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 하는 요즈음 어디로 떠나볼까?
제주도는 비행기 편으로는 가깝지만 심리적으로 먼 곳이다. 동해안은 여름에는 좋지만 지금 떠나려니 너무 쓸쓸하다. 거리도 멀지 않고 숙박 및 편리시설도 잘 갖춘 곳, 이럴때는 전라북도가 제격이다. 전라도는 특히 먹거리가 좋아 준비 없이 가도 기대 이상의 평점은 받는 곳이 즐비하다. 전북에서 오랫동안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알리고 명소를 소개하는 '로컬큐레이터' 손안나 대표가 독자들의 손을 잡고 전라북도 가볼만한 곳을 알려준다. '이맘때 가면 딱 좋은 곳', 오늘 첫 순서로 어청도를 소개한다.(편집자 주)
어청도(於靑島)는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에 위치한 섬으로, 군산에서 대략 북서쪽으로 72km 지점에 있다. 군산항에서 배를 타면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전라북도 관내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중국 산둥반도에서는 불과 300km 정도 떨어져 있어 산둥반도의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만큼 가깝다. 우리나라 영해기선 기점 중 하나인 어청도항은 태풍 때 선박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어청도는 조선 시대까지 보령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전라북도 옥구군으로 이관되었고, 1995년 옥구군과 군산시가 통합되며 군산시 관할이 되었다. 어청도의 볼거리는 철새와 어청도 등대, 치동묘, 4개의 어청도 구불길이 있다.
철새들의 정거장
철새들의 이동 경로에 있는 어청도는 철새들의 정거장 혹은 휴게소의 역할을 한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새를 '나그네새'라고 하는데 겨울에 아열대 지역에서 월동하다 봄에 한국으로 와 번식한 후 가을에 남쪽 지역으로 이주하는 새를 '여름 철새'라 한다. 반면 여름에 시베리아나 만주 등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새를 '겨울 철새'라고 한다. 어청도는 국내의 대표적 철새 정거장으로 나그네새와 철새 등 총 330여 종이 관찰되는 곳이다. 철새들의 대푭적 서식처 답게 봄· 가을로는 국내외에서 수많은 탐조가나 조류사진가들이 찾아온다. 추위와 더위를 피해다니는 까다로운 철새들이 찾아오는 곳이라면 일단 믿어볼 만하다. 철새보다 더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가기에 참 알맞은 곳이 어청도다. 단 살 길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철새와 같은 정치인은 사양한다.
어청도 초등학교
이 섬에는 유일한 학교가 있다. 개교 100주년에서 1년 앞둔 올해 3.1일부로 폐교된 어청초등학교이다. 그러나 학교를 둘러 볼 수 있다. 이 학교의 특징은 학교 정문이 향나무로 되어 있다. 두 그루의 향나무가 팔을 벌려 아이들의 등하교를 지켜봤을 터인데 폐교가 되었다는 소식에서 지역소멸의 위기를 체감할 수 있다. 학교의 연륜만큼이나 오래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서인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교정은 새들의 고향이 되었다. 여러분들의 발 길로 이 학교를 채워주시기를...
치동묘
마을 안쪽에는 진나라 말기의 인물로, 중국 제나라의 왕 전광(田廣)의 숙부였던 전횡의 사당인 치동묘가 있다. BC 202년경 중국의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초나라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였다. 전쟁에서 패한 항우는 자결하고 재상이었던 전횡은 한나라의 신하로 사는 것을 거부하고 군사 500명과 함께 망명길에 올랐다. 이들은 돛단배를 이용하여 서해를 목적지 없이 떠다니던 중 중국을 떠난 지 3개월 만에 어청도를 발견한다. 어느날 날씨는 쾌청하였지만 바다 위에 안개가 끼어 있어 주변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전횡은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였고 푸른 청(靑)자를 사용하여 어청도(於靑島)라 이름하였다. 전횡은 담양 전씨의 시조로 추앙되는 인물로 군산에도 치동서원과 치동묘가 있다.
봉수대
마을에서 어청도 등대에 가는 방법은 2개가 있다. 하나는 치동묘와 어청도 초등학교를 거쳐 팔각정을 지나가는 길로 포장된 임도이다. 다른 하나는 마을 뒷산의 등산로를 이용하여 봉수대를 거쳐 가는 방법이다. 갈 때는 등산로를 이용하고 올 때는 임도를 이용하거나 반대로 임도를 갔다가 등산로로 돌아와도 좋다. 나는 5월과 8월, 등산로가 갔다가 임도로 돌아왔는데 5월엔 풀이 많이 자라지 않아 걷기 편했던 길이 8월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걷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뱀이 나올 위험이 있어 오싹했다. 그러나 뱀은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여름에 여행을 한다면 등산로를 추천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해도 여행하다가 뱀에 물렸다면 이 글을 쓰는 내 책임 아니다.
마을과 팔각정 중간쯤에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는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을 피워서 국경을 넘어오는 적의 소식을 전하던 곳이다. 높은 산의 정상에 세워졌던 봉수대는 지금의 전파 중계소의 역할을 한다. 부산의 다대포에 왜적이 나타났을 때 한양까지 정보를 알리는 데 약 12시간이 걸렸다. 부산에서 한양까지의 거리는 약 450km이고, 봉수대는 약 12km마다 있었으므로 38개 정도의 봉수대를 거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 봉수대에서 신호를 연결하는 데 걸린 시간을 계산하면 약 20분이다. 말을타고 달려도 몇 일을 걸리는데 12시간이라면 대단히 빠른 시간이다. 그러나 봉수꾼이 졸다가 신호를 못 본다면 사형감이다.
어청도 등대
어청도 등대는 1912년 3월에 대륙진출의 야망을 품은 일본의 정략적인 목적에 의해 건설되었다. 그래서 100년이 넘었다. 등대만 따진다면 우리나라에서 4번째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어청도 등대는 지금도 군산항과 우리나라 서해안의 남북항로를 통항하는 모든 선박이 이용하는 중요한 통신망이다. 약 37㎞ 떨어진 바다에서도 어청도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다.
등탑은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이며 조형미를 살리기 위하여 등탑 상부를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재구성하여 보존가치가 크다. 상부 홍색의 등롱과 하얀 페인트를 칠한 등탑, 그리고 돌담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그 모습이 바다와 너무 잘 어우러져 그 자태가 매우 아름답다. 내가 어청도를 찾은 이유도 이 아름다운 등대를 보기 위해서였다. 5월에 갔을 때에는 낮시간에 방문을 하였고 8월에 갔을 때에는 일몰 시간에 맞춰서 등대를 찾았다. 개인적으로 어청도 등대는 낮에 보는 것보다 일몰과 함께 보는 등대가 훨씬 아름답다. 일몰과 함께하는 어청도 등대는 처연한 외로움이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가면 안된다. 연인이나 부부싸움을 한 부부가 가면 뭔가 역사가 일어날만하다.
아펜젤러 순직 기념비
등산로와 임도가 만나는 곳에 팔각정이 있다. 또한 이곳은 어청도 구불길 3코스 안산넘길의 시작점이기도 한다. 안산은 해돋이 전망대로 유명하며 목넘 쉼터와 공치산 정상에 이르는 길은 한반도 지형을 하고 있어서 꼭 들려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진 맛집이다. 다만 풀이 무성한 여름엔 긴팔과 긴바지 등 단단히 준비를 하고 올라야 한다.
팔각정에는 우리나라 선교역사에 매우 중요한 분인 아펜젤러 목사의 순직기념비가 있다. 아펜젤러 목사는 배재학당과 정동교회를 설립하는 등 교육과 선교에 힘썼으며 성경 번역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 아펜젤러 목사가 순직한 곳이 이곳 이다. 아펜젤러는 1902년 인천에서 출발하여 전라남도 목포로 선교여행을 가던 중 배가 충돌하여 침몰할 때 조선인 여학생을 구하려다 여학생은 구하고 자신은 익사하였다. 이를 기념하는 비가 어청도 팔각정에 있다. 서울 합정동양화진외국인 묘원에 있는 아펜젤러묘는 가묘이다.
마무리
어청도는 '비밀의 섬'이라는 별명답게 잘 알려지지 않은 섬이지만 다양한 이야기가 있으며 숨 막히게 아름다운 절경이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곳이다. 겨울 철새들이 우리나라에 찾아오고 있는데 탐조도 하고 다양한 역사 탐방과 구불길 도보여행도 가능한 어청도에 풀이 무성해 지기 전에 한 번 가보라 권한다.
이렇게 잘 설명을 했는데도 안간다면 독자들만 손해이다. 전북의 아름다움의 끝판왕 어청도를 소개했다. 다음편에도 더 아름다운 곳을 소개한다.
[이맘때 가면 딱 좋은 곳 ① ] 비밀의 섬 '어청도' < 답사 < 아트체험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