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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이 걸었던 새벽 산책 길을 걸었습니다

by 데일리아트
길 위의 미술관: 장욱진 편, 참가 후기

산책하기 참 좋은 계절이다. 긴 여름을 보내며, 나뭇잎이 물들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르겠다. 은행나무 잎이 노오랗다. 선물 같은 파란 하늘에 노란 나뭇잎을 보면서 근대기 화가 장욱진의 흔적을 만나러 성북동으로 나섰다.

성북동은 가을이 참 좋은 동네이다. 성북동 이곳 저곳에 산재한 미술관들이 좋은 전시를 열고 있다. 한양도성의 북쪽이라서 동네 이름이 성북동. 이곳은 이태준을 비롯한 김환기, 조지훈, 김용준, 박태원, 김기창 등 세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문인, 화가들이 둥지를 튼 곳이다. 한가한 가을 아침, 마음까지도 편안해지는 10월 주말의 아침이다.

근대기 화가의 예술 흔적을 찾아가는 《길 위의 미술관》은 오늘 같은 가을과 느긋한 주말에 더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 화가의 숨결을 발로 느낀다니 마음이 진작부터 설렌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최순우 옛집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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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 옛집. 사진: 김경수 ⓒ 김경수

“아!” 작은 탄성이 마당에 들어선 순간 튀어나왔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의 저자로만 알던 사람의 집이 이리 좋았구나 싶어 감동하고 있던 중에, 장욱진과는 무슨 인연인가에 대해 한성희 연구원의 해설이 시작되었다. 고택의 쪽마루에 걸터앉아 장욱진의 미술 세계로 들어가 본다.

최순우와 장욱진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년 간 함께 일했던 동료이다. ‘한국의 미’를 전파하던 최순우 선생과 친구였다 하니 장욱진 선생의 미술 세계가 왜 그리 한국적인가 이해가 된다. 최순우는 장욱진을 ‘철학자도 시인도 아니지만, 간절하고도 맑은 시심과 예술에 대한 신념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 이라고 평했다.


장욱진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신사실파’, ‘한국적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사적 해석이나 정신적으로 아팠던 아들을 두었던 가정사를 알게 되어 화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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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가족' , 1975, 캔버스에 유화물감, 19,3×22,7cm, 개인 소장


장욱진이 날마다 아동문학가 마해송과 걸었다는 새벽 산책 길을 함께 걷는다. 토요일 아침이라 성북동, 혜화동 골목길은 북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동료 화가 이대원 집터를 보고 장욱진의 배우자이자 평생 조력자인 이순경 여사가 운영하여 가정 경제를 지탱했던 ‘동양서림’ 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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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부터 영업한 혜화동 로터리 에 있는 '동양서림'. 사진: 김경수 ⓒ 김경수


1953년부터 운영하던 서점에서 당시 일했던 종업원의 딸이 이어받아 운영 중이다. 참 고마운 일이다. 곧 100년이 될 서점. 계속 지켜지길 바라며 화가가 걸었을 다음 길로 걸어본다. 바짝 마른 장욱진은 그림과 술로 살았다. 서점에서 길 건너에는 단골 술집이었던 ‘공주집’ 이 있었다. 그곳에서 후배와 친구들과 술 한 잔에 무엇을 꿈꾸었을까? 좀 더 걷다 보니 장욱진 화백이 살았던 명륜동 집터가 나온다. 아쉽게도 한옥집은 오간 데 없고 회색빛 3층 건물로 남아 있다. 아쉬운 마음으로 그가 걸었을 길을 따라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 본다. 마로니에도 익어가고 감나무의 감들은 주홍빛으로 익었다.


매일 새벽 달과 해가 만나는 시간에 산책을 했던 그다. 검둥개도 데리고, 귀여운 까치도 만나며 부지런쟁이 제비들과 인사하며 그 옛날 선비들처럼 자연을 만나고 그런 세상을 꿈꾸었나 보다. 아침 산책을 마치면 이웃의 동화 작가 마해송 선생과 ‘복지 다방’에서 모닝커피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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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길에서 보이는 산. 장욱진은 이 산을 보면서 산책했을 듯하다. 사진: 김경수 ⓒ 김경수


그의 작품은 모더니즘이라는 말보다는 ‘참 순수하다, 참 정겹다, 따듯한 듯 쓸쓸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그래서 그림은 우리네 이야기 같이 친근하다. 다행히 노년에 마지막으로 살면서 작업하였던 용인 마북의 집은 잘 보존되고 있다고 하니 산책하듯이 이른 아침에 들러 봐야겠다.


이 가을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가 장욱진인 듯 반가운 마음이 들 수 있게 해설을 들려주신 한성희 연구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다음 《길 위의 미술관》 은 국민화가 박수근 편이 이어진다. 한 주 건너 11월 9일에 창신동에서 탐방을 시작한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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