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미술관 장은의 개인전《7개의 눈길 the Seven Attentions》
상히읗 갤러리 임다울 개인전《임다울》
눈 컴템포러리 백경호·이윤서 2인전《에포케: 판단 중지》
가을의 기운을 품고 찾아온 9월, 선선한 바람결 따라 나들이하듯 감상할 수 있는 전시 세 곳을 소개한다.
1. 영은미술관 장은의 개인전 《7개의 눈길 the Seven Attentions》
영은미술관에서 9월 22일까지 장은의 개인전 《7개의 눈길 the Seven Attentions》을 개최한다. 영은창작스튜디오 12기인 장은의 작가는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서양화의 한 장르인 정물화를 통해 정물의 선택, 배치, 구도, 시점으로 자신만의 미적 감각을 표현한다.
장은의 작가는 인공과 자연의 공존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 매끄럽고 완전한 형태의 동그란 그릇과, 불규칙적이고 울퉁불퉁한 열매의 모습을 그린다. 두 개체는 서로 다른 역할과 가치를 지니지만 작가는 이를 함께 놓음으로써 각각의 개념적 사물이 서로의 존재에 대해 어떠한 의구심이나 간섭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작가는 캔버스에 한 사람의 그릇과 사과를 배치하고 그림을 그린다. 그는 그릇과 사과를 통해 인물의 외적인 모습이 아닌 성격, 분위기, 나눴던 대화와 교감을 기록한다. 이 과정에서 정물화는 초상화가 되고, 보이는 것 너머에 존재가 담긴 추상화로 드러난다.
“나의 그림은 대부분 일상적인 사물이나 풍경의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사람’에 대한,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로 나 혹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의 어떤 모습을 그리게 되는데 나 혹은 그들이 세상의 자극에 반응하거나 관계 맺는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때 그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여 기록하게 되고 그 장면들 중 친숙한 사물이나 풍경을 선택하여 회화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 작가노트 중
2. 상히읗 갤러리 임다울 개인전 《임다울》
상히읗 갤러리에서 9월 22일까지 금속 프레임 지지체에 그림을 입힌 연작을 선보이는 임다울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2021년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가의 개인전이자 상히읗과의 첫 전시이다.
작가는 관객에게 뉴미디어 작품과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다층적이고 다매체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고르기아스의 교설(속이는 사람이 속이지 않는 사람보다 더 정직하고, 속임을 당하는 사람이 속임을 당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로 설명한 바 있다.
그가 구축하는 작품은 환각과 환영을 말하면서도 유효한 ‘진실’과, 그 사이에서 떨고 있는 ‘실재’를 탐구하며, 예술을 장치 삼아 사물과 세계에 당도하고자 한다. 그의 작업은 거대 서사나 미술사적 관점에서의 조각-평면의 관계를 넘은 인간 의식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며, 허위에 충실한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자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임을 역설한다.
3. 눈 컴템포러리 백경호, 이윤서 2인전 《에포케: 판단중지》
눈 컨템포러리에서 10월 18일까지 백경호·이윤서의 2인전 《에포케: 판단 중지》를 개최한다. 전시 제목 '에포케(epoke)'는 고대 그리스의 회의론자들이 사용하던 용어이다. 원래는 '멈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대로 둠'을 의미하는 단어였는데, 20세기 현상학자들이 다시 사용하면서 '판단 중지'라는 개념으로 재조명되었다. 이번 전시는 쉽게 풀어 말하자면, 이런저런 생각은 일단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보자는 것이다.
전시 《에포케: 판단 중지》는 구상의 요소를 지닌 채 추상 작업을 해 온 백경호, 이윤서 두 작가의 작업에서 만나게 되는 모호함과 생경함의 지점에 방점을 두고 시작되었다. 백경호는 원형과 사각의 캔버스를 결합하여 의인화된 조형을 보여주거나, 선 긋기, 격자 긋기 등의 수행적 반복행위를 거친 캔버스들을 조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범위를 확장시켜 캔버스를 입체 조형물과 결합시키는 등 다양한 스타일의 회화를 선보여 왔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셰입드 캔버스(shaped canvas) 회화가 아닌 정직한 사각형 프레임의 회화를 선보인다.
이윤서는 SNS나 인터넷 미디어가 쏟아내는 방대한 시각 정보들 속에서 이미지를 수집하고, 이미지들이 움직이는 속도에 물리적으로 반응하며 화면을 구성해 나간다. 방대한 이미지를 수집하고 기록하는 행위는 속도감 있는 붓질로 진행되지만 밀려오는 시각 정보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다. 미처 다 기록되지 못한 이미지는 다가오는 이미지들에 밀려 지워지거나 뒤덮이고 겨우 그 흔적들만 가늠할 수 있는 상태의 덩어리로 화면에 남는다. 그럼에도 작가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기록하는 매 순간, 집중력을 내려놓지 않는다. 작가의 회화적 언어로 번역되어 나온 이 감각의 덩어리는 일견 모호하지만, 오히려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시선을 붙드는 두 작가의 날 것의 감각들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거나, 분명한 의미를 전달해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작가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잠시 판단을 멈추고 한 걸음 다가와 주기를, 붓질과 붓질 사이에 담겨 있는 작가 고유의 회화적 감각을 느껴 보기를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