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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태어난 아이

[숲에서 태어난 아이 ④]

by 데일리아트
아이의 머리에서 분홍빛들이 톡톡 튀어나오더니 무수히 작은 투명 가시들이 실처럼 길어졌다.

4. 숲에서 태어난 아이

1399_3021_548.jpg 홍일화, 곶자왈 풍경

숲에 어둠이 내렸다. 그동안 숲에서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모양의 새로운 가시 풀들이 땅밖으로 뚫고 솟아 나오기 시작했다. 애써 힘을 내 꿈틀거리는 연야린 가시 줄기들은 투명하였고, 영롱한 빛을 내며 길게 힘겹게 뻗어갔다. 투명한 실핏줄과 같은 얇고, 가냘퍼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만 같았다. 사방에서 나온 실 줄기들이 한쪽 방향으로 모여들었다. 맑은 줄기 속에서는 신비로운 분홍빛들이 새어나왔다. 선들이 얽힐수록 빛은 점점 더 밝아져 눈부심에 그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커다란 분홍빛은 점점 밝은 하얀빛으로 변해가고 어둠을 삼키며 커다란 횃불과도 같은 빛의 덩어리로 주변을 점점 더 밝혔다. 땅이 자연에게 주는 새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밝음이었다. 점점 밝음이 다시금 어둠 속으로 사라지며 둥글고 투명한 반죽과도 같은 형태가 아무런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투명덩어리에서 작은 깨알 같은 빛들이 사방에서 켰다, 꺼졌다, 반짝임을 반복하면서 덩어리들이 꿈들 거렸다. 나무들은 숨을 쉴 수 없었다. 너무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투명덩어리는 꿈틀거렸다. 나무 가시와 같은 모양이 팔 다리처럼೿튀어나오다가 들어가고, 무수히 많은 가시들이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였다. 빛 또한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형태의 변화가 이루어질 때마다 굵고 가는 빛들이 반복적으로 새어 나왔다 사라지곤 했다.


점점 나무와 사람의 형태를 섞어 놓은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 이는 마치 나무를 붙여서 만들어 놓은 사람의 모양과 흡사했다. 하지만 가냘프고 연약해 보이는 여자아이의 모습과도 같았다. 삐죽삐죽 가시와 나무 가지가 튀어나와 있는 날카로운 형태는 둥글게 변해가며 8,9세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의 모습의 형태로 변해갔다. 투명 아이의 모습 속에서 분홍 점들이 다시금 반짝였다. 하나, 둘씩 그 수가 늘어나면서 투명하던 형태는 분홍 점 빛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제는 그 형태를 좀 더 명확히 알아볼 수 있게 됐다.

1399_3023_1317.png 홍일화 Ep[ne p.e-1221 2021

숲에서 분홍아이가 태어났다. 아이는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빛이 꺼졌다. 숲은 다시금 어두운 적막에 휩싸였다. 어둠이 돌아오자 나무들은 아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분홍빛 하나가 깜빡였다. 수줍은 듯 했다. 작은 불빛 하나가 분홍아이의 살아있음을 나무들에게 알려주었다.나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머리에서 분홍빛들이 톡톡 튀어나오더니 무수히 작은 투명 가시들이 실처럼 길어졌다. 들쑥날쑥하던 길이들은 일정한 간격으로 정열 되어 머리카락의 형태를 보였다. 이후 눈, 코, 입, 귀의 위치에서 꿈틀꿈틀 하며 얼굴의 형태가 만들어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의 위치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시모양의 뾰족한 돌출된 돌기들이 동그란 형태로 변해가면서 나무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람의 모습과 제법 흡사해졌다.


아이는 다시금 숲의 모든 빛을 흡수하였다. 새로움의 탄생을 알리는 어둠이었다. 고요했다.숲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땅이 숲에게 준 반응이었다. 어둠은 나무들에게 침묵을 주었다. 생각의 시간을 주었다. 나무들은 침묵 속에 의심의 싹을 키웠다. 아이형태의 덩어리가 선물일지 재앙일지는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에는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중요하지 않았다. 재앙으로 부정하기에 너무나도 연약한 모습의 아이였다. 너무 앙상하게 메마른 모습이라 금방이라도 쓰러져 주저앉을 것 같았다. 서있는 게 신기하고 불안했다. 나무들은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땅은 아이에 대한 어떠 한 설명도 없었다.

(팽나무) “그냥 아이만 우리한테 보낸 건가? 근데 아이는 맞나? 투명한 가시넝쿨로 만들어 졌으니 가시 넝쿨 아닌가? 어떻게 하라는 거지?”


의문만 남았다. 그저 아이만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침묵의 시간이 끝났다. 빛이 피어났다. 아이의 투명한 몸 속에서 분홍 점들이 물 흐르듯 몸속을 흘러 다니며 생명의 순환을 숲에 알렸다.식물들이 의심을 품고 있는 사이에 새들과 동물, 곤충들이 아이에게 몰려들었다. 아이의 탄생 과정을 지켜본 식물들은 의심의 덩굴에 둘러싸여 아이를 반겨주지 못했다. 먼저 반기는 건 동물들이었다. 아이의 주변을 에워싸고 아이에게 주둥이를, 부리를, 촉수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몸에 붙어 있던 넝쿨들이 하나둘 땅속으로 사라지고 아이는 발을 땅에서 떼어 움직였다. 새, 동물, 곤충들이 모여든 이유는 움직이는 원동력을 나누어주기 위함이었다. 땅의 부름이었다. 아이는 발을 땅에서 떼자마자 주저앉아 버렸다.


이네 힘을 내어 팔로 땅을 딛고 일어났다. 움직일 때마다 형태가 변형되었고 가지들이 울쑥불쑥 튀어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점차 움직임의 안정을 찾아갔다. 아이의 성장과 적응은 인간의 속도와 달랐다. 모든 것이 빨랐다.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자 아이는 몸을 둘러싸던 동물과 새 곤충들을 하나하나씩 자세히 보았다. 아이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속의 분홍 점들이 빠른 속도로 이동을 하자 몸 형태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잠깐의 빛과 함께 아이는 노루로 변했다. 하지만 형태만 변했을 뿐 완벽한 노루의 모습은 아니었다. 투명노루였다. 아이는 아직 형태만 있을 뿐 색을 가지지는 못했다. 나무들의 의심은 계속되었다.

1399_3026_2845.png 신안의 팽나무 길

(팽나무) “땅의 아이는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네. 근데 이 능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지? 그리고 이 능력으로 자연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지?”


(노박덩굴) "아직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니 좀 더 지켜보자.”


(밤일엽) “이제 태어난 아이야! 아직 성장도 안했어. 오히려 아이는 우리가 신기할거야. 우선 의심하지 말고 지켜만 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잖아.”


막막할 뿐이었다.


(개가시나무) "기도를 들어준 거 같기는 한데... 도대체 아이 사용법을 모르니... 마냥 기다려야하는 처지가 아닌가?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지?”아이로 하여금 나무들에게 없던 조급함이 생겨났다. 나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답답한 마음으로 그저 아이를 지켜보았다. 팽나무는 세미소 숲의 증인이고 역사였다.


(팽나무) “우선 ‘왜’ 부터 생각해 보자? 왜 이 아이, 이 덩굴 덩어리, 아니다 먼저 뭐라 부를지 부터 생각해 봐야겠다. 마지막 형태가 어린 소녀이고 가시의 모습으로 시작을 하였으니 특별한 이름을 정하기 전까지는 가시 소녀라 불러보자.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땅은 가시 소녀를 자연에 만 들어 줬을까? 쓸데없이 빛을 내어가며 만들어 줬을 리, 아니 보내줬을 리 없을 텐데...”


잠시 고민을 하던 팽나무가 다짐을 한 듯 말을 이었다.


(팽나무) “아. 모르겠다. '왜'가 제일 어려울 거 같아.‘어떻게’로 들어가 보자. 아직 보아하니 갓 태어난 가시 소녀이니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주변 환경을 보고 변신하는 정도이고, 아직 의사소통도 안 되고, 걸음마도 배워야 하는 실정이야.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생각해 봐야겠어.”


(종가시나무) “먹는 건 무얼 먹는지, 알아서 크는지, 키워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할지는 우선 큰 다음에나 다시 얘기해봐야 할 거 같아. 어쨌든 중요한 건 가시 소녀가 인간세계로 나아가 자연을 위해 무언가 해주기를 바라는 건 다 똑같은 우리의 바램 일테니까…”

1399_3024_1350.png 홍일화, Epine p.e-1204. 1214.1221 2001

팽나무는 침묵했다. 팽나무의 말을 귀담아듣던 가시 소녀는 노루의 모습에서 소녀의 모습으로 다시 형태를 바꾸고는 팽나무를 쳐다보았다.그리고 다른 나무를 쳐다보고는 몸의 색을 팽나무와 같은 흙 회색으로 바꾸며 나무의 형태로 몸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어린 가지에 잔털을 빽빽하게 만들었다가, 울퉁불퉁 굵게 만들었다가, 어긋나게 뾰족한 잎의 수를 늘려가며 연 노란색 꽃을 피웠다가, 콩알만 한 초록색의 열매를 만들고는 금방 붉은색이 강한 노랑의 열매를 만들었다. 가시 소녀는 마치 팽나무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팽나무의 모든 성장과정을 자신의 몸 형태 변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당황한 기운을 보이던 팽나무는 애써 태연한 척 가시 소녀에게 물었다.


(팽나무) " 지금 너의 행동은 무슨 의미야? 나에 대해서 모든 걸 알고 있다는 거야?왜 나의 성장 과정을 굳이 다른 나무들 앞에서 보여주는 건데... 내 과거를 들춰내고 싶었던 거야? 아니면 나에 대해 다 알고 있으니 조용히 가만히 있으라는 거야?"


이렇게 말하자 가시 소녀는 팽나무로 변한 모습에서 가지 모양을 길게 늘여 팽나무를 향해 뻗어 나갔다. 계속해서 길게 늘어난 가지 모양의 촉수는 팽나무의 껍질에 닿았다. 그리고 그 촉수에서 무수한 점의 빛이 나더니 점점 더 많은 빛의 점들이 팽나무를 에워쌌다. 수많은 작은 빛에 둘러싸인 팽나무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시 소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하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 작은 빛들은 사라지고 길게 뻗은 가시 소녀의 가지는 다시 소녀의 몸으로 돌아왔다. 나무의 모습에서 다시 소녀의 모습으로 형태를 바꾸고 소녀는 발을 땅에서 떼어 움직였다. 걸음마를 걷는 듯한 어린아이의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꽤 익숙한 걸음걸이로 숲을 거닐었다.


이를 침묵 속에 지켜보던 나무들은 팽나무를 향해 시선을 돌려봤지만, 팽나무는 어떤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소녀를 응시할 뿐이었다.소녀는 숲에서 가장 높게 자란 삼나무를 바라보며 나무가 서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에 다다른 소녀는 나무에 오른손을 붙였다. 손은 점액질로 변하며 나무껍질인 수피의 굴곡에 맞추어 넝쿨의 모양으로 그 형태를 바꾸었다. 손가락과 나무 사이에 빈 공간이 하나도 없게 완전히 밀착 되었다. 손 넝쿨의 형태로 나무를 위아래로 만져본 후 몸을 나무에 가져가며 꼭 안았다가 왼손을 뻗어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1399_3027_327.jpg 홍일화, 곶자왈 풍경

단 두 손만을 이용해 나무에 올라갈 수 있었다. 나무를 계속 올라가다 가로로 튼튼하게 뻗은 가지를 보고는 그 위로 자리를 옮겨 가지위에 서서 숲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숲의 우거진 능선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숲 옆에 자리한 사람들의 마을을 발견하였다. 숲과 마을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가지에서 줄기로 이동하여 나무줄기의 꼭대기인 우듬지를 향해 올라갔다. 나무의 우듬지에 다다른 소녀는 두발을 넝쿨의 형태로 변형시켜 길게 뻗어 나무를 꽉 잡고 일어나 하늘을 바라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투명한 몸에서 물결이 일렁이더니 작은 파도를 일으키며 그 이동경로에 따라 떨림의 소리가 일어났다.잠시 후 새매, 참매를 선두로 동박새, 휘파람새, 오목눈이, 직박구리, 어치, 큰오색딱 따구리, 수리 부엉이, 꿩, 멧비둘기 등이 모여들어 소녀의 주위를 원 모양으로 감싸고 날갯짓을 하며 동작을 멈춘 채 떠있었다. 그러다 새들의 정렬에 변화가 생겼다. 새들은 원 모양을 깨고는 숲의 하늘에 일렬로 정렬된 하늘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마리의 푸른빛의 깃털을 가진 직박구리가 소녀의 뒤로 날아가 새들의 하늘 길을 향해 몸을 밀었다. 소녀는 이 낯선 상황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새들이 의도하는 바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무를 꼭 움켜지던 넝쿨 모양의 발을 풀어 한 발작 앞으로 나아갔다.


균형을 잃지 않았고 흔들림도 없었다. 조심스레 남은 한 발도 나무를 움켜지던 넝쿨을 풀어 새의 머리 위에 발을 얹어놓았다. 새들은 소녀의 몸을 지탱할 수 있을 만큼 단단했다. 날개 짓을 멈추고 하늘 위에 떠 있는 새들이지만 마치 돌다리 위를 걷는 듯한 견고함에 가야는 믿음이 생겼다. 소녀의 몸을 받쳐주기에 비록 새들의 몸은 작았지만 충분히 넓은 안정감을 만들어 주었다. 소녀는 푸른 직박구리의 뜻을 따라 새들의 길 위에 섰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나 새들은 가야의 발밑에 놓이기를 자처했다. 가야는 날개 짓을 멈춘 채 떠있는 새의 몸 위에 조심스레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소녀는 불안해 안절부절 못했다. 처음에는 자신이 땅으로 추락할 거 같은 공포에, 두려움에 옴짝달싹 못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새들에 대한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직박구리는 이런 소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는 냥 그저 소녀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게 머리로 소녀의 등을 밀어 새들의 위를 계속해서 걷게 하였다. 가야는 잠시 뒤를 돌아보더니 이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생각하고 푸념한 채 새들의 하늘 길을 조심스레 밟으며 하늘을 걸어 나갔다.

1399_3025_1741.jpg [[제주도 곶지왈 숲 산책 길

소녀의 몸에 희열의 전율이 흐르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미안함과 불안함, 그리고 고마움의 감정이 요동치며 교차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 고 싶다는 생각에 눈물을 닦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순간 고소 공포에 휩싸여 균형을 잃은 채 넘어져 숲으로 추락할 뻔했다. 그러자 일렬로 떠있던 새들은 빠른 날개 짓을 하며 정렬을 바꾸어 커다란 원의 형태로 소녀를 받쳐 올렸다. 소녀는 이제 서야 새들에 대한 확신이 생기며 마음 편히 무릎을 펴고 일어설 수 있었다. 소녀가 곧바로 허리를 펴고 일어서자 새들은 갑자기 소녀의 발밑을 떠나 분리되어 흩어졌다. 새들이 떠나자 소녀는 추락할 것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추락의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몸에 그 어떤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라고 생각하며 질끈 감았던 한쪽 눈을 살며시 뜨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소녀는 너무 놀라 온몸의 소름을 일으켜 세웠다. 날고 있었다. 떠있었다.너무나도 신기했다. 하지만 소녀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자칫 잘못하다간 땅으로 떨어질 거 같다는 공포가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무처럼 굳어져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직박구리가 소녀의 등을 머리로 밀었다. 그러자 소녀는 주춤하며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녀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한 소녀는 왼발로 허공의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 소녀는 알 수 없는 투명 막 위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날고 있는 것도 떠있는 것도 아닌 투명 막 위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누가 이 막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녀는 이제야 마음에 안정을 찾고 투명 막 위를 걸어 다녔다. 발 아래로 숲이 보였고 마을이 보였다. 소녀는 한참을 숲 위로 마을 위로 걸어 다녔다. 새들은 날개 짓을 하며 그저 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시소녀) “너희들은 나에게 이걸 가리켜 줄려고 이렇게 길을 만들어주고 몸을 밟으라고 한 거였어? 왜? 왜 이렇게 착한 건데... 나무들은 나를 의심부터 하던데... 난 아무것도 해 준 것도 없는데... 나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잖아.”


새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소녀는 새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시소녀) “알았어. 너희들은 내편인 거 알았어. 고마워. 나도 너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노력할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이번처럼 알려줘.”


새들은 아무 말도 없이 소녀의 곁을 떠나버렸다. 소녀는 하늘의 빈 허공 속에 홀로 남겨졌다. 발을 디딜 수 있는 허공이고 숲과 마을을 볼 수 있지만 홀로 남겨짐에 쓸쓸한 외로움을 느꼈다. 소녀는 다시 숲으로 내려가야 된다는 알 수 없는 당위성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자신을 지탱하고 있는 이 투명막이 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이 막의 경고함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소녀는 막을 발판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높은 도약 후에 착지하며 막에 발이 닿자 견고할 것만 같던 막이 찢어지더니 그 아래 또 다른 막 위에 넘어져 뒹굴 거렸다. 소녀


는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털고 일어나 다시 도약했다.소녀의 예상대로 하늘에는 여러 겹의 투명막이 존재하고 있었다. 소녀는 점프를 이어가며 막을 찢고 찢어서 삼나무의 우듬지에 다다르자 더 이상 소녀를 지탱해주던 막이 사라졌다. 소녀는 그대로 땅으로 추락하게 되었다. 다행히 무수히 많은 나뭇가지들이 소녀의 몸을 작게나마 지탱해주어 떨어질 때의 충격을 줄여주었다. 숲의 바닥으로 떨어진 소녀의 몸에는 삼나무 껍질과 열매, 그리고 가시같이 길고 뾰족한 잎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소녀는 또 한 번 기이한 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누워 몸을 이리저리 뒹굴뒹굴 거리는 알 수 없는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 뒹굴뒹굴하다 몸을 보고 다시 뒹굴뒹굴하다 몸을 보고를 반복하다 보니 소녀는 어느덧 이파리 옷을 입었다. 바닥에는 녹색 삼나무와 편백의 얇은 잎을 비롯하여 구상나무, 비자나무, 하눌타리, 조릿대, 천남성의 잎과 열매, 그리고 동백꽃이 붙여져 다양한 색상과 형태의 조화가 이루어졌다.

1399_3022_714.jpg 제주도의 현무암 돌들, 담장으로 많이 활용한다.

화산재로 이루어진 돌들 위에 형성된 숲 바닥에는 작은 굴처럼೿ 생긴 구멍의 숨골이 곳곳에 있어 사계절 내내 비슷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어 숲속은 항상 푸르름을 간직 할 수가 있었다.숨골은 숲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주면서 작은 동식물과 곤충들을 위한 안식처가 되어 주었다. 때로는 뾰족하고 날카로워 다치기 쉬운 돌들로 바닥이 이루어져 있어 동물과 곤충들이 땅파기 놀이를 할 수는 없지만, 돌들의 날카로움 덕분에 사람들이 접근을 막아주었다.


숨골은 숲의 아름다움과 안전을 유지해 줄 수 있는 비밀의 터이었다.나뭇잎 옷을 입은 가시 소녀는 돌바닥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바닥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있었고 어느 구멍은 소녀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큰 구멍도 있었다. 큰 구멍을 보자 신기한 듯 소녀는 구멍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 구멍을 향해 몸을 숙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였다.


(돌가시나무) "들어가지 마, 위험해. 거기로 들어가면 바다로 흘러내려 갈 수 있어. 숨골은 지하의 동굴과 지상과의 공기의 순환 통로이며 물의 통로야. 이곳은 비가 많이와서, 이 통로가 없으면 홍수가 나고 모두 물에 잠겨 버릴 수가 있어. 그리고 돌바닥 이고 돌에 구멍들이 있어서 물들이 땅에 머물지 않고 지하로 내려가 지하수를 만드는 데 사람들이 집 만들기 공사를 하면서 숨골들을 막아버리고 부수어 버리면서 지하수 고갈로 이 숲도 위험에 처하고 있지.”


돌가시나무는 소녀가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속사포처럼 떠들어댔다. 말을 가장 빠르게 하는 나무였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돌가시나무) "물론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위험한 상황인데, 그 점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지. 아직 이름이 없는 가시 소녀야. 너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지만, 이 숨골만큼은 꼭 지켜주기 바랜다. 숨골 덕분에 돌 위에 형성된 숲임에도 우리가 존재할 수 있고 숨골이 만들어준 지하수를 마시며 견뎌낼 수 있는 거야. 난 이 하나만 부탁할게. 네가 조금 더 커서 너의 능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 때 이 숨골에 대해서 연구해 줬으면 좋겠어.”


(팽나무) “숨을 쉬어가며 말해야지. 이미 알고 있는 나도 너무 빨리 말하니까 못 알아 듣겠다. 소녀야! 돌가시나무 말이 맞아. 아직은 이 숨골로 들어가기엔 위험한 게 너무 많아. 너는 아직 어리기에 좀 더 성장한 다음에 와 줘.” 팽나무는 가시소녀에게 사뭇 친절하며 다정하게 말했다. 나무의 소리를 듣고, 소녀는 행동을 멈추고, 돌가시나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숨골의 돌들을 뿌리로 꼭 쥐어 잡고 있는 다른 나무들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소녀는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려 일어섰다. 소녀는 나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동물들과의 소통 또한 가능하다. 이를 알게 된 나무들은 소녀에게 그동안의 숲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녀는 그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소녀에게 전하는 바람 또한 들을 수 있었다. 나무들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소녀는 빠른 속도로 숲에 대해 알아가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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