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갈등

[숲에서 태어난 아이 ③]

by 데일리아트
화가 홍일화의 《어른이 읽는 동화》
"가시는 상처이자 아픔이야. 상처받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야.”

이 동화는 홍일화 작가가 제주도 곶자왈에서 생활할 때 숲의 원시림 속에서 자연스럽게 피어오르는 무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쓴 〈어른이 읽는 동화〉입니다. 동화 속 〈곶자왈〉을 그린 그의 작품도 함께 게재합니다. 홍작가는 그림으로 모두 표현 할 수 없는 숲의 이야기를 동화로서 표현했습니다.

1356_2862_5615.jpg 홍일화,곶자왈 풍경

《3장 갈등》


나무는 덤불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용히 뿌리와 뿌리를 뻗어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이 생각의 교환은 금방 탄로가 나버렸다. 나무들만 대화를 하기위해 선별적으로 뿌리를 선택하고 차단해서 얘기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모든 뿌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모든 대화는 공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숲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나눔이었다. 가지와 가지로 잎과 덩굴로 그리고 바람으로, 햇살로... 가시덤불들은 불쾌했다. 아니 울화가 치밀었다.


(노박덩굴) "새처럼 날개가 있니! 노루처럼 빨리 달릴 수가 있니! 발 빠른 토끼처럼೿숨을 수가 있니! 아무것도 못한 채 꼼짝없이 인간들에게 당하기만하잖아. 도망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어.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가지, 잎, 껍질들을 포기하고 뾰족하게 가시로 만드는 거라고...


가시를 만드는 건 얼마나 큰 고통인 줄 알아? 피부를 뜯어내 딱딱하게 굳히고 뜯겨진 피부에서 새로운 피부가 자라낼 때까지 쓰라린 고통을 참아내야 한다고... 그런데 이런 가시를 만드는 게 한 두 개가 아니고 수 천, 수 만개야. 온몸을 가시로 만든다고...

1356_2867_4729.png 홍일화, 곶자왈 2019

(섬다래) “우리도 예쁨 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누군들 안 그러겠어!


근데 어떻게 해? 살아야지. 우선 살고 봐야 할 거 아니야. 그리고 너희들처럼 예쁘고 잘 생기면 뭐해? 뭐가 더 나은데...? 아름다움을 권력으로 생각하지 마.”


(청미래덩굴/망개) “예쁘면 예쁜 대로 꺾이어서 장식으로 쓰이다 말라죽고 곧게 뻗어 튼튼하게 잘생기면 도끼나 톱에 베여서 집 짓는데 사용되거나, 가구로 만들어지니 결국은 모두 죽고 말잖아...


어떻게 된 게 잘생기고 예쁘면 먼저 죽어버려. 그러니 이 모든 게 살기 위한 선택이잖아. 왜 우리에게만 뭐라 그러냐고...”

1356_2868_4810.png

홍일화, 가시덤블 2021


홍일화의 가시나무는 한 갓 골칫거리인 교란종의 식물이 아닌,


상처의 무덤으로 이루어진 폐쇄회로 혹은 고통의 흔적,


우리가 잃어버린 법과 상상력을 되찾기 위한 가시면류관이다.


인간이 떠나버리고 문명이 망쳐버린 숲을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희생을 자처하여 다시 싹트고 움트며


새록새록 열어간 생명의 길을 지키는 반짝이는 숲의 정령인 것이다.


차경림(갤러리 마리 아트디렉터)


(노박덩굴) "우리가 틀린 거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한 거야." 덩굴들의 말에 두릅나무, 엄나무, 가시오가피도 덩굴들의 말이 옳다고 소리를 더했다. 그러자 모든 나무와 풀들은 가시의 입장에 대해 그 어떤 반박도 할 수가 없었다.침묵이 흘렀다.


(벌깨덩굴) “너희는 보기 좋다고 사람들에게 관심이라도 받지! 우리는 보이는 순간 제거 당하고 미움 받고 천대받으면서 지금까지 계속 버텨 온 거야.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태어난 이상 살아야 되잖아.버티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걸 가시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면서 그저 생존하기 위해서 버티는 거라고...”


(노박덩굴) "알겠어? 모르겠지.우리의 심정정도는 이해할 수 있냐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물러나라니… 도대체 이게 어떤 상황인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청미래덩굴/망개) "너희들마저..."


1356_2863_5710.jpg 한이수,곶자왈에서 발견한 식물, 나무에 울퉁불퉁한 가시가 솟아 있다.

(섬다래) "가시는 상처받은 이의 마지막 메시지인거야. 누군가를 아프게 하려고 공격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고... 제발! 제발! 그냥 내버려달라고...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며 만들어낸 간절한 바램이야. 가시는 상처이자 아픔이야.


상처받은 자의 마지막 선택이야.”


(벌깨덩굴) “우리 스스로도 가시 때문에 아파... 자기방어를 위한 것일 뿐인데, 공격을 위한 무기로 여기는 갇혀진 편견에서 벗어나줘. 너희들만이라도... " 울분을 주체할 수 없던 나머지 감정이 격해져서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개가시나무) "우리 입장에서 불편함과 어려움만 먼저 생각해서 미안해. 우리만의 오해로 인해 자연 대 인간의 싸움이 아닌, 우리끼리의 자멸의 연결 고리로 이어져 갈 수 있으니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자. 가시덤불은 계속해서 그 수를 늘려 나갈 테고 나무들은 덤불에 가려져 숨쉬기 힘든 상황이 된 건 모두 사실이야. 인간 때문에 우리만 구석에 몰려서 찌그러지듯이 눌러 붙어서 다툴 수만은 없지 않니? 그리고 우선, 우리의 땅을 다시 찾아보자.”


(밤일엽) “가시덩굴들아 먼저 사람들의 땅으로 나아가 줄 수 있겠니? 나무들보다는 너희들이 좀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부탁 하는 거야. 너희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하는 건 아니야! 부디 오해하지 말아줘. 나무가 너희들만큼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우리가 뒤를 이어가 너희들의 버팀목이 될게." 밤일엽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설명 덕분에 점점 분위기는 안정되어 갔다. 덩굴들은 서서히 인간의 결계를 쳐놓은 담벼락으로 이동을 하며 아스팔트와 시멘트 틈사이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조금씩, 조금씩 그 수를 늘려가며 견고하게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시 덩굴을 본 사람들은 전지가위를 가지고 나와 마구 잘라댔다. 하지만 이는 예상되었던 것이다. 이미 땅속에는 많은 뿌리를 내린 덩굴들이 있었다. 덩굴은 기하급수적으로 줄기를 뻗으며 담벼락을 타고 올라갔다. 제발! 제발! 그냥 내버려달라고...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며 만들어낸 간절한 바램이야.


(벌깨덩굴) “우리 스스로도 가시 때문에 아파... 자기방어를 위한 것일 뿐인데, 공격을 위한 무기로 여기는 갇혀진 편견에서 벗어나줘. 너희들만이라도... " 울분을 주체할 수 없던 나머지 감정이 격해져서 더 이상의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잠시 또 정적이 흘렀다.

1356_2865_5830.jpg 한이수,나무들이 엉켜있는것은 모습은 곶자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개가시나무) "우리 입장에서 불편함과 어려움만 먼저 생각해서 미안해. 우리만의 오해로 인해 자연 대 인간의 싸움이 아닌, 우리끼리의 자멸의 연결 고리로 이어져 갈 수 있으니 좀 더 현명한 방법을 찾아보자. 가시덤불은 계속해서 그 수를 늘려 나갈 테고 나무들은 덤불에 가려져 숨쉬기 힘든 상황이 된 건 모두 사실이야.

인간 때문에 우리만 구석에 몰려서 찌그러지듯이 눌러 붙어서 다툴 수만은 없지 않니?그리고 우선, 우리의 땅을 다시 찾아보자.”


(밤일엽) “가시덩굴들아 먼저 사람들의 땅으로 나아가 줄 수 있겠니? 나무들보다는 너희들이 좀 더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부탁 하는 거야. 너희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하는 건 아니야! 부디 오해하지 말아줘. 나무가 너희들만큼 속도가 빠르지는 않지만 우리가 뒤를 이어가 너희들의 버팀목이 될게."

밤일엽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설명 덕분에 점점 분위기는 안정되어 갔다. 덩굴들은 서서히 인간의 경계를 쳐놓은 담벼락으로 이동을 하며 아스팔트와 시멘트 틈사이로 계속해서, 끊임없이, 조금씩, 조금씩 그 수를 늘려가며 견고하게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시 덩굴을 본 사람들은 전지가위를 가지고 나와 마구 잘라댔다. 하지만 이는 예상되었던 것이다. 이미 땅속에는 많은 뿌리를 내린 덩굴들이 있었다. 덩굴은 기하급수적으로 줄기를 뻗으며 담벼락을 타고 올라갔다.이 세상 모든 건 진화한다. 사람들의 모든 기준은 예쁘고 아름다운 외관에만 치우쳐져 있다는 것을 덩굴들은 알기에 계절에 상관없이 온 몸으로 짜내듯 꽃을 피워냈다. 이에 더해 빨갛고 새콤달콤한 열매 또한 보란 듯이 선물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토록 혐오하던 가시덩굴들에게 향했던 시선이 달라졌다. 편협 된 시선에서 호감어린 시선으로… 인간들은 열매를 얻기 위해 그토록 회피하던 덩굴로 몰려들었다. 덩굴들은 이제 가시를 만들기 보다는 인간들을 현혹시킬 꽃과 열매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어린아이들이 열매를 따기 위해 덩굴 쪽으로 향하다 가시에 찔려 피가 나는 일의 빈도가 높아지자 그 잠깐의 평화로운 꿈은 바람에 날려버리듯 순식간에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가시는 다시 제거대상이 되었다. 이뿐 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친김에 다시 숲으로 들어와 가시덩굴들을 모조리 제거하기에 뜻을 더하더니 이내 인간들의 영토 확장의 욕구가 다시 피어올랐다.

1356_2866_5851.jpg 홍일화는 숲의 대지에서 솟아나는 넝쿨과 덤불을 숲의 생명력으로 보있다.

예전과는 달랐다. 인간은 가시덩굴 제거에 대해 더욱 체계적으로 연구를 하고 집착으로 빠져 들어갔다. 심지어 나무와 꽃들을 뽑아낸 후 인간들이 구경하기 편하도록 길을 만들어 재배치를 하였다. 사람들의 생각과 도구는 계속 진화했지만 자연은 이 속도를 따라 갈 수 없었다. 나무와 풀들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더 이상 떠올리지 못한 채 다시 한 번 땅에게 도움을 청했다. 땅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없는 나무들은 그저 간절함을 담은 기도만을 계속 할 뿐…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356

keyword
작가의 이전글영혼의 숲을 그리다...조명식 '프네우마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