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씨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인파로 국회의사당 앞은 시끌벅적하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있던 지난 1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범국민촛불대행진'이 열렸기 때문이다. ‘내란죄 윤석열 퇴진, 국민주권실현! 사회대개혁!’ 를 외치며 시민들이 간절한 마음을 모으고 있다. 다만 이전 집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형형색색의 K팝 가수 콘서트장에서 사용되는 응원봉이 거리를 물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빅뱅, 엑소, 소녀시대, 샤이니, 몬스타엑스, 세븐틴, NCT, 블랙핑크, 에스파, 뉴진스 등의 응원봉이 거리를 환하게 빛내고 있다. 이는 K팝 주요 소비층인 2030세대의 집회 대거 참석에 따른 결과이다. 응원봉 이외에도 K팝 노래가 거리에 흘러나오며 집회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들이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 ‘위플레시’, 로제 ’아파트’등 K팝 떼창을 하며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도 흥과 신명을 놓치 않는다.
흥의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명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서도 다시금 확인가능하다. 80년대 운동권 세대와 미술계는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으며 발전해왔는데, 그 중 하나가 민중미술이었다. 민중미술 작품은 집회에 직접 사용되어 미술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에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민중미술이라 하면 시위에 활용되기에 강하고, 선동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대표적 민중미술 동인 '두렁'의 작업에는 그와는 다르게 표현된 신명을 찾을 수 있다.
두렁은 김봉준, 라원식, 김우선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된 민중미술 동인이다. 두렁이라는 이름도 논밭을 둘러싼 작은 둔덕을 의미하며 농경사회의 일과 놀이, 협동을 상징한다. 일과 놀이가 함께 이뤄진다는 뜻의 동인 그룹 두렁은 민중생활과 직접 연관된 탈춤, 굿과 같은 전통에 주목하였다. 민중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는 역동적이고 실천적인 전통을 되살리고자 설화, 민속예술, 불화, 샤머니즘을 기반으로 민중과 함께 놀이와 노동의 통합된 미술을 추구했다.
두렁의 핵심 멤버들은 대학 시절 탈춤, 마당극, 풍물 등 민중적 전통예술 활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어 작품 세계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는 놀이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적 예술을 전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더불어 탈춤과 같은 전통 연행 예술은 단순히 놀이를 넘어선 민중의 신명이자 흥과 열정의 표현으로 여겨졌다.
또한 두렁은 굿판에서와 같은 ‘공동체적 신명’을 강조한다. 굿은 본래 음악, 미술, 이야기, 춤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 예술 형식으로도 볼 수 있다. 민중이 삶과 죽음을 직접적으로 다루어 종교적 의미 외에도 고통을 초월하는 치유의 역할을 했다. 두렁은 이러한 굿판의 특징을 예술의 형식과 내용에 도입하여 민중 공동체의 재생을 시도했다. 특히 두렁은 민중의 정서를 표현할 때 ‘신명’을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는데, 신명은 단순히 흥이 아니라 억압된 현실 속에서 민중이 삶의 활력을 되찾고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연대하는 감각을 뜻한다.
두렁은 놀이 정신에서 민중적 생활 표현의 예술적 원천인 ‘신명’이야말로 민속 연희에서 일반적으로 추출되는 여러 가지 요소 중 가장 근원적인 것이라 했다. 열림굿과 같은 활동들을 통해 신명 예술을 시각화하고 노동과 놀이의 통합된 상태를 미술적 형식으로 발전시켰다.
〈조선수난민중해원탱〉은 이러한 무속적 특성을 강하게 반영한 작품으로 두렁 창립전 열림 굿판 뒤에 걸렸던 작품이다. 감로탱화의 삼단 구도를 차용하여 민중의 고통과 희망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하단에는 동학농민운동, 여순항쟁, 6·25전쟁 등 민중이 겪은 역사적 고난이 재구성되어 있으며, 고통받는 민중의 모습은 마치 동학군이 체포되거나 피난길에 오른 장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 중단에는 민중의 투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상단에서는 모두가 화합하고 춤추며 평등한 세상을 그려내는 미래의 유토피아가 펼쳐진다. 이 작품은 단순히 민중의 고난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과거의 고통을 현재의 의례를 통해 해원하고, 이를 통해 이상적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샤머니즘적 치유의 의미를 담고 있다.
두렁의 이러한 작업들은 억눌린 목소리를 다시 불러내고 치유하며, 민중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기능하였다. 더불어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과 실천의 산물인 두렁의 정신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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