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태어난 아이 ②]
홍일화 화가, 제주도 곶자왈을 배경으로 하는 어른이 읽는 동화
가시덤불
나무가 바람에게 부탁해 불러 온 탱자나무 가시는 너무 크고 단단해서 오히려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눈에 띈다는 건 그만큼 더 관심을 불러 모으는 일이었다. 보이지 않을 때 두려운 것이지 보이는 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덤불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도구들을 모아 왔다.
톱과 도끼를 이용해 가시덤불을 자르고 뜯어내 태우기 시작했다. 연약한 동물과 식물들의 보금자리였던 가시덤불 숲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사람들은 가시 때문에 접근하지 못했던 숲속으로 다시 몰려들었다.
곧게 하늘로 쭉 뻗은 소나무들은 훌륭한 목재였다. 비단 소나무만은 아니었다. 나무가 곧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활용가치가 높다는 의미였다. 숲은 또다시 파헤쳐지고 망가졌다. 숲속의 새들과 동물들은 다른 삶의 터전을 찾아 이동했다. 식물들도 움직이고 싶었다.
팽나무는 또 다시 땅에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땅은 아무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나무들은 주변의 풀들과 남겨진 덤불에게 앞으로 살아남는 방법에 대해 의논을 했다.
(구지뽕나무) “사람은 직선으로 쭉 뻗은 큰 나무만 좋아하니 이제부터 곡선으로 구부러져 자라야겠어. 그리고 안 잘려나가기 위해선 얇아져야만 해.”
그러자 사람들 발에 밟히고 짓이겨지고도 살아남은 작은 풀들이 입을 열었다.
(좀쇠고사리) “우리는 작고 부드러워서 밟혀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어.우리처럼 덤불을 부드럽게 만들면 어떨까?"
(새끼노루귀) “그래. 좋은 생각이다. 얇고 부드럽지만 아주 튼튼한 벽이 되는 거야.”
(벌깨냉이) “여기에 더해 그전처럼 눈에 쉽게 보이는 큰 가시가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들로 촘촘하게 가지들을 덮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그냥 풀들이 모여 있구나 생각하고 뜯어 버리려 하다가 손과 팔 그리고 온몸에 가시가 다 박힐 거야.”
(참개별꽃) “그러면 아프고 따갑다고 소리치면서 도망가겠지...”
(바보여뀌) “생각만 해도 신나는데...”
작은 풀들은 멀리 있는 나무에게도 회의 내용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땅 속에 내려져 있는 뿌리들을 길게 가로로 뻗어나갔다. 뿌리와 뿌리를 서로 연결했다. 나무와 풀들의 뿌리들은 땅 속에서 끊임없이 연결되어 덤불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였다. 이제 바람의 도움만 있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람은 나무들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유연하면서 얇고, 질기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덩굴식물 씨앗들을 땅에 뿌려 주었다. 가시박, 돼지풀, 꺼끄랭이풀... 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성장해갔고 나무들에 기대어 하늘로, 하늘로 계속 올라갔다. 이중에 제일 으뜸은 가시박이였다. 가을이 되면 흰 가시로 뒤덮인 별사탕 모양의 열매가 한 그루당 2만 5천개 이상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별사탕은 정말 좋은 무기였다. 식물들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덤불을 파헤치고, 자르고, 불태우기를 반복하면서 덤불 제거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나뭇가지마저 둘러싼 덤불의 수에 이겨낼 수 없었다.
덤불과의 싸움에 점점 지쳐갔고, 끝이 없는 싸움이라 여기며 포기하는 사람의 수는 늘어만 갔다. 덤불이 없는 곳을 찾아 떠났다. 승리는 자연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무와 풀들은 덤불에게 고마움을 말하며 영원히 같이 가자고 했다. 하지만 덤불은 거침없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덤불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단단한 무언가에 기대야만 했다. 촉수에 닿는 나무면 무조건 감아 올라탔다. 여러 종류의 덩굴이 한꺼번에 뒤섞여 올라가다보니 가시덩굴 옷을 입지 않은 나무가 없을 지경이었다. 덩굴들은 땅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처져 있는 또 다른 덩굴 위로 올라가며 새로운 나무를 찾아갔다. 사람이 떠난 숲에 덩굴들만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었다. 더 이상 올라탈 나무가 없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두꺼운 덩굴이 나무의 역할을 대신 해야만 했다. 덩굴에 덩굴을 더했다. 계속해서 꼬여만 갔다. 덩굴이 온 숲을 덮어버리자 햇빛은 나무와 풀들에게 나누어 줄 빛이 없었다. 빛은 덤불의 몫이었다. 햇빛을 보지 못한 나무와 풀들은 답답하고 숨이 막혔다. 너무 욕심을 부렸나 보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과 덤불의 전쟁이 아니었다. 덤불 속에 가려진 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버려야 했다.
나무는 잘려 죽는 게 나은지, 숨 막혀 죽는 게 나은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고민에 휩싸였다. 도움을 청할 곳이 없었다. 침묵의 땅이 도와 줄 수도, 바람이 더 많은 씨앗을 가져다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나무가 온갖 힘을 쏟아내어 하늘로 올라가려고 해도 그물망은 촘촘하였으며 견고하였다. 나무가 덤불에게 이제 사람들이 떠났으니 우리를 놓아 달라고 해도 덤불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들 또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너무 심해져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나무는 덤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용히 뿌리와 뿌리를 뻗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가 다치지 않으면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