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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Sep 27. 2024

Museo Guggenheim Bilbao

[고영애의 건축기행]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회색빛 공업도시를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바꾼 거대한 조형물"
- 건축가: 프랭크 게리
- 주소: Abandoibarra Etorb., 2, 48009 Bilbo, Bizkaia, Spain
- 홈페이지: www.guggenheim-bilbao.es  

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원경과 주변 (사진 고영애)

스페인의 북부에 있는 빌바오시는 구겐하임 미술관이 들어섬으로 도시의 역사를 바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술 애호가라면 신문 지면이나 SNS를 통해 회색빛 공업도시 빌바오가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탈바꿈되었다는 글을 한번쯤은 읽은 적이 있으리라. 이베리아반도 북쪽 끝에 위치한 빌바오시는 과거엔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서 제철소와 조선업이 성했었다. 1970년대 중반까지도 산업 중심지였지만 1980년대에 철강업이 쇠퇴하고 바스크 분리주의자들의 잇따른 테러로 인해 도시는 쇠퇴해갔다. 몰락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 산업 일환으로 1억 달러를 들여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기에 이른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바로 그 신데렐라의 주인공이다. 

1997년 세계적인 미술재단인 구겐하임은 스페인 바스크(Basque) 지방의 빌바오에 구겐하임 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이 미술관은 미국 철강계의 거물 솔로몬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m)이 직접 수집했던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기 위하여 설립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이다. 바스크 지방정부는 구겐하임 재단에 미술관의 운영을 위탁하였고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7년 만에 미술관 건물을 완공하였다.

빌바오시는 옛 명성을 되살리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공항, 지하철 역사, 최첨단의 다리를 건설했다. 1997년 이후부터 매년 100만 명에 가까운 관광객이 이 도시를 방문한다고 하니, 당시 빌바오의 인구가 40만 명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놀라운 성과다. 지금까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다녀간 관람객의 숫자만도 대략 1000만 명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안개 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옆면 (사진 고영애)

번쩍거리는 티타늄 패널로 둘러싸인 50미터 높이의 독특한 형상을 한 거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멀리서 보아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도 모르게 걸음걸이가 빨라졌다.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물고기 형상을 패러디하였다는 프랑크 게리의 말처럼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이 서로 뒤엉켜 커다란 조형물로 드러난 거대한 건물 외관은 흡사 비늘이 반짝이는 것처럼 멀리서도 빛났다.

몇 개의 덩어리로 축적되어진 이 건물은 다양한 재료와 각기 다른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스페인산 라임스톤(석회암)과 신소재인 티타늄 그리고 유리의 세 가지 소재로 된 이 미술관은 희귀한 소재들의 어우러짐으로 환상적인 컬러를 뿜어내고 있었다. 흔히 볼 수 없는 값비싼 티타늄 소재가 지닌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성질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매혹적인 미술관이었다. 티타늄 패널의 공간이 전시 공간이고 유리 커튼 월의 개방된 부분은 관객들이 이동하는 공간이다. 자연광이 유입된 전시 공간은 층의 구분이 불분명하였고 기둥이라고는 눈에 띄지 않았다. 입구의 홀을 지나면 미술관의 심장인 중앙 아트리움이 나온다. 아트리움에서 3층 전시 공간까지는 동심원 모양으로 빙빙 돌아서 올라가도록 디자인되었다. 그곳에서 다시 여러 방향의 전시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19개의 전시실은 모양이 제각각이었고 전시 공간은 어딘지 산만해 보였다.

리처드 세라의 작품 '더 매터 오브 타임' (사진 고영애)

빌바오 구겐하임 아트리움에서 바라본 높은 천장 (사진 고영애)

빌바오 구겐하임 전시 공간 (사진 고영애)

1층 전시장은 리처드 세라의 작품 <더 매터 오브 타임(The mater of time)>으로 넓은 공간을 꽉 채웠다. 높이 4미터에 달하고 길이가 31미터에 이르는 이 조형물은 보는 이에게 위압감마저 주었다. 이 거대한 조각의 명제 ‘matter’의 뜻은 일정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다. 리처드 세라의 조형물은 그 공간을 지배하려는 듯 위압적이었지만 마치 그 조각 작품들을 위해서 디자인된 공간처럼 적재적소에 놓여 있었다. 미술관 디자인 초기부터 적소의 자리에 조각품들을 완벽하게 설치하기 위한 치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전시장은 오로지 리처드 세라의 8개 조각만을 영구히 전시하는 곳이다.

각 전시관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과 클래스 올덴버그(Claes Thure Oldenburg)의 설치 작품을 비롯하여 팝아트,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추상표현주의 계열의 현대미술 대표 작가의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특히 윌렘 드 쿠닝과 에두아르도 칠리다의 작품 컬렉션이 마음에 와닿았다. 또한 바스크 지방과 스페인을 대표한 현대미술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네르비온 강변에 설치된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 '큰 나무와 눈' (사진 고영애)

네르비온 강변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 <큰 나무와 눈(Tall tree & the Eye)>이 놓여 있었다. 미술관 입구를 수호하는 제프 쿤스의 조각 <퍼피(Puppy)>와는 대조를 이루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개의 조각이 주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아니쉬 카푸어의 스테인리스 조각이 당당하고 냉철한 수호신이라면, 제프 쿤스의 강아지는 마냥 귀여운 사랑스런 수호신이었다. 

네르비온 강에 반사되어 티타늄 패널의 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거대한 조형물은 고요한 바다에 정박한 멋진 배를 연상시켰다. 아름다운 건축과 소장된 값비싼 미술품의 문화적인 가치가 오늘날 빌바오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경제를 되살려 놓은 셈이다. 뿐만 아니라 빌바오 시민들에게는 자긍심을 불어주었고 대중문화에 불을 지펴서 문화도시로 거듭나게 하였다. 원래 이 지역은 산업폐기물이 쌓였던 곳이었지만 빌바오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인해 새롭게 건설되었다. 또한 옛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북쪽 강변은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었고 주변은 시민들의 문화 공간과 놀이터로 바뀌었다.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물을 ‘20세기 인류 가 만든 최고 건물’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오묘하고 독특한 건축이 하루아침에 회색빛의 빌바오시를 신데렐라로 바꾼 셈이다. 이 미술관을 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은 빌바오를 찾고 있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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