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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Sep 27. 2024

차향처럼 은은한 화가-정현자

[작가의 아뜰리에 ⑥]

화가로서 바람은 남녀노소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
내 그림의 화두는 '동그라미' 

2021년 남해 스케치 여행 중의 정현자 화가

하동의 화가 정현자를 만났다. 섬진강 변의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사는 화가, 그곳에서 차 밭을 일구고 자신이 우려낸 차를 마시며 담담한 인생을 즐기며 사는 화가 정현자. 그러나 차향처럼 은은한 삶을 얻기까지 화가로서 걸어온 길이 만만치 않다. 아마도 화가 정현자는 자신이 개척한 이 화가의 길을 마치 신이 부여한 숙명의 길처럼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철없던 시절 그린 그림이 복도에 걸리고 학창 시절에는 막연한 예술가의 길을 꿈꾸었으나 서서히 자신의 재능을 발견해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늦깎이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현자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화가이다. 차향처럼 은은한 인생의 담담함을 알아가는 화가 정현자.


- 어떻게 화가가 되었나?

특별한 계기보다는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다른 것은 몰라도 그림은 다른 친구들보다 쉽게 그렸습니다.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교실 앞 복도에 내 그림이 늘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자신이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업 때문에 서울에 계셔서, 나는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작은 아버지 집에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위암 말기로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때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작은 아버지가 지붕에 올라가서 작은 어머니의 옷을 흔들며 초혼 의식을 할 때도 나는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러 나갔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는데, 아마도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반작용이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하고, 지금 지나온 삶을 반추해 보니 운명 앞에서도 붓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 같기도 하네요

그후 서울로 이사 와서 중학교 다닐때,  우리 반 아이 중에서 음악을 잘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무척 부러웠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공부 못하면 얼마 안 가 시집 가는 시대인데, 나도 막연히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 그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부탁한다.

논과 밭, 10호F. 호남대학교 1학년 때 작품

서울에서 중학교 다닐 때 고향 초등학교 운동회에 참석했습니다. 달리기 할 사람이 없어 교복을 입은 채로 달렸어요. 운동회가 끝나고 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군인 아저씨가 다가와 달리기하는 저를 유심히 보았다며 쪽지에 주소를 적어준 것이 7년 펜팔로 이어져 결혼까지 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뭔가를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30대 초반인데, 내가  잘하는게 무얼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결국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릴 적의 꿈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취미로 서예와 문인화를 그렸습니다. 이유는 어릴 적 어머니, 할머니가 만든 조각보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문화센터 같은 데에서 취미로 동양화를 그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모전에도 꾸준히 입상했습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공부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 대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부탁한다.

호남대 학창 시절 교수님과 학우들. 뒷줄 우측 두 번째가 정현자 화가

남편이 군인이라 전라도 광주의 관사에 살면서 호남대 미술대학 서양화 전공으로 입학했습니다. 늦깍이 대학생이 된 것이죠. 자식뻘 되는 학생들과 공부를 하니 더 열심히  그리게 되었습니다.  대학 진학해서는 비구상을 접했습니다. 당시  호남대는 비구상을 하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노의웅, 이정용, 윤진섭 교수님들에게 배웠습니다. 서양화에서 몬드리안 삼원색을 공부하면서 비구상, 구상을 구분하게 되는데.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것이 어머니, 할머니의 밥상보, 방석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술의 삼원색과 우리나라 오방색을 비교하기도 했죠. 공부하기 쉽지 않았지만  여러 교수님의 지도하에 차츰 인정을 받았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의 일인데요.  교수님이 오직 학교에서 완성한 작품만  출품하라 해서 부채춤 을 추는 무희를 3개월 이상 밤낮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림은 공모전에 출품할 만한 내용이 아니라 해서 처음 접해보는 아크릭 물감을 써서 공모전에서 입선을 했습니다. 나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되었습니다. 

학보에 실린 정현자 화가 기사

  서양화과에 저와 같이 재학 중이던 지적 장애 학생이 있었습니다. 재능은 좋았지만 늘 도움이 필요한 친구였습니다.  그 학생에게 3년 동안 도움을 준 것을 학생의 가족이 알게 되었어요. 그의 아버지께서 어느 날 저에게 전화를 해서 우리 딸을 학교 생활 잘 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며, 교육청에 저를 장학생으로  추천했다고 연락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장학금을  받게 되어 큰 기쁨이  되었고 졸업할 때 전교 수석을  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이었죠.

- 하동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차 잎을 따는 일도 고단한 일이지만 만드는 일은 더욱 힘들다. 

하동에서 녹차 잎 따고 만드는 일도 좋고, 섬진강과 지리산이 주는 모래는 자연의 선물과 같다.

이른 나이에 결혼하고 살림을 하면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군인인 남편 따라 광주에서 생활을 했는데 2007년 즈음에  지리산 자락 섬진강 변 물 맑고 산이 좋은 하동으로 이주했어요. 하동이 품고 있는  지리산은 남편의 특전 공수 훈련의 애환이 서린 지역입니다. 하동 녹차 밭을 배경으로 그림을 많이 그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녹차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저는 하동에서 녹차잎을 따고 만드는 일이 좋았고 섬진강과 지리산이 안겨 주는 강변 모래는 큰 선물과 같은 거였어요. 차를 재배하고 그걸 따서 차를 만들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하동 작가로서 뼈를 묻는 것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차 농사는 450평을 임대해서 지었는데 '다전'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팔기도 했어요. 차는 사람을 겸허하게 합니다. 정약용 선생도 차를 참 좋아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양반이 가마를 참 편하게 타고 다니지만 가마를 메는 가마꾼은 어깨에 굳은 살이 박혀 있는 것처럼 차를 만드는 사람도 차를 볶을 때 손이 불에 익는다고 해요. 양반들은 그것도 모르고 차향이 좋다고 하지만 그 향은 사실 노비들의 손이 불에 익어 나는 냄새와 같은 것이죠.

 남편과 즐거운 한때.

정약용은 술을 좋아하는 나라는 망하고 차를 좋아하는 나라는 흥한다고 했습니다. 차 밭을 매다보면 풀을 많이 뽑습니다. 그런데 엉킨 넝쿨 위로 예쁜 꽃이 핍니다. 우리의 삶과 너무 똑같아요. 삶도 고통으로 엉켜 있는 가운데 화사하게 꽃을  피우기도 하잖아요. 시골 사람들의 뭔가라도 주고 싶어하는 정겨움 속에 안정되고 그림도 많이 그린 시기였습니다.

- 그곳에서 그림만 그렸나? 재능기부도 많이 한 걸로 아는데.

재능 기부 시절 아이들과 함께.

 하동은 학부모들이 농사 일을 많이 하기에 방과후 돌봄을 지차체가 해줍니다. 그러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미술교사가 없어요. 미술 교육을 하려면 진주에서 모셔 와야 해서 제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별천지미술학교'가 탄생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미술 수업은 편안하고 즐거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아 참 힘들었어요.  스스로 정리하게 하고 남의 것을 따라하지 말 것,  합리적인 사고를 키우도록 가르쳤습니다. 예를 들어 비오는 날이면 비오는 장면을 자신의 생각을 담아 그려보게 했습니다. 처음엔 어려워 했지만 잘 따라주었고 그렇게 한 학기를 하고 보니 애들의 그림 솜씨가 확 달라졌습니다. 그러면서  일년의 성과를 그림 달력으로 만들고 액자에 끼워  부모님과 지역 유지들을 초대하여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그 이후 야외 수업과 음식을 만드는 수업을 병행하며 2년 동안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동군 13개 면 중 최고의 수업 진행이었다고 하더군요.

- 홍익대 대학원은 어떻게 가게 되었나?

절친 안성옥 화가와  김은지 교수님과 함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재능이 아깝다며  남편이 계속하라고 하며 집에 있는 골동품을 정리해 등록금을 마련해 주었어요. 그래서 홍익대 대학원에 2013년에 입학했습니다. 면접 때 교수가 포트폴리오를 심사하다가 대학 졸업 성적이 너무 좋다고 하면서 '다다이즘'에 대해서 물어보았는데 머리가 하얘져서 말을 못했어요. 그냥 나오자니 자존심이 상해 포트폴리오 10장을 내놓고 추상에 대해서 설명을 하겠다고 했어요. 설명을 잘 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대학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화구 구입 비용 및 교통비 마련을  위해  풀꽃 패턴을 창작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하동과 서울을 오가며 남편이 먹을 반찬 만들어 놓고 힘겨웠지만 그 시절 참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 전시회 초대작가가 되었다이번 전시회를 소개해 달라.

한강 비엔날레 정현자 소개 팜플렛.

그림하는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된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가 하는 32번째 전시였고 전시회 이름은 '한강 비엔날레'였습니다. 내가 25년 이상 출품하니 초대작가가 되었죠.

주부로서 주방에서 지내면서 10년 만에 그림의 화두를 찾았어요. '동그라미'를 발견했습니다. 동그라미는 하나의 점 같지만 우주입니다. 내가 텃밭을 일굴 때, 동그란 씨를 하나를 심으면 셀수 없을 만큼 많은 동그란 열매가 맺히죠. 그때  커다란 희열을 느꼈어요. 사실 잘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동그라미입니다.  씨앗도, 매실 엑기스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나타나는 것도 동그라미입니다. 그래서 동그라미를 그림의 화두로 삼았죠. 이번 전시에 동그라미 주제의 작품을 많이 출품했습니다.

정현자,  부부, 2015. Acrylic on canvas,  53.0x33.4cm. 동그라미는 하동의 주방에서 발견한 작가의 화두.

47세에 몸이 아파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혈액을 공급받다가 바늘이 빠져 피가 뚝뚝 바닥에 떨어지는데 그것도 동그라미더군요. 그래서 그 동그라미의 화두로 이번에 작품을 많이 내었습니다. 전시회에서 그림을 본 사람들이 작품이 따뜻하고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고 평해 기뻤습니다. 제 그림에 빨려 들어간다고. 양념하지 않은 음식과 같은, 스토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가?

나는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을 너무 못하며 살았습니다. 남편이 당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 얘기하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서울로 올라올 생각입니다. 나는 정말 그림을 많이 그리는 작가보다 가치 있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김환기, 전혁림 작가를 좋아하는데 전혁림은 자신의 스승은 도서관이라 하더군요. 책을 많이 읽고 싶어요. 독일 철학자들의 작품을 많이 읽고 깊이가 있는 작가, 깊이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홍익대 대학원시절 도서관에서.

- 나의 그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그림은 나에게는 사람에게 필요한 물과 같습니다. 한번은 섬진강에서 재첩을 채취하다 가 소용돌이에 빠져 죽음을 경험했습니다. 그 순간의 기억이 뚜렷한데요. 당시에 이제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겨우 주변 사람의 도움으로 허우적 거리다가 살아나기는 했는데.


그 때 나는 물에 빠진것이 아니라 물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두려움 속에서도 파란 하늘은 이불 같았습니다. 그 느낌, 나에게는 영원히 잠길 수 있는 물과 같은 것이 그림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화가로서의 저의 바람은 남녀노소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이야기와 작품을 소개해 준 데일리아트에 감사를 표합니다.

정현자, 기억, 홍익대학교미술대학원 100호F.

정현자, 목단, 대학 입학 전 문인화 20호.

호남대학교 시절 비구상작품

정현자, 하동에서.

정현자,  현자의 부엌, 2020. Acrylic on canvas, 53.0 x 33.4cm.

  정현자,  가족, 2015. Acrylic on canvas, 45.5 x 27.3cm.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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