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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때 가면 딱 좋은 곳 ③] 완주 송광사로...

by 데일리아트

설경과 함께하는 사찰 이야기


전라북도에는 폭설을 동반한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산사를 찾곤 한다. 한옥에 소복하게 쌓인 눈과 고드름을 보는 것이 좋은지, 눈 쌓인 설경에 마음을 빼앗기는지는 모르겠만 눈 오는 날엔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사찰로 향하게 된다. 눈이 많이 온 날 산에 오르는 건 위험하니 평지 사찰 송광사를 둘러 보며 겨울 낭만에 빠져 보았다. 완주 송광사는 주차장 옆에 바로 일주문이 있어서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되니 어르신이나 어린이나 부담 없이 찾아갈 수 있어 매우 매력적인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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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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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설경


호국사찰


송광사가 완주에 있나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법정 스님이 있었던 순천의 송광사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다. 전국에는 같은 이름의 송광사가 5개나 있고 그중 가장 유명한 송광사가 순천의 송광사이다. 순천 송광사는 삼보사찰 중 승보사찰이다. 삼보는 불(佛), 법(法), 승(僧)이다. 불은 부처님, 법은 경전, 승은 스님을 의미한다. 양산의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어 불보사찰이고, 합천의 해인사는 우리나라 최고의 경전인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어 법보사찰이며, 순천의 송광사는 고려 말 16명의 국사를 연이어 배출함으로써 승보사찰이 되었다. 그래서 순천의 송광사는 법정 스님 말고도 승보사찰로도 유명하다.


순천 송광사가 승보사찰이라면 완주의 송광사는 호국사찰이다. 호국사찰이라니…. 나라를 지키는 절이다. 그래서 호국사찰인 송광사는 어느 때보다도 혼란한 요즘 가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완주 송광사는 백제 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전소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왕실에서 절터를 시주하여 중창하였다. 처음 창건한 사람을 개창조라고 하는데, 개창조(開創祖)인 벽암 선사는 임진왜란 때 승병들과 함께 수군으로 활약한 스님이다. 그리고 인조시절 병자호란 때에는 승병 대장으로 활약했다고 하니 이 분의 나라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 만하다. 벽암선사와 함께 병자호란에 참여한 승병들이 인조가 삼전도에서 항복하자 송광사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인조의 헛발질을 보고 스님들이 얼마나 허탈해 했을까? 스님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 스님들이 송광사에 머물 때, 절 입구에서 말에 물을 먹였던 마을이 마수리(馬水里)이고, 마수리 마을 앞에 있는 다리를 마수교(馬水橋)라고 했다. 이 스님들은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고개를 조아리던 인조를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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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전과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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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전과 사천왕상


천왕전(천왕문)과 사천왕상


송광사가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전각을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로 천왕문, 혹은 천왕전이다.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기에 천왕문, 혹은 천왕전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은 히말라야가 아니고 수미산이다. 이 수미산을 다스리는 사람이 제석천이다. 사천왕은 제석천을 섬기며 동서남북 4방과 4개의 고을을 지키는 수호자이다. 사천왕은 사방을 수호하기에 국가적 차원에서는 호국 신앙과 연결되었고, 종교적 측면에서는 불법(佛法)과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다.


완주 송광사 천왕문에는 양쪽으로 문이 있어서 매월 음력 초하루에는 문을 닫고 사천왕 법회 및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래서 일주문 쪽에는 천왕문이라는 현판이 있지만, 대웅전 쪽에는 천왕전이라는 현판이 달려 있다. 천왕문이자 천왕전은 송광사가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는 전각이다.


천왕전에 있는 사천왕상은 진흙으로 조성된 소조상(塑造像)으로 크기가 425cm에 달하는 거대한 상이며, 인조 27년인 1649년에 조성되었다는 연대가 확실하여 보물로 지정되었다. 4m가 넘는 거대한 몸집인데도 신체 비례가 균형 잡혀 있고, 세밀한 표현이 돋보이는 등 조선 후기 사천왕상 중 뛰어난 조형성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천왕상 앞에서 혼란한 정국을 안정시켜 달라고 빌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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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삼전패. /출처: 송광사 홈페이지


삼전패(三展牌)


완주 송광사는 호국사찰이기에 대웅전에 부처님과 함께 삼전패(三展牌)를 모시고 있다. 일반인의 이름이 쓰인 패는 위패(位牌)라 하고, 부처님 명호가 쓰여 있으면 불패(佛牌), 왕실의 패는 전패(展牌), 또는 원패(願牌)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전패는 임금,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조성된다. 임금의 전패는 황룡으로, 왕비의 전패는 봉황으로, 세자의 전패에는 용과 모란 등으로 장식하며, 절집의 불패(佛牌)는 연꽃으로 장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송광사 대웅전의 삼전패는 인조 때 조성되었고 정조 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인조와 왕비의 만수무강과 안녕, 병자호란 후 청나라로 끌려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무사 귀환을 비는 전패임을 알 수 있다. 왕의 패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왕비의 패에는 왕비전하수제년(王妃殿下壽齊年), 세자의 패에는 세자저하수천추(世子低下壽千秋)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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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 대웅전


대웅전


대웅전은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보는 전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밝힌 바 있다. 이 곳 대웅전은 1623년 완공 당시에는 2층이었는데 건물이 기울어 철종 8년(1857) 중수하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대웅전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천장에 있는 주악비천도이다. 주악비천도는 지금도 채색과 선이 완벽하게 살아 있고, 등장인물이 각각 다른 표정과 춤사위를 하고 있어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그림이 민화풍이다. 민화와 불교예술이 융합한 특별한 예술품이니 꼭 보아야 한다. 천정에 있는 그림은 대웅전 외벽과 천왕문 외벽에도 하나씩 모사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민화풍의 불교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송광사에서만 누리는 호사이다.


대웅전에는 대웅전, 유리광전, 보광명전, 무량수전 4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중 전면에 있는 대웅전 현판에는 ‘의창군서’라고 쓰여 있는데 의창군은 선조의 8번째 아들이며 광해군의 동생이다. 아마도 의창군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많은 활약을 한 모양이다. 인조 14년(1636)에 세운 ‘송광사 개창비’의 글도 의창군이 썼다. ‘송광사 개창비’를 지은 신익성은 선조의 외척으로 병자호란 때 전주·남원 지역의 의승군과 연합했던 사람이다. 대웅전에 모시고 있는 삼존불상의 개금불사에 소현세자가 시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맏아들로서 나중에 아버지에게 독살되었다는 설이 도는 비운의 왕세자다. 잠시 소현세자를 추모해 본다. 17세기 중창된 수많은 사찰 가운데 왕실과 불교계가 연합하여 절을 중창한 사례는 송광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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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형 범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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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형 범종루


범종루


송광사에서 꼭 보아야 하는것은 범종루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찰에 있는 유일한 십자형 누각이기 때문이다. 창덕궁 후원에 있는 부용정과 수원화성에 있는 방화수류정도 십자형 건물이지만 누각이 아닌 정자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보통은 기둥 위에 건축되어 사방이 트인 마루는 누각이고 기단 위에 세워진 마루나 방은 정자라고 보면 된다.


송광사 종루 1층은 자연석 초석 위에 그랭이질한 기둥 12개를 세웠다. '그랭이질'이란 받침돌의 모양에 맞추어 나무 기둥 아래쪽을 잘라내는 전통기법이다. 그랭이질한 석축과 그 자연스런 돌의 흐름에 맞춘 나무기둥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돌받침과 나무는 아무런 이음 장치가 없다. 그냥 돌의 모양에 맞게 나무를 깎아 올려놓은 것이다. 그대로 몇 백년, 아니 천 년을 간다.

종루 2층은 가운데 칸에 종을 두고 법고·목어·운판(雲板)이 각각 돌출된 부분에 걸려 있다. 범종, 법고, 목어, 운판(雲板)을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고 한다. 절에서 의식에 사용하는 네 가지 물건이다. 하나하나 살펴 보자.


범종은 온 우주 중생을 깨우쳐 제도하는 대자대비의 소리로, 특히 땅속 지하 중생들을 제도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종이 울릴때 그 은은한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종을 매다는 고리(용뉴, 龍鈕)에 용을 장식하는 것은 한·중·일이 공통된 형식이라고 한다. 학자들은 바다 용왕의 아홉 자식 가운데 ‘포뢰(浦牢)’라는 용이 겁이 많아 울기를 잘한다고 해서 종 고리에 쓰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래서 종을 매단 용의 모습을 한번 찾아 보시기를….


법고는 ‘법을 널리 알리는 북’이라는 의미로 북소리가 널러 퍼져 번뇌를 물리치고 모든 중생을 깨우친다. 그런데 법고를 만들 때 소 한 마리 가죽이 통째로 사용된다. 그래서 법고는 축생을 제도하는 서원이 담겨 있다.


목어는 무엇일까?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양이다. 배 부분을 비워 나무 막대기로 배의 양쪽 벽을 쳐서 소리를 낸다.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함이다. 운판(雲板)은 구름 모양의 판으로 주로 청동이나 철을 얇게 펴서 소리를 내는 도구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와 같은 동물을 구제하기 위해 친다. 그래서 불전 사물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 땅에 사는 사람과 축생, 그리고 하늘을 나는 용과 같이 온 천하의 만물을 깨우치는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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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로 지정된 나한전


정국은 불안정하고 경제는 어려워 소상공인은 IMF 때보다 더 힘들어 하고 있다. 이럴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여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멀지 않은 곳 전북으로 오시라. 그 중에서 겨울에는 완주의 송광사가 참 좋다. 눈 오는 날 송광사를 오면 역사 공부와 겨울의 낭만,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세월이 하 수상한 요즘 호국사찰인 송광사에서 국태민안과 가내 평화를 기원하며 겨울을 즐겨보기를 권한다. '순천의 송광사'에 가서 칼럼의 내용과 다르다고 말하지 않기. 이곳은 '전라북도 완주'에 있는 송광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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