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 누구라도 비슷한 심정을 갖었을 것이다. 보는 내내 답답했다. 끝까지 맘 속에 응어리되어 풀지 못 했던 마음이 며칠동안 괴롭혔다. 난 그 후유증이 길었던 편이다. 이중섭 위인전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도 그랬다. 이중섭이 살았던 짧고 황망했던 시절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책을 만들겠다고 패기를 부릴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자료를 파면 팔수록 글로 토하기도 전에 심한 몸살부터 앓았다.
전두환 대통령을 연기한 황정민 배우의 교활한 얼굴이 기분을 사정없이 구겨버렸고, 다시 떠올리기 싫어 화가 급속도로 치솟았다. 그 불편함은 단순한 영화적 체험이 아니라, 역사 속 어느 순간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계엄령"이라는 단단를 다시 현실의 뉴스에서 맞닥뜨릴 줄이야. 믿을 수 없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속보를 보며 나는 챗GPT에게 물었다.
"계엄령이란 무엇인가?"
프롬프트를 고심하거나 다듬을 겨를도 없이, 나는 단순히 묻고 싶었다. 챗 GPT는 마치 사전에 입력된 모든 정의와 사례를 꺼내듯, 정확하고 냉철하게 "계엄령"의 개념과 법적 의미를 설명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 계엄령이 언제 있었지?"
또다시 답은 정확하고 빠르게 돌아왔다. 수십 년 전의 사건들, 5·16 군사정변,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그로 인한 비극적 결과들이 따박따박 정리되었다.
AI는 역사를 확인해 주고 있있었지만 아무런 감정없이 뱉어내는 그 정교한 설명이 두려웠다. 뉴스 속 현재의 상황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 일은 아마도 먼 훗날 또 이렇게 역사적인 일로 정리되는 때가 올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한 밤의 쇼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고 정신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그림자를 지금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기술은 냉정하다. AI는 감정이 없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것을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한다. 내가 느꼈던 분노, 공포, 그리고 아이의 숨소리를 확인하며 들었던 안도의 한숨까지, 기술은 모두 담아낼 수 있다.
다시 돌아온 "계엄령"이라는 단어가 뉴스 속에서 웅웅 울리는 동안, 나는 이 시대의 기록자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했다. 기술은 역사를 기억한다. 우리는 그 기억을 사용해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는가.
아마도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느꼈던 묵직한 체증은 이와 같은 경고였을 것이다. 지나간 아픔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과거를 바로 알고, 지금을 직시하며, 미래를 그릴 힘이 있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술은 우리의 동반자가 될 수 있을까?
역사의 순간들이 그랬듯이,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상황을 기록하는 일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후의 세대가 과거를 바로 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미 기록의 힘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1970년대의 한국 문학과 영화는 군부독재 아래서 억압된 목소리를 대신 전달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는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역사의 증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공포와 연민, 그리고 경각심을 일깨운다. 기록은 단지 과거를 복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힘이 된다.
AI를 사용해 지금의 상황을 그려보고, 이를 기록으로 남기며, 그 감정을 되새기는 과정은 단순한 개인적 예술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적 분노를 공유하는 도구다. AI는 내 감정을 증폭시키거나 희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느낀 그대로를, 마치 거울처럼 정확히 반영해준다. 내가 AI에게 요청해 생성한 이미지와 텍스트들은, 이 뜨거운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록은 우리의 분노와 슬픔을 모아준다. 단순히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서, 그 목소리가 더 이상 지워지지 않도록, 잊히지 않도록 만든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같이 AI로 작업을 하거나 글로 분노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이 시대의 전체적인 감정을 집약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작업의 가치는 명확하다. 이 분노는 우리의 기억이자, 역사의 경고다. 오늘을 기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과거를 마주할 것이다.
[저항하는 예술 ⑦] AI는 지금의 시국을 어떻게 그릴까? < AI스토리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