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베를린은 이데올로기의 종언 이후 21세기 예술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엿보였다. 독일이 예술과 철학의 나라임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독일은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 문학의 거장 괴테,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어머니 헨델, 천재 베토벤, 총체 예술가 바그너,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등 기라성 같은 세계적인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과거에도 수도 베를린은 독일의 천재 예술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문화 예술의 도시였으며 정치와 경제의 중심 도시였다. 베를린을 대표하는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페레가몬 박물관, 베를린 필하모니 홀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세계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명소다. 더욱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베를린은 새로운 모습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며 유럽에서 가장 아방가르드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음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포츠담 플라자의 소니 센터 주위는 한여름의 무더위도 아랑곳없이 여행자들로 붐볐고 힘차게 역동하고 있었다.
1701년 프로이센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은 비스마르크제국 시절에 이미 인구 100만 명의 도시로 위상을 떨쳤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에는 다시 통독의 수도가 되면서 연중 내내 다양한 전시회와 박람회, 음악회, 공연 등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오랫동안의 단절로 인한 편견과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문화와 예술의 소통만큼 더 이상적인 것은 없으리라.
베를린을 찾는 여행자들의 또 다른 매력은 도시 곳곳에서 넓은 숲과 많은 호수를 볼 수 있음이다. 여느 대도시들과는 달리 ‘베를리너 루프트(Berliner Luft, 베를린의 맑은 공기)’라 부를 정도로 맑은 베를린의 하늘은 정말 높고 푸르렀다. 동서의 오랜 단절과 나치 시절 광기의 역사적 굴욕에서도 빠른 회복과 치유가 가능했음은 베를린의 빼곡한 숲과 호수가 함께한 아름다운 자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독일의 중요한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의 개관 전까지는 베를린 최고의 현대미술관이었다. 1996년 함부르거 반호프 현대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이곳은 20세기 초부터 1960년대까지의 작품만을 소장하는 미술관으로 특성이 바뀌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이 자리한 포츠다머 슈트라세(포츠담 대로) 지역은 문화 포럼(Kulturforum)이 조성되어 있다. 문화 포럼 안에는 회화 갤러리를 비롯해 4개의 미술관이 있다. 1958년 서독 정부는 베를린의 티어가르텐(Tiergarten) 지역 가장자리에 한스 샤론에 의해 서베 를린의 문화 지구를 조성하였다. 문화 지구에는 한스 샤론의 대표작 베를린 필하모니 건물이 1963년 맨 처음 들어섰고 그 후 쳄버 뮤직 홀, 국립도서관, 신미술관 등이 잇따라 지어졌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설계에 의해 철골빔과 유리로만 지어진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표현주의 건물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미스는 바우하우스 교장을 지내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의 시그램 빌딩과 시카고 연방센터의 설계로 미국에서 명성을 얻게 된다. 미스의 건축 세계는 구축의 엄격한 표현을 선호하여 모든 장식을 거부했다. ‘규율’은 미스의 삶과 일의 표어였다. 기둥과 피막에서 미스가 자주 했던 명제 ‘Less is More’의 의미는 단순할수록 좋은 디자인임을 뜻한다. 미술관 건물의 철과 콘크리트는 강함을 나타내는 건물의 뼈이고, 유리는 빛나는 베일처럼 그 뼈를 감싸는 외피라 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독일로 돌아와 지은 미스의 마지막 작품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건물의 뼈와 외피만으로 지어진 단순하고 아름다운 절제미를 자랑하는 20세기 최고의 건축물로 손꼽힌다. 이 미술관은 그의 명제인 ‘적을수록 많다’ 즉, 최소의 절제에 최대의 디자인이 내포되어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절제미의 정수다.
거대한 철판 한 장이 유리 박스 위에 달랑 올라앉은 듯 심플한 건축물 앞에는 나지막하고 넓은 계단들을 두어 관객의 쉼터 역할을 하였다. 계단에서 잠시 쉬며 베를린의 파란 하늘과 구름, 코너에 놓인 조각, 미술관 옆에 바로 붙은 고딕 양식의 교회 건물 등 다양한 풍경이 유리에 반사되어 색다른 풍경을 엿보게 한 건축가의 숨은 의도에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절제된 유 리건축과 그 앞에 놓인 미니멀한 알렉산더 칼더 조각 <Têtes et queue>의 절묘한 조화 역시 환상이었다.
주요 소장품으로는 피카소, 뭉크, 오토 딕스, 코코슈카, 키르히너, 바젤리츠, 칸딘스키, 클레, 미로 등의 유럽 대가들 작품과 표현주의, 바우하우스,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이 있다. 특히 독일 표현주의 거장들의 우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마침 1층 전시장은 순회 전시 준비로 닫혀 있었고 아래층에선 1945년부터 1968년까지의 현대미술 기획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기획 전시의 주제는 ‘분단된 하늘(Divided Heaven)’이었다.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이사벨 로슨의 3명 학생들>과 피카소의 <꽃다발을 든 여인>이었다.
전시 관람 후 지하 카페에서의 달콤한 라즈베리 케이크와 에스프레소가 주는 행복함이야말로 미술관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쉼이며 일탈이다. 미술관 조각공원은 건물 뒤편으로 한층 아래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유리 건축의 아름다운 절제미를 살리기 위해서이리라. 잘 다듬어진 나무들 사이로 조각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미술관 건물을 빙 둘러 이름만 열거해도 알 만한 유명 조각들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어 미술관 품격을 한껏 높였다. 헨리 무어의 조각 <궁수(The Archer)>를 비롯해 칠리다의 조각 <전사(Krieger)>였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은 2014년 데이비드 치퍼필드의 <stick & stons> 전시를 마지막으로 3년간 리노베이션에 들어갔다. 미술관 리노베이션에 수많은 건축가들이 응모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 마지막 전시를 한 데이비드 치퍼필드에게로 그 영광이 돌아갔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을 나와 건너편에 위치한 베를린 필하모니 홀과 소니 센터로 향했다. 한스 샤론 설계의 베를린 필하모니 홀은 오래된 건축임에 불구하고 독특한 디자인은 눈길을 끌었고, 헬무트 얀 설계의 소니 센터 주변은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베를린이 자랑하는 페르가몬 박물관과 쉰켈 설계의 구박물관도 둘러보았다.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의 건축기행] 독일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Neue Nationalgalerie < 문화일반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