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미술관 특별 기획전 《변용국: 은자의 바다, 빛의 거울》
색면 추상을 통해 고요한 명상의 세계를 구현한 변용국의 특별기획전
작가는 그리는 것이 아니라 흙손으로 반죽 된 시멘트를 쌓아 올리듯 텍스처를 올린다. 안료를 쌓고, 작가의 운동에너지와 부단한 시간이 쌓아 올려진다. 첫눈에 작품을 볼 때는 색과 공간이 입체적으로 쌓인 것을 인식하고, 잠시 후에는 이 입체가 제공하는 빛과 시간의 흐름을 체험한다. - 심은록, ⌜변용국, 그 안에 강이 흐른다⌟ 중
영은미술관은 2024년 마지막 특별기획전 《변용국: 은자의 바다, 빛의 거울》을 12월 29일까지 제 1전시장에서 개최한다. 변용국은 수행과도 같이 반복되는 노동집약적 작업을 통해, 고요하고 명상적인 색면 추상의 화면을 구현해낸다.
30년 전 도미한 이래, 미국 시카고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인 작가는 처음 미국에 정착하던 시기를 인간적으로나 작가적으로 큰 변혁을 가져다 준 시기로 회상한다. 새로운 터전에 적응하며 느낀 혼돈과 고립감은 자연스럽게 내면으로의 침잠과 반성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작가의 수행적 작업의 큰 원천이 되었다. ‘숨어있는 자의 바다’라는 뜻의 ‘은자의 바다’는 이러한 작가의 고뇌와 함께 내면에 응축되는 에너지를 시사한다.
전시 전경, 영은 미술관 제공
한편, 그 시기 접하게 된 애드 라인하르트(Ad Reinhardt)나 도널드 저드(Donald Judd)와도 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작업은 작가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색면 만으로 화면을 무게감 있게 장악하는 그들 작품에 대한 감흥은 작가로 하여금 색면 추상에로 작업의 방향을 굳히게 하였고, 앞서 서술한 내적 동인과 만나 존재의 심연을 마주하는 묵언수행과도 같은 작업을 현재까지 이어오게끔 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의 거울’이라는 또 하나의 작업적 키워드가 탄생하게 된다.
빛의 거울, 122.5 X 305cm(2pcs), Oil on Canvas on Panel, 2024, 영은 미술관 제공
‘빛의 거울’은 색채와 빛의 순정한 아름다움을 캔버스라는 거울을 통해 비쳐 내보임을 뜻한다. 빈 공간에 무수히 많은 점과 선, 면들을 반복적으로 붓질하거나 페인팅 나이프로 물감을 밀어올려 예리한 결들을 겹겹이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색채는 새로운 텍스쳐와 형태로 화면 위에 자리하게 된다. 이것은 마치 캔버스를 밭으로 삼고 색채의 씨앗을 뿌려 꽃을 피우도록 시간과 공력을 축적하는 작업이라고도 작가는 설명한다.
전시 전경, 영은 미술관 제공
빛의 거울, 122x91.5x4.5cm, Oil on Canvas on Panel, 2021, 영은 미술관 제공
이렇듯 그의 작품은 언뜻 심플하고 차가운 화면으로 보이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수많은 색조의 물감층이 겹겹이 싸여 응축된 뜨거운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무표정의 간결함’이라는 첫 인상 너머에 자리잡은 세밀한 기운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