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하정우 개인전
11월 16일까지 갤러리 학고재에서
캔버스에 혼합 재료, 90.9x72.7cm, 2024
영화배우 하정우가 화가로 변신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더니 배우의 변신도 무죄인가? 어쩌면 영화는 자신을 숨기고 타인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면 회화는 오롯이 자기만을 표현하는 예술이 아닐까? 진짜 모습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표현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학교 졸업 후 불투명한 내일을 버티기 위해 붓을 잡았다고 고백한다. 무작정 문구점에서 4B 연필을 구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아닌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배우의 도전 정신도 이런 그의 모습에서 나왔을 것이다. 자신의 그림이 내세울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미 2010년에 처음 개인전을 연 중견 작가이다. 그는 전시회에 앞 선 기자 간담회에서 그림 그리는 게 신나고 그것이 자신을 가장 위로하는 순간이라고 밝혔다.
10월 16일부터 11월 16일 까지 종로구 갤러리 학고재에서 열리는 전시의 제목이 조금 복잡하다. 《네버 텔 애니바디 아웃사이드 더 패밀리(Never tell anybody outside the family)》. "가족 외의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가 좋아하는 영화 <대부>의 명대사다.
배우라는 공인 신분이라서 구설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자신의 소신인지 전시 제목만 봐서는 모르겠다. 그러나 가족끼리도 담을 쌓고 살아가는 시대에 가족에게만이라도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면 참 건강할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총 38점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을 보면 의외로 원시적 건강성이 돋보인다. 가장 도회적인 남자로 보이는 하정우의 이미지와는 다른 면이 작품 속에서 보인다. 마음속에 감추고 있는 원시적 생명력이 작품을 통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캔버스에 혼합 재료, 116.8x91cm,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2.2x130.3cm, 2024
그는 피카소와 바스키아를 좋아한다.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어 유명 작가의 화집을 모으고 수없이 그림을 연구했다. 영화 대본을 보고 인물을 연구하는 것에 이력이 난 그는 아마도 화집에서 작가의 작품을 연구하며 가슴에 수없이 많은 이미지를 모아 두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바스키아와 피카소의 화풍이 느껴지기도 하고 원시적 생명력이 언뜻언뜻 엿 보인다.피카소도 원시적 에너지의 근원을 찾기 위해 흑인의 탈을 많이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이번에 그의 탈 작품도 눈여겨 감상할 만하다.
캔버스에 혼합 재료, 193.9x259.1cm, 2024
캔버스에 혼합 재료, 162.2x130.3cm, 2024
그러나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카펫에서 영감을 받은 <카펫> 연작이다. 그는 촬영을 위해 모로코에 5개월 간 머물 당시 카펫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패턴으로 삼기 위해 오랜 실험 기간을 거쳤다고 한다.
학고재는 윤석남, 백남준 등 정통파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한 정통 갤러리인데 이번에 하정우의 그림 전시는 파격으로 다가온다. 영화 속의 다양한 캐릭터만큼이나 그림의 화풍이 다양한 하정우의 그림 전시는 10월 16일부터 11월 16일까지 딱 한 달 간이다. 타인을 연기하는 가짜 하정우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찐' 하정우를 만나고 싶다면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