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 밤 교과서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 일어났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믿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상황은 6시간 만에 종료되었지만 국민들의 평범한 일상은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민주주의가 당연한 시대에 살아온 필자는 더욱 이러한 상황이 비현실적이었다. 평화로운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평화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많은 국민은 이러한 상황에 분노하며 추운 겨울 여의도 앞으로 모였다. 시위 장소엔 20~30대가 유독 많이 보였다. 자유가 당연한 세대가 자유를 빼앗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꺼지지 않는 촛불을 상징하기 위하여 색색의 K팝 아이돌 응원봉을 사용한다. 그들에게 시위는 마치 콘서트처럼 신나게 케이팝을 부르며 즐기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재밌는 깃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국집에누워있기연합', '직장인점심메뉴추천조합', '전국거북목협회', '전국수족냉증연합' 등의 깃발은 누구나 시위에 참여하고 정치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참여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정부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해학의 민족답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해학과 풍자의 모습은 옛 민화에서도 발견된다. 민화는 19세기 조선 후기에 유행한 그림이다. 왕실의 궁중 회화, 양반의 문인화와 달리 자유롭고 파격적인 표현으로 서민들의 미감을 친근하고 솔직하게 보여준다. 서민들은 일상에서 이루고 싶은 꿈과 염원을 그림에 담아 그리며 생활 곳곳을 장식하였다. 민화의 대표적인 화제로 <까치와 호랑이>가 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길상'을, 호랑이는 나쁜 액운을 물리치는 '벽사'를 의미한다.
<까치호랑이>는 문배도(門排圖)에 즐겨 사용되었다. 문배도는 정월 초하루 대문이나 벽에 역병, 나쁜 기운을 막고 복이 들어오게 하기 위해 닭, 해태, 호랑이 그림 등을 붙이는 풍습이다. 이러한 호랑이가 점점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까치는 호랑이를 놀리거나 당당한 자태로 등장한다. 이를 두고 바보 같은 호랑이는 무능한 양반을, 지혜로운 까치는 똑똑한 민중을 대입하여 이야기한다. 마치 지금의 국민 소리를 듣지 않는 대통령과 정치적 안위만 생각하는 국회의원, 깨어있는 시민 모습이 연상된다.
경기대학교 소성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민화 <호질도(虎叱圖)>는 박지원의 고전 소설과 제목을 같이 한다. 연암 박지원의 ‘호질(虎叱)’은 조선 후기 지식인과 부패한 사회를 유머 있게 폭로하며 풍자한 소설이다. 호질은 '호랑이가 꾸짖는다'는 뜻이다. 소설 속 호랑이는 예의를 중시하고 청렴한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기적이고 자기 배 불리는 탐욕적이고 겉과 속이 다른 유학자의 도덕적 위선을 비판한다. 호랑이 같은 동물이 인간의 도덕은 논한다는 일 자체가 역설적인 설정이다.
민화 <호질도>에서 호랑이는 갓을 쓰고 담뱃대를 들고 있으며, 까치 두 마리가 소나무에 앉아 있다. '까치와 호랑이' 형식을 취한 것으로 보아, 민화 <호질도> 속 호랑이는 비현실적 이상주의를 꿈꾸는 존재로, 잘난 척하는 권력층 양반을 풍자하는 것은 아닐까. 민화 <까치와 호랑이>에 담긴 길상과 벽사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며 기쁜 웃음과 희망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닿기를 바란다.
해학과 풍자로 권력에 저항하다 - 민화 '까치호랑이' < 미술일반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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