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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이 작은 이방인이 들려주는 소우주 오디세이

[청년 작가 열전 ⑬]- 강보라 작가 1

by 데일리아트


'먼지'를 통해 세상 곳곳 숨은 비밀을 탐구하는 작가
1403_3040_2927.png 인천국제공항 제 1, 2 여객터미널, 2022. Collagraph, 228x735cm.

먼지는 우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콧구멍 속 빈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하는 존재이다. 그들은 한 줄기 햇빛의 도움이 있지 않은 이상, 우리 앞에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그들은 바람을 타고 우리 몸 위에 살포시 내려않기도, 혹은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조용히 그들의 세력을 키우기도 한다. 끊임없이 만물을 괴롭히는 먼지는 인간에게 있어 보통 ‘치워야 할 것, 더러운 것, 불쾌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먼지는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묵묵히 우리의 흔적을 축적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이 작은 입자들이 하나둘 모여 만들어내는 소우주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대한 우주의 속삭임을 간접적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보잘것없이 연약하면서도, 인간의 사소한 추억부터 거대한 세계의 비밀까지 모두 품어내는 이 작은 존재는 자신의 가치를 알아보는 자에게만 말을 건다. 그리고 여기, 매혹적인 그들과 은밀히 소통하며 놓치기 쉬운 자연의 수수께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가 있다. 강보라 작가를 만난다.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안녕하세요. 강보라입니다. 저는 먼지와 같이 아주 작은 입자들을 관찰하고 이 입자들이 이루고 있는 세상을 판화적 기법을 활용해서 화면 위에 기록하고 복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1403_3041_3127.png 뮤(μ) 설치 전경, 2021, 공간일리.

- 작품의 주 소재가 ‘먼지’다. 우리에게 먼지는 보통 해를 입히고, 더럽고, 치워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데, 작가에게 먼지는 어떤 존재인가?


처음에 제가 ‘먼지’를 소재로 작업을 시작된 게 2015년인데요, 이전에 제가 오래 살던 집에서 이사를 하면서 냉장고를 들어냈을 때 냉장고 위에 수북이 쌓인 먼지를 발견했었습니다. 저는 그 집에서 10년 이상 살았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그 먼지를 보면서 단지 치워야 할 더러운 비체로 인식하기보다는 우리 가족의 시간과 흔적이 그 먼지에 응축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에 이러한 먼지를 장소별로 수집하면서 작업을 시작했고, 장소에 따라 먼지의 색과 질감이 모두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작업을 판화로 옮겨 오면서 색과 질감이 모두 사라지고 모양만 남았을 때 장소별 차이가 드러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 입자들이 이루고 있는 세상에 좀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경험 이후에는 먼지에서 작은 입자로 작업이 확장되었던 첫 번째 계기가 있었습니다. 이때 제가 어디서부터 감염이 되었는지 역으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입자들의 여정을 상상하게 되었고, 이는 저의 기원과도 맞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작은 입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맨눈으로 보는 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 작업에서 두 번째 큰 변곡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이 작은 입자들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이 입자들이 이루고 있는 세상에 주목하여 가상과 현실 세계를 이으며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1403_3038_2625.jpg 인천광역시 중구 연안부두로 70 #2, 2019. Collagraph, 76×112cm(each).

- 먼지를 판화로 표현한 방식이 인상적이다. 왜 이 방식을 택했는지? 이 방식이 우리에게 어떤 새로움을 줄 것으로 생각하는가?


저는 지금 멕시코시티 인근의 인테를로마스에서 거중인데요, 지금은 남편의 일 때문에 함께 이곳에 와 있습니다. 멕시코에서 대략 4년 정도 거주할 예정인데요, 사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이곳에 살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제가 이런 먼 타국에서 잘 적응하고 있는 이유는 이전의 많은 이주 경험 덕분인 것 같은데요. 이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학원 졸업 이후 작가 생활을 이어 나가면서부터는 주된 이유가 작업실 이전이었던 같습니다. 레지던시와 작업실 이사로 파주, 대구, 청주, 강원도 고성 등으로 매년 이사를 했던 것 같은데요. 지금은 이러한 이주 경험이 자연스럽게 저의 작업에도 영향을 주고 이야기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1403_3042_3345.png 파주 작업실, 2022. 가변 설치 먼지표본, 프로젝터.


1403_3048_4532.png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곡실평길 330, 2019. 먼지, 물티슈, 천 위에 바느질, 156×1478cm .

먼지는 그 자체로 굉장히 연약하고 가벼운 소재인데요, 앞서 말한 저의 이주 경험처럼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환경 따라 변하기도 하고 그곳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마치 변이 바이러스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먼지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지만, 우리 일상생활 속 어디에나 존재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먼지를 작업의 주된 소재로 사용하는데, 이를 화면 위에 옮기기 위해서 판화라는 매체가 저에게 아주 최적화된 도구였습니다.


판화를 통해서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먼지를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판화의 특성 중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기록’과 ‘복제’라는 특성을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이 위에 찍힌 아날로그적인 판화로 해석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영역으로까지 확장 중입니다.


- 판화에서 디지털로, 먼지에서 우주로 표현 방식과 영역이 점차 확장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작품을 보면서 먼지가 선악의 개념을 들이댈 수 없는 독자적인 대상으로 보임과 동시에 타협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먼지’ 혹은 ‘디지털 먼지’로 이루어진 소우주 세계관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준다고 생각하는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먼지에서 작은 입자로 작업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입자들을 관찰할 때 맨눈으로 보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됐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현미경처럼 단순하게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과학 장치를 사용했다면 2022년 탈영역 우정국에서 진행한 《코스믹 더스트》 전시 때에는 현실의 먼지뿐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죽은 채 남겨진 코딩 언어, 기한이 지나서 열어 볼 수 없는 첨부 파일, 휴지통에 쌓여 있는 파일과 같이 가상 세계에 떠도는 인터넷 먼지에 주목하게 되면서 이러한 가상 세계 속 먼지를 구현하기 위해 증강현실을 처음으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주변의 먼지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 비체인 것이죠.

1403_3039_2750.png Cosmic Dust 설치 전경, 탈영역 우정국, 2022

특히 이 작업에서 전시장 곳곳에 태블릿을 설치했는데, 기기 속에 떠도는 인터넷 먼지와 전시장에 설치되었던 판화 작업이 한 화면에 보이게끔 유도했었고 중앙 하단의 촬영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캡처되어 관람객의 이메일로 전송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업은 기존의 제 판화 작업의 확장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기존 작업을 진행했을 때 실제로 먼지를 채집하고 판을 만든 다음에 종이 위에 찍어내는 과정을 디지털화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인터넷 먼지의 개념이 좀 더 확장되어 디지털 고물상이라는 웹 사이트를 개설하게 됐습니다.


궁극적으로 저의 작업에서는 현실 세계뿐 아니라 현실과 아주 밀접한, 어떻게 보면 현실이라고 혼동하기 쉬운 가상 세계 속 먼지까지 확장하면서 이러한 작은 입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세계를 판화적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1403_3043_3621.png 내 컴퓨터, 가변 설치 모바일 기반 증강현실, 2022


1403_3044_3640.png 디지털 고물상, 설치 전경, 공간 일리, 2023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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