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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그타임, 당김음의 향연

[김정식의 재즈 에세이]

by 데일리아트

래그타임이 미국에서 유행할 당시 유럽에서는 낭만주의 음악에 대항하여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음악 사조가 성행하고 있었다. 인상주의 음악의 선봉장이었던 드뷔시(Claude Debussy)는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파리 만국 박람회’를 통해 래그타임을 접하게 된 후 곧바로 이 미국발 유행 음악에 매료되고 만다. 특이하게도 래그타임과 함께 미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민스트럴 쇼와 보드빌 쇼 같은 유랑극단에 특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드뷔시는 그 쇼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 주기도 했다.



래그타임을 응용한 작품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자신의 어린 딸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어린이 차지’(Children’s Corner) 모음곡의 제6번 ‘Golliwogg's Cake Walk’이다. 래그타임 특유의 왼손 피아노 연주로 뒤뚱거리며 걷는 괴물의 걸음걸이를 묘사하며 시작하는 이 음악은 이내 인상주의 특유의 모호하고 환상적인 선율과 화성이 어우러지며 오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1307_2754_126.jpg 스트라빈스키와 재즈 피아니스트, 김정식 그림

현대 클래식 음악의 또 다른 혁신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도 발레 음악 ‘병사의 이야기’ (L'Histoire du Soldat) 중에서 ‘악마의 춤’(Danse du diable)과 ‘피아노를 위한 11개의 래그타임’(Ragtime for Eleven Instruments)에 래그타임에서 받은 특별한 인상을 심어 놓았다. 서양 음악의 전통을 거스르며 숱한 파문을 일으켰던 두 대가가 그야말로 가장 세속적이며 문화적으로 신흥국인, 미국에서 유행하는 흑인 음악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수백 년 유럽 전통 음악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만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경쾌하게 긴장감을 높이는 당김음, 래그타임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 ‘싱코페이션’은 서양 클래식 음악에서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14세기 작곡가 기욤 드 마쇼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미사’에서부터 16세기부터 영국에서 유행하던 춤 곡을 이탈리아풍 협주곡으로 작곡한 헨델의 ‘수상음악’, 그리고 18세기 바로크 음악에 이르기까지 순간적으로 리듬의 강세를 바꿔 새로운 감정을 이끌어내는 싱코페이션의 매력을 사용한 예는 너무도 많다.


1307_2755_1317.jpg 베토벤 재즈 트리오, 김정식 그림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에 이르러서는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과감하고 과장되게 당김음이 사용되었다. 베토벤의 제9번 교향곡 ‘합창’ 2악장에서 주제를 확장하는 곳에 사용한 현란한 당김음과 교회에서 찬송가로도 불리는 4악장의 ‘환희의 주제’, 그 세 번째 단에서 4분음표를 강하게 당겨서 부르는 부분은 주관적이고 어쩌면 허풍을 떠는 듯 과장된 낭만주의 정신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다. 거기에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 슈만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자신의 연인인 클라라에게 바치는 곡, ‘슈만 판타지’ 제2장에서 보여주는 당김음은 오늘날 라틴음악에서 행해지는 싱코페이션처럼 모든 멜로디를 당겨서 연주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그 어떤 음악에서도 래그타임이 주는 그 간결하면서도 마음을 들뜨게 하는 독특한 매력은 느낄 수가 없다. 장난스럽게 반복하는 선율들, 아무리 간단한 멜로디라도 순간적으로 강세의 위치를 바꾸며 특별한 주제로 들리게 하는 마법 같은 당김음의 향연, 거기에 마치 래그타임 전용 화성 진행이라도 있는 것처럼 하나 같이 친숙하게 들리는 베이스 진행이 왼손 피아노의 강한 터치로 청자를 흥분시킨다. 한편으로는 래그타임을 듣고 있자면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감정 중에 어쩌면 그렇게도 단순하게 신나고 흥겨운 느낌만을 뿜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생기게 한다.



1970년대 후반 미국 작가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뿌리(Roots)‘에는 노예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피들러(fiddler)'라고 불렸는데, 그들은 자유를 사기 위해 남부 전역을 돌아다니며 끝없이 연주했다. 그러나 끝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자유를 얻는다 해도 또 다른 사회적 차별에 고통받아야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음악으로 춤꾼들의 춤을 자극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재능임에 틀림없었다.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를 거두며 노예해방이 이루어졌지만, 인종 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거 피들러의 후예들이 보다 감각적인 연주 기술을 가지고 등장하기 시작했다. 스콧 조플린의 경우처럼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자랐지만 음악 교육을 받은 '아메리칸-니그로'와 제리 롤 모튼의 경우처럼 1803년까지 프랑스령이었던 루이지애나주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크리올’(creole)이 바로 그들이다. 두 부류의 새로운 연주자 그룹은 초기 피들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에서 음악 공부를 했으며 기량 또한 출중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앞서 언급한 유럽의 서양음악사에서 행해졌던 수많은 당김음의 사례을 착실히 연습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1307_2756_1521.jpg 유비 블레이크, 김정식 그림

아메리칸-니그로는 아프리카에 가까운 음악적 감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앞으로 중요하게 대두되는 블루스 음악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반면 크리올은 어쩌면 백인보다도 훨씬 유럽의 문화를 폭넓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특히 프랑스 문화, 즉 장례 문화, 행진곡, 브라스 밴드 등 훗날 재즈의 태동에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들을 제공했다. 그들은 백인보다 클래식 음악 전통에서 자유로웠을 것이고 백인들보다 훨씬 유연하게 음악을 즐기고, 또 새로운 음악을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가져온 이국적인 리듬들이 흑인 특유의 감성으로 새로게 조합되며 드뷔시와 스트라빈스키 같은 대 음악가까지 현혹시키는 독특한 음악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춤 문화 외에도 래그타임 유행을 이끈 또 하나의 요인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국 중산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피아노의 대중화였다. 가정에서 쉽게 연주할 수 있는 악보의 수요가 늘어났다. 당시의 래그타임 연주는 재즈의 형태를 갖추기 이전 상태로 피아노 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악보를 보고 충분히 연주할 수 있었다. 래그타임은 스콧 조플린 이후 피아니스트 유비 블레이크, 젤리 롤 모턴 등에 의해 발전을 거듭해 오다 재즈의 또 다른 요소, 블루스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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