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시연 "종로에서 김환기를 만난다면?"

[길 위의 미술관]

by 데일리아트
전통 미에서 찾은 한국 추상회화, 거장 김환기가 걸었던 종로의 길

김환기의 작품은 조선백자 달항아리와 찰떡처럼 잘 어울린다. 아마도 달항아리를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일찍 알아차렸기 때문이 아닐까? 김환기는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적 감각으로 일깨운 근현대미술의 대표 화가다. 작가는 한국 전통 기물이나 자연 소재, 십장생 등을 모티프로 해서 현대적 양식을 결합해 내었다. 일본 유학을 통해 습득한 서구의 표현 양식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한국 전통 소재와 접목한 것이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동양주의' 정신이 작품으로 발현되던 시기에 김환기가 걸었던 서울 한복판 종로에서 시청까지 그 흔적을 찾아 보았다. 《길위의 미술관》 프로젝트 중 김환기 편 시연은 박주형 연구원의 해설로 진행되어 시종일관 흥미진진했다. 김환기의 이야기들이 도심 속 길 위에 펼쳐진 하나의 전시회였다.


종각역 1번 출구에 위치한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에서 시연이 시작되었다. 1937년 신축한 화신백화점은 조선인에 의해 개발되었으며 박길룡이 건축하였다. 그가 설계한 대표 건축물은 성북동 간송미술관, 옥인동 박노수 가옥, 혜화동 경성제국대학 본관 등이다. 화신백화점은 김환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1948년 12월7일~9일까지 백화점 내에 자리하고 있던 화신화랑에서 《신사실파》 1회 전시회가 열렸다. 이 단체는 해방 후 처음으로 ‘새로운 사실을 추구한다’는 조형 의식으로 구성된 화가 그룹이다. 김환기, 이규상, 장욱진, 이중섭, 전혁림 등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결성하여 3회까지 전시 후 해체된다. 김환기는 이 전시회에 <달과 나무>, <수림> 등의 작품을 출품한다. 단순화된 구도의 평면적 화면 구성과 달이 화면 중심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김환기에게 달은 달항아리와 함께 작품에 즐겨 등장하는 고향과도 같은 모티프이다.

1507_3431_4555.jpg 화신백화점(현 종로타워) 답사 시작^^



1507_3423_854.jpg 달과 나무, 1948. 캔버스에 유채, 72*61cm. 신사실파 1회 출품작으로 화신화랑에서 1948년에 전시.

우리는 이어진 건물 바로 옆으로 향했다. 종로경찰서로 이용했을 때 중국으로 망명했던 의열단원 김상옥이 1923년 1월 폭탄을 던졌던 건물이다. 이 건물에도 김환기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507_3426_2110.jpg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캔버스에 유채, 236 *172cm.


1507_3430_3635.jpg 장안빌딩 앞 김상옥 의거를 기념하는 표석

종로 거리는 많은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였다. 주로 종로서적 아니면 YMCA 앞에서 만나 거리를 활보한 기억이 있다. 이 YMCA 빌딩에서 1944년 김환기와 김향안(본명 변동림)이 고희동 주례, 정지용과 길진섭의 사회로 결혼식을 올렸다. 변동림은 오빠 변동욱이 일하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 프랑스식 살롱 카페 낙랑파라(현 플라자호텔)에서 소설가 이상을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이상은 폐렴에 걸려 일본에서 이른 나이에 사망한다. 비슷한 시기 이상의 절친이었던 김유정 역시 폐렴으로 사망하자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에서 변동림 주도로 이상과 김유정의 합동 영결식을 치루게 된다. 이후 변동림은 김환기를 만나 김향안으로 이름을 바꾸고 추상표현주의를 완성해 가는 뉴욕 시기를 가로지르며 평생 반려자로 함께한다.

1507_3427_2353.jpg YMCA 빌딩은 김환기와 김향안이 1944년에 결혼식을 했던 장소이다.

이어 (구)화신백화점 건너편에 있는 한청빌딩으로 추정할 만한 곳으로 향했다. 을지로 방향 보신각 좌측에 위치하는데 현재 빌딩은 남아 있지 않다. 이곳 3층에는 1939년 창간한 『문장』 잡지사가 있었다. 김용준과 이태준이 주도했으며 문학과 미술의 종합지 성격의 문예잡지다. 김환기, 길진섭, 정현웅, 구본웅 등이 참여했다. 김환기는 『문장』지에 70여 개의 권두화 및 100여 권의 표지화를 제작하였다.


이 건물 2층에는 『사상계』도 자리잡고 있었다. 김환기는 문장파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들과 전통 의식을 공유했다. 그의 초기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전통 기물인 백자 항아리, 목가구 뿐만 아니라 사군자, 십장생, 기명절지 등 문인사대부들이 그림의 소재로 삼았던 다양한 사물을 그림에 포괄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1507_3428_2537.jpg 정자옥 화랑(현 롯데백화점 내)


1507_3429_2727.jpg 낙랑파라 카페(현 플라자호텔 내)

작가의 개인전이 개최되었던 곳들을 돌아보며 많이도 변한 빌딩 숲에서 꼼꼼히 찾은 박주형 선생님의 연구에 감사하며 답사를 마무리하였다. 종로에서 명동을 거쳐 시청까지 이르는 답사 길은 번잡한 도심 빌딩 숲이 아니라 김환기 작가의 꿈과 아름다움이 스며 있는 어제와는 다른 길이 되었다.


이제 화가 구본웅의 시연만 남았다. 9월 28일에 진행될 구본웅의 시연이 끝나면 연구원들의 모든 준비는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민들과 함께 10월 12일부터 탐방길에 오른다. 데일리아트는 10월 12일부터 총 7회에 걸쳐 연구원들의 연구로 구성된 화가의 길을 시민들에게 소개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한다. 참여 방법은 추후 데일리아트 지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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