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⑧]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 (Ilya Yefimovich Repin),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화가이다. 사실주의에 기여한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19세기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미술로 생의 철학 질문하기] 시리즈는 당대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미술계에 영향을 끼치며 회자되는 예술가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각 편마다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통해 철학적 주제인 고통, 행복, 불완전성 등 삶의 본질에 가까운 개념을 질문한다.
일리야 예피모비치 레핀 Ilya Yefimovich Repin
일리야 레핀의 작품은 대체로 확대와 축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한 특징이 가장 돋보이는 위 그림의 작품명은 '이반 뇌제의 아들'이다.
표정을 잃은 채로 눈물흘리는 청년과 그런 청년의 피흐르는 머리를 막는 노인의 표정을 보면 그가 얼마나 묘사에 강한 예술가인지 알 수 있다. 우리는 혼란이 온 노인의 표정을 직접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전후상황을 알지 못하더라도 아들로 보이는 이 청년이 원치 않는 죽음, 즉 살해를 당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살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와, 그것을 목격한 유족, 이러한 키워드들이 자동으로 연상됨과 동시에 이 참극이 더욱 생경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보여지는 광경과 별개로 이반 사세라는 인물을 안다면 작품에서 받는 느낌은 전혀 달라진다. 이반 사세는 모스크바 대공국 초최의 통치자이자 유능한 황제였지만, 평소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으며 노년에 이르러서는 결국 며느리 엘레나를 유산시키고 아들 바실리를 살해했다. 이반 뇌제는 이반 사세의 별명이며, 두렵고 무서운 권력자의 이미지를 나타낸 단어로 쓰인다. 즉, 유능한 통치자 이반 뇌제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내고 친족살인을 저지른 장본인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보았을 때, 위 참극이 어떻게 느껴지는가?
외부인의 귀향
그의 모든 작품은 마치 눈앞에 있는 현장을 그대로 보고 그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그는 뛰어난 묘사력을 지녔으며, 상황을 형상화시킨다.
또한, 그의 작품은 '변화'에 관하여 말한다. 이반 사세가 노년에 접어들며 더욱 심하게 앓게 된 신경증과 편집증, 그러한 병증의 악화로 일어난 참극만 봐도 알 수가 있다. 그는 역사에 관심이 많았으며, 노동자와 혁명가, 권력자의 삶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다. 또한, 그들의 '다른' 모습을 그려내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
위 작품의 이름은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이다. 고요한 오후, 가정집에 방문한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다른 이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원치 않던, 혹은 예상치 못한 방문자를 맞이한 듯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집으로 돌아온 혁명가에 관한 그림이다. 사회의 혁명을 위해 힘썼지만, 가정으로 돌아온 그를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물론, 가족들이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보고 놀란 것처럼 볼 수도 있겠다. 이후 눈물의 포옹이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림 속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은 환희에 찬 놀람보다는 당혹스러움, 경직에 가깝다. 그가 혁명을 쟁취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위인으로 불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과정의 시간 속에서 그는 가정에서의 역할을 잃었고, 격변을 겪었다. 위 작품은 누구도 반기지 않게 된 혁명가의 귀향인 것이다.
일리야 레핀의 그림은 한 편의 소설 같다. 소설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에 놓인, 결말을 맺기까지 20페이지 정도 남은 주요 장면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실감한다. 아무도 그를 기다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잘 알고 지내던 대상에게 낯선 변화가 생겨났다면, 그 변화가 대상의 선택과 시간의 변화라면 우리는 쉽게 분열되고, 이윽고 타인이 되어버린다. 이렇듯 격변기의 변화를 다루는 것은 그의 작품 전체적으로 퍼져있는 특징이다.
너는 무엇에 변화하는가
레핀은 사진적 사실주의의 선구자이다. 그의 작품은 색감이 통일되어 있을 뿐 아니라, 선택과 집중(특정 부분에 묘사를 더하고, 그렇지 않은 대상에는 묘사를 덜어 눈길을 머물게 하는 행위)을 채택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한 장의 사진 같다. 사소한 것까지 완벽하게 묘사가 되어있는 묘사가 그림보다는 현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리야 레핀이 다루는 작품의 주제 역시 사실주의에 기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보며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며, 기뻐할 수 있다. 그가 표현하고자 한 변화란 무엇인가? 우리는 언제나 미미한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러한 일상의 변화들은 삶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비극적 변화와 긍정적 변화, 선택과 집중 그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변화해 나갈 갈피를 잡을 수 있다. 결국, 모든 변화는 현재의 현상이 탈피되었을 때 일어난다. 너는 무엇에 변화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