를 그려낸 유화, 이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조각까지, 하나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해서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다채롭게 변주되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화두는 바로 ‘깨달음’이다. 작가는 2000년대에 들어서 불학에 정진했다. 특히 불교에서 최고의 경지로 여겨지는 ‘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시각화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길후 Gil-Hu, 현자 The Wise Man, 2022,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200x130cm, 학고재 제공

깨달음의 세계를 우리는 ‘불립문자’라 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교리나 언어로 진리를 헤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천 년간 여러 방편을 통해 진리를 문자화하고 시각화해 왔다. 길후의 예술 세계 또한 이러한 헤아릴 수 없는 진리와 깨달음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다.


일체가 평등한 경지, 침묵의 세계 ‘불이(不二)’


불교 경전인 『유마경』에서는 대립을 떠난 경지를 ‘불이(不二)’라 부른다. 선과 악, 빛과 어둠,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의 경계가 사라져 일체 평등한 경지가 불이의 의미다. 번뇌가 즉 보리이고, 보리가 즉 번뇌라는 뜻이며, 생사와 열반에 구분이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써 표현하고 규정하는 행위 자체가 진리가 될 수 없음을 유마거사(고대 인도의 상인으로 석가모니 부처의 출가하지 않은 제자)는 침묵으로 설하였다.

길후는 이 침묵의 세계를 시각 예술로 승화한다. 2010년대부터 선보인 <현자>와 <사유의 손>에서, 작가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인간의 삶에서 포착된 깨달음의 순간을 그려냈다. 인물을 전경에 크게 내세운 파격적인 구도와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그의 선에서 그 어떤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길 후 GIl-hu, 사유의 손 The Thinking Hand,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260x194cm, 학고재 제공

다양한 재료를 두텁게 쌓아 올린 표면은 마치 동굴 벽화를 떠올리며, 종교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요한 어둠 속에 자리한 인물은 열반의 빛을 느끼는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그를 둘러싼 주변과 하나 되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작품 속의 ‘현자’는 부처인 동시에 작가이기도,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기도 하다. 바르게 보고 행하는 수행을 거쳐 누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길 후 GIl-hu, 무제 Untitled, 2022, 캔버스에 아크릴릭 Acrylic on canvas, 200x130cm (2), 학고재 제공

작가는 2020년대부터 막힘없이 단숨에 써 내려가는, 선적인 요소가 지배적인 유화를 선보여왔다. 흩날리듯 켜켜이 쌓아 올려진 선에는 흘러내리거나 솟구쳐 오르는 고정불변한 진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간의 형상 같기도, 커다란 나무의 모습 같기도 한 형체는 꿈과 같은 우리의 삶을 연상시킨다. 현상의 모든 것은 우리가 매 순간 선택한 마음의 거울에 따라 그 모습과 느낌을 달리한다. 작가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일체유심조(모든 것은 오직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이라는 뜻. 초기 대승불교의 핵심 경전인 화엄경에서 유래함), 즉 마음의 세상임을 상기한다. 전시는 8월 31일까지.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4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