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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Dec 27. 2024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⑮] 티파니2.

나쁜 그녀들 세상을 매혹하다


영화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선입관에 대해서도 비판합니다. 사람들은 티파니를 헤프고 제정신이 아닌 여성으로 몰아갑니다. 팻의 어머니는 아들이 ‘이상한 사람들’ 틈에 있는 것이 싫다며 예정보다 일찍 정신병원에서 집으로 데려옵니다. 같은 환자들끼리도 서로를 판단합니다. 본래 자신이 미쳤다고 주장하는 미친 사람은 없는 법입니다. 팻은 티파니가 자신보다 더 비정상이라고 몰아세우며, 자신과 그녀는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누가 더 ‘미쳤느냐’는 판단은 마음이 아픈 사람들 사이에서도 편견이 개입함을 알려줍니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도 신선함을 잃지 않습니다. 옥신각신하던 남녀가 점점 서로를 이해하게 되며, 그들 사이에 존재하던 긴장감과 불안이 사실은 사랑이라는 감정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입니다. 사실 팻은 티파니를 처음 봤을 때부터 그녀에게 반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내를 향한 팻의 마음은 종교와도 같습니다. 티파니에게 끌리는 마음을 팻은 애써 부정합니다. 팻은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른 탓에 자신의 감정을 있는 대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이성적 사고만을 강조하는 태도는 오히려 지극히 비합리적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결국 감정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티파니는 처음부터 팻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댄스 대회를 준비하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알게 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추는 댄스는 서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절대적입니다. 협력과 인내, 노력, 서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두 사람의 댄스 경기 출전에 팻의 아버지가 배팅하면서 일이 커집니다. 한편 티파니는 경연장에서 팻의 아내와 마주치고 질투심에 휩싸입니다. 팻이 댄스 대회에 참가한 이유는 아내에게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팻이 자신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티파니에게 끌리는 감정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는? 관객들은 이미 팻이 티파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단지 팻만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 팻의 푸른 눈은 열정으로 일렁입니다. 티파니를 귀찮아하면서도 늘 그녀 집 앞을 얼쩡거립니다. 거울에 비친 그녀의 벗은 등을 보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마침내 팻은 고백합니다. 티파니는 팻 앞에서 그가 쓴 편지를 읽습니다. “내 미친 꼴을 보려고 당신이 미친 짓을 했죠. 고마워요. 사랑해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오래 걸려 미안해요. 갇혀 있었어요.” 그렇습니다. ‘사랑은 먼저 놓아주고 기다리는 것’이라는 정신과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기란 팻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집착과 노력, 강박이 팻이 사랑에 대해 아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랬던 팻이 ‘갇혀 있던’ 상태에서 벗어나 티파니에게 한 발자국 다가섭니다. 그렇습니다. 팻은 티파니 덕분에 자신밖에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 한결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합니다. 게다가 이 남자, 전략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잠시 숨길 수 있을 정도로 로맨틱해졌습니다. 


티파니는 불안정한 정신세계를 가졌다는 면에서 팻과 비슷합니다. 그렇지만 티파니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자신의 나쁜 모습마저 받아들일 줄 압니다. “내 안에 추한 마음이 있지만 난 그걸 좋아해요. 다른 내 모습만큼이나. 당신은 인정할 수 있어요? 받아들일 수 있어요?” 자신을 헤픈 여자로 몰아가는 팻에게 티파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토록 솔직하고 매력적인 악녀에게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사실 티파니는 처음부터 팻에게 빠져들었지만 상처받을까 두려워합니다. 냉소와 거친 말로 자신을 방어합니다. 하지만 티파니 역시 팻과의 만남을 통해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극복합니다. 관객들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역시 사람을 통해 치유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상기합니다. 


브래들리 쿠퍼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한층 성숙한 연기력을 펼칩니다. 이후 ‘아메리칸 허슬’, ‘아메리칸 스나이퍼’, ‘워 독’, ‘스타 이즈 본’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팻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대배우 로버트 드니로의 연기 역시 압권입니다. 그는 강박증과 미신에 시달리는, 아들만큼이나 ‘이상한’ 남자입니다. 한편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아버지이자, 자신의 과오를 뉘우칠 줄 아는 인격자이기도 합니다. 티파니를 ‘재수 없는 여자’ 취급하다가 진정한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곧 그녀를 아들의 애인감으로 점찍습니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티격태격하고 온갖 기행을 일삼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놀라운 연기력으로 티파니라는 복잡하고도 매력적인 여성상을 창조합니다. 영화는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과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감독상, 각색상, 편집상 후보에 오릅니다. 제니퍼 로렌스는 최연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캐릭터들의 치유와 성장을 다룬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⑮]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 2. <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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