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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19. 2024

① [모딜리아니의 비극적 사랑 '잔느' ]

정서우의 욕망의 미술

불멸의 화가 모딜리아니
14살 어린 운명의 사랑 '잔느'
뜨거운 사랑의 끝은 죽음

그녀가 "당신이 그리는 제 얼굴엔 왜 눈동자가 없나요?"라고 묻자, 그는 "당신의 영혼을 다 알고 난 후에 눈동자를 그리겠소."라고 답했다. 죽기 전까지 병에 고통받으며 가난한 삶을 유지했던 화가 모딜리아니와 그의 마지막 사랑 잔느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 ~ 1920), 위키피디아

1884년 이탈리아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10대 초에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온갖 질병에 시달렸던 그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는데, 이를 발견한 어머니의 도움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한다.


Female head, 1911 / 1912, 위키피디아

1906년, 파리에 나가 키슬링, 피카소와 같은 화가들과 친분을 맺기도 한 그는 자기 친구이자 이웃인 브랑쿠시의 영향을 받아 1909년부터 1914년까지 약 5년간 조각 활동에 매진한다. 하지만 돌에서 나오는 먼지 때문에 건강이 악화화여 어쩔 수 없이 조각을 포기하게 되는데, 이때 만들어진 조각 작품의 형태를 보면 그가 원시 미술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창녀들과 하룻밤 잠자리를 빈번하게 가졌고, 음주와 마약으로 점철된 방탕하고 퇴폐적인 생활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딜리아니가 그려낸 그림의 특징을 두 가지 뽑는다면, 첫째는 눈동자가 없는 검푸른 빛의 눈이고, 둘째는 앞서 말한 원시 미술의 영감을 받아 실제보다 길게 그린 인물들의 신체와 비스듬한 얼굴이다.


Bride and Groom, 1915, 위키피디아

눈동자가 없는 얼굴은 처음엔 마치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보이다가, 나중엔 오히려 그 사람의 진짜 민낯인 듯 느껴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쓸쓸한 인상을 풍기며 어둡고 외로운 감정을 전달하는데, 이런 그의 그림은 무언가 사람을 정적이고 차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아련한 푸른 눈은 저항할 수 없이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오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감상자의 내면을 공허하면서도 잔잔한 슬픔으로 가득 채운다.


The Little Peasant, 1918, 위키피디아

그가 창조해 낸 인물의 형태는 신비로움을 자극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때문인지 그의 작품에선 생명의 힘이 흘러넘치는 생동감보다는, 정적이고 고요한 감옥 속에 갇혀 있는 압축된 불안을 직감할 수 있다.


Portrait of Dedie hayden, 1918, 위키피디아

종종 눈동자가 그려진 그림들도 볼 수 있는데, 재밌게도 눈동자가 없는 인물들과는 달리 생동감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미세한 따뜻함까지 감지할 수 있다. 누군가 “왜 그는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죠?”라고 물어본다면, 개인적으로 이런 점을 고려해 “그가 불안하고 슬픔에 잠겼을 땐 눈동자가 없는 인물을 그리고, 반대로 평소에 비해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이 살아있을 땐 인물의 눈동자를 그림으로써 자신의 내면 상황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1917년, 그는 그보다 14살이나 어린 운명의 사랑, 화가 지망생 잔느를 조각가 오를로프의 소개로 만나게 된다. 보수적인 가정이었던 잔느의 가족은 병약하고 마약과 술에 찌든 삶을 사는 모딜리아니와의 교제를 반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를 사랑하는 길을 택한다. 이후 둘은 함께 동거를 시작하며 열렬한 사랑을 이어갔고, 잔느를 만난 시기에 모딜리아니는 오늘날 그의 대표적인 초상화들을 가장 많이 그려냈다.


Jeanne Hebuterne (1898~1920), 위키피디아

맨 처음 소개한 이 둘의 대화 내용을 통해 모딜리아니가 그림 속 인물의 눈동자를 그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가 그린 잔느의 초상화들을 살펴보면 한 시기 동안 눈동자를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이 공존한다. 따라서 개인적으론 앞서 설명한 모딜리아니의 감정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관점에 조금 더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1918, 위키피디아
Jeanne Hebuterne with yellow sweater, 1918, 위키피디아

둘의 사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지 3년밖에 되지 않은 1920년,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35세 젊은 나이에 결핵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이에 충격을 받고 슬픔을 이겨내지 못한 잔느는 그의 사망 이틀 후, 8개월 된 둘째를 임신한 상태로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한다.


스스로 가슴에 칼을 찌르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자기 모습을 그린 잔느의 최후의 작품 ‘자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러한 비극적 결말을 어느 정도 예감한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배속에 품은 채, 미리 예견된 자기 죽음을 그렸던 그녀는 도대체 어떤 심정이었을까?


suicide, 1920?,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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