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고도 낯선 공간으로의 초대

[박정현의 시각]

by 데일리아트
마이클 엘름그린 & 잉가 드라그셋《Spaces》전시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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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 & 드라그셋 , '그림자 집' , 2024. 사진 : 박정현

그 중에서도 미술관을 가득 채운 공간인 ‘집’은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방과 주방, 그리고 거실까지 생활 공간을 완벽히 재현해 낸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미술관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릴 만큼 사실적이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나 액자를 비롯한 소품들 역시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이다. 거울 앞에 놓인 시든 꽃이나 구멍이 뚫린 장화처럼 본래의 모습이나 쓰임새를 잃어버린 물건과 열리지 않아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아이스박스처럼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소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 역시 이 전시를 관람하는 묘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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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 & 드라그셋, '단단한 비', 2024. 사진 : 박정현

한편 엘름 그린과 드라그셋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거실 앞의 유리창에 서서 무엇인가를 적고 있는 한 소년을 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집중하는 그의 표정은 이 집을 둘러싼 알쏭달쏭한 분위기와 맞물려 이 공간에서 펼쳐질 다양한 이야기에 대해 기대하게 만든다.


집에서 나와 다음 공간으로 가면 마치 유명 잡지에 소개될 법한 느낌의 고급 레스토랑이 있다. 운치 있는 분위기와 화려한 조명을 갖춘 이 레스토랑에 들어서면 누군가와 영상 통화를 하는 한 여자를 볼 수 있다.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오늘날 우리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든 타인과 연결될 수 있다. 영상 통화나 SNS는 우리의 일상을 여러 사람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실시간으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해진 상황은 다양한 장소가 지닌 원래의 목적을 뒤바꿔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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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 & 드라그셋, '대화', 2024. 사진 : 박정현


본래 레스토랑은 음식을 먹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음식의 맛은 사람들이 레스토랑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SNS에 '인증샷'을 찍어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요즘 식당은 단순하게 무엇인가를 먹는 곳을 넘어 자기 표현의 장소로 변화되었다. 작가들은 이 작품을 통해 장소가 지닌 여러 가지 역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며 신선한 시각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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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 & 드라그셋, '팀워크', 2023/2024. 사진 : 박정현


레스토랑 중앙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주방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가스 버너와 주방 도구들, 그리고 각종 실험 도구들까지 놓여 있다. 벽에 걸린 칠판에는 알 수 없는 수학 공식과 기호들이 쓰여있고 주방 한 켠에는 실험복을 입고 현미경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실험실인지, 레스토랑의 주방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주방과 실험실이라는 서로 다른 역할을 지닌 두 개의 장소를 한 공간에 표현하여 두 공간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작가는 요리와 과학이라는 두 분야가 지닌 연관성을 부각시킨다. 언뜻 보면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요리와 과학은 의외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나의 식품이 가공되어 소비자를 거쳐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러 가지 공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과학적 요소들이 개입된다.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품은 현대의 식품 산업에 담겨 있는 과학적 요소들을 상기시킴으로써 하나의 식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과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상황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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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름그린 & 드라그셋, '하늘 위 도시', 2019. 사진 : 박정현


두 장소를 하나의 공간에 표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가들은 뒤집혀진 도시의 모습을 선보이면서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하늘 위 도시>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화려한 대도시가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을 수놓은 대도시 마천루의 불빛을 보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인간은 자신들의 의지로 여러 가지 도구를 만들었고 이러한 도구를 이용해 산업화를 이루고 대도시를 이루었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얻게 되었지만, 많은 것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앞으로 인간이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지구는 어떠한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그리고 인간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잃게 될까? 뒤집힌 대도시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처럼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작품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공간을 새롭게 경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의 작품은 하나의 장소 안에서 여러 시각을 제시하며 관람객과 상호작용하면서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을 보여준다. 이번 《Spaces》전을 통해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의 색다른 시각이 더해진 공간들을 독자 여러분도 직접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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