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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19. 2024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② : 축구해설자가 된 벨라스케스

창간기획, 해외미술관을 가다 2)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② : 축구해설자가 된 벨라스케스, 최영식(미술에디터 취재)


전편에서 프라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스, 뒤러, 라파엘로 같은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러나 프라도를 대표하는 작가를 꼽으라면, 그리고 프라도가 뷔페가 아닌 오래된 한정식 명가(名家)인 이유는, 두 명의 스페인 작가 벨라스케스(Diego Velazquez,1599-1660)와 고야(Francisco Goya,1746-1828)의 작품들 때문이다.


벨라스케스 작품 120점과, 고야의 150여점의 회화 작품과 500여점의 소묘와 판화컬렉션까지 소장한 프라도 미술관은 두 화가의 수집품으로서 질적이나 양적으로 가장 완벽하다. 이런 점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를 이해하려면,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이곳 프라도 미술관의 방문이 필수적이다. 이 두 거장은 각각 바로크와 낭만주의사조를 대표하는 화가들이기도 하지만, 21세기 현재 우리가 김환기, 이우환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놓아준 분들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무한의 영역을 차지한다.


마음이 급하다. 빨리 달려가보자.


아차. 아무리 급해도 이들이 우리에게 차려줄 한정식이 어떤 재료로 어떻게 조리된 특징을 갖고 있는지는 잠깐 알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바로크? 낭만주의?


먼저 바로크(Baroque)란 무엇인가? ‘불규칙하고 뒤틀린 괴상한 모양’을 가리키는 바로크는 17세기 여러 현상들이 동시에 내포된 미술사조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지점은 17세기라는 시대적 배경이다. 이 시기는 르네상스에도 끈질기게 유지되던 중세적인 분위기가 폐지되고, 데카르트와 뉴턴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던 인간이성과 새로운 과학이 등장한 시대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재평가와 우주와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열정과 지성의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17세기에 바로크 사조의 토양이 있다.


빛, 광학에 대한 관심과 일상을 그린 바로크적 ‘자연주의’는 종교적 환상마저도 실제 생활의 모습으로 그려냈다.


바로크의 대표화가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의 <성 마테를 부르심>에서 인물들은 매우 예리한 광선을 통해 표현되고 있으며, 예수와 마테 모두 당시 일상복장으로 등장하고 있다.

카라바조 <성 마태를 부르심>,1599-1602

또 다른 바로크의 대표작가 베르니니(Gianlorenzo Bernini,1598-1680)의 <성 테레사의 황홀경>을 보자. 산타 마리아 델라 비토리아 교회의 코르나로 예배소에 설치된 이 조각상은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이 하나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한다.  베르니니가 시도한 바로크풍의 연극적 분위기는 실제와 환상의 구분이 허물어지며, 감정을 일깨우는 동작과 얼굴 표정으로 작가의 느낌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잔로렌초 베르니니, <성 테레사의 황홀경>1645-1652

바로크의 특징을 빛, 광학, 일상, 인본주의와 연극적 묘사로 압축적으로 기억해두자.


글 머리가 길었다. 이제 진짜로 벨라스케스를 만날 시간이다. 벨라스케스는 프라도 미술관의 중심을 차지한다. 공간적으로도 그의 작품들이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인 본 층에 있는, 대성당홀이라고 불리는 중앙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다.


그를 만나러 온 대부분의 애호가들은 우선 <라스 메니나스(시녀들)>을 보러 달려간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 연극적 묘사라는 바로크의 재료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 기자는 <브레다의 항복(창들)>을 먼저 감상하시길 권한다.

디에고 벨라스케스, <브레다의 항복>,1635

벨라스케스는 이 작품에서 그림의 주제를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시키고, 이야기를 풀어내는지를 보여 준다. 참혹한 전쟁 그림이지만, 그는 그 속에 질서를 부여하고, 2D의 캔버스에 3D의 입체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르네상스 이후 17세기 합리적 이성을 가진 인간, 그 인간이 바로 화가 자신임을 자신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가까이에서 볼 때와 멀리서 볼 때의 느낌이 확연히 달라진다. 본 기자도 5미터쯤 뒤에서 봤을 때 벨라스케스가 부여한 질서와 그 속에서 두드러지는 공간감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의 배경은 1625년 5월 네델란드 브레다시(市)를 스페인 스피놀라(Ambrosio Spinola)장군이 점령한 승리장면이다. 승자와 패자가 우열의 관계가 아닌이에서 받아들여지는 인본주의적 태도와 그 장면을 화가 벨라스케스(오른쪽 흰옷)가 지켜보고 있다. 그림을 5미터 뒤에서 봤을 때 느껴지는 공간감은, 스피놀라 장군 갑옷의 작은 흰점과 뒤쪽 불타는 대지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대기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있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사용했던, 멀어지는 물체를 작게 그린 선원근법의 한계를 느낀 화가들은 대기원근법을 발달시켰다. 멀어지는 물체는 작아지는 것뿐 아니라, 멀어지는 것에 비례해서 색깔과 형태를 잃어버린다.  대기원근법을 통해 공간감은 더욱 사실적인 3D로 표현된다.


뒤로 보이는 풍경엔 전장의 포연이 모락모락 올라가면서 앞쪽의 구체적인 인물들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대기의 묘사와 거리감의 달인인 벨라스케스의 기량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실제 얘기를 연극적인 묘사와 질서있는 구도로 우리에게 차려준 벨라스케스의 바로크 성찬으로, 벨라스케스를 가장 먼저 만나보기에 모자람이 없다.


자, 이제 유명한 그 <라스 메니나스>로 이동해보자.

벨라스케스 <라스 메니나스>,1656

<라스 메니나스>는 의심할 여지 없이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자 벨라스케스의 화풍을 집약한 작품이다. 바로크를 설명한 단어들인 일상, 연극적 의미라는 점에서 일상생활의 단면을 보여주는 단순한 그림인 듯 하면서 여러 숨겨진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을 실제 1미터 눈앞에서 봤을 때는 “음…..” “대충 그린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벨라스케스 선생에 대한 예의를 차리면서) 그림의 주인공 마르가리타 공주의 머릿결을 보자.

높은 지체의 공주님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정성스럽게 그렸다기 보다는 뭔가 붓칠이 흘러내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주 오른편 시녀(마리아 아구스티나 사르미엔토)의 옷 역시 물감이 뭉쳐진 것처럼 보인다. 천하의 벨라스케스가? 그런데 이 그림 역시 두서너 발자국 뒤에서 보면 전경의 이런 붓칠이 맨 뒤에 서 있는 시종 호세 니에토 사이의 엄청난 공간감을 더 부각시킨다. 전경의 덩어리진 물감의 물성(物性)과 후경의 대기원근법을 통해 마치 그림 전체에 공기가 통하고 있는 것 같은 공간감을 부여한다.


앞서 <브레다의 항복>에서 본 것처럼 이 그림에서도 선원근법과 대기원근법을 통해 그림 바깥까지 확장해 나갈 것 같은 놀라운 깊이와 거리감을 선사하고 있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은 무궁무진하고 서로 보완적인데, <브레다의 항복>처럼 자긍심 넘치는 나 자신, 이성의 존재로서 벨라스케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산티아고 기사단의 상징인 붉은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있는 귀족이자 화가인 벨라스케스는 이제 화가가 과거처럼 ‘기술자’가 아닌, ‘리버럴 아츠’에 입성한 당당한 지식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17세기 회화가 오늘날의 지위를 얻기 위해 획득한 두 가지 커다란 변화중 하나는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는 지식이었으며, 또 하나는 초월적인 신성이나 영감이 아니라 내가 본 것을 내가 인식한 것으로 떠오르는 이념을 표현한 것이다. 과학자가 자연을 잘 관찰해서 진리를 발견한다면 우리 화가들은 그 진리와 똑 같은 의미인 미(美)를, 자연과 사실을 표현해서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관찰자 벨라스케스를 통해서 우리는 ‘메타(Meta)’적 사유를 하는 근대인을 만나게 된다. 메타는 라틴어에서 ‘뒤, 후(後)’를 의미하는 것으로 숲 안에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숲 전체를 보는 것이다. 작품 안에서 전체를 조망하는 관찰자로서 벨라스케스는 등장하고 있다. 축구선수는 그라운드 안에서 뛰면서 공을 넣고, 해설자는 4-3-3 포메이션인지 3-5-2 포메이션인지를 알려주는 메타적 역할을 한다. 벨라스케스의 바로크와 근대인의 정체성에 대한 명해설은 듣고 또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KBS해설자> -출처 KBS홈페이지

해설자 벨라스케스를 만나봤다면, 21세기 현재 미술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바로 그, 고야를 만나야한다. (③편에 계속)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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