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휴대전화 번호도 외우지 못할 만큼 기억력이 떨어진 것일까? 스마트폰이라는 디지털 세계로 들어오면서부터 벌어지는 숫자의 기억에 대한 괴리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비단 휴대폰 번호의 기억 감퇴현상이 먹물 번지듯 다른 숫자 기억에 까지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하여 불안감은 더 심해진다. 가끔은 주차정산하는데 차 번호 네 자리도 떠오르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있고, 심지어는 현관문 비밀번호를 잘못 눌러 삐삐삐 소리가 들리는 경우도 있다. "이게 뭐지 조기 치매 증상이 온 걸까?" 은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솔직히 자기 전화번호 말고 배우자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이나 사무실 전화번호 10개 정도라도 외워 말할 수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라고 하면, 아마 손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고백컨데 나는 지금 와이프와 아이들 휴대폰 전화번호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쇠약해져 가는 기억력의 개인적 문제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럼 사회적 문제일까? 집단 기억상실에 가까운 이런 현상은 사회 문화 문명적 현상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사실 원인은 하나다. 숫자를 안 써도 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요물은 철저히 생존본능에 따라 행동한다. 살아가는데 편한 쪽으로 계속 진화를 해나가고 적응을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없던 시절을 가만히 뒤돌아보라. 깨알같이 연락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가지고 다니긴 했어도 가족들의 전화번호나 회사 동료들의 전화번호쯤은 거뜬히 외워서 바로바로 전화를 걸었다. 외우지 않으면 오히려 불편했기에 그랬고, 자주 통화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번호가 외워진 것이다. 자주 사용했기에 자연스럽게 전화번호 숫자가 각인되었던 것이다. 반복이 가진 마력이다.
그랬던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전화번호의 숫자를 모두 지워버린 것은 바로 스마트폰 속의 저장장치 때문이다. 기억의 저장장소를 브레인에서 반도체 칩이라는 외장하드로 옮겨놓은 것이다.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속에 다 있는데 뭐 하러 외우겠나
스마트폰이 작동되지 않거나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경우 전개되는 상황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멘붕을 넘어 금단증상에 심신장애가 올 판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분신의 신분을 넘어 또 다른 자아의 모습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금융 정보에서부터 개인 신상 및 사진, 동영상까지 개개인의 모든 정보가 휴대폰 안에 다 담겨있다. 범행 용의자를 잡아서 일일이 "어제 뭐 했어?"라고 따지기 보다 휴대폰을 압류하여 데이터를 들춰보면, 시간대별로 어디로 움직였는지, 무엇을 샀는지, 무엇을 검색했는지, 누구랑 통화하고 문자를 교환했는지 등등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세상이다.
디지털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이 숫자이고 숫자가 기억이다. 인간의 기억은 화학적 반응이라 시간이 지나면 물 타듯 용해되어 버리지만 디지털 속에 저장된 기억은 지워지지가 않는다. 숫자의 힘이다.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숫자 공부에 다시 매진해야 이유다. 전화번호와 같은 숫자는 외장하드에 맡기고 브레인에서 작동하는 숫자 기능을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서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이다. 숫자를 잘 다룬다는 것은 계산을 잘하고 똑똑해 보이고자 하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삶을 사는 지혜의 차원을 높이고자 함이다. 숫자를 잘 기억한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는 유추(類推)를 잘할 수 있게 하는 단초의 기둥이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연도를 빼면 역사가 아닌 것과 같다. 연도의 숫자는 시간의 흐름을 멈춰, 정지화면처럼 당시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과 같은 것이다. 당시 사건들을 끄집어내는 내용의 발현은 시간의 숫자 뒤에 자연스럽게 유추되어 따라 나오는 현상일 뿐이다. 숫자에 민감하면 현상은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 디지털의 힘이다.
전화번호를 기억하던 내 머릿속의 공간에는 지금 어떤 정보가 대체하고 있을까?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변해있을 그 공간에 과연 긍정적이고 합리적이고 예쁜 기억창고로 쓰이고 있을까? 아니면 불안과 우울과 증오와 힐난의 어두운 감옥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을까? 분명 디지털 세상으로 바뀐 이후에 내가 한 공부와 행동으로 인한 결과물들이 그 공간을 채우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게을러지지 않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찾아 움직였던 모습 그대로의 반영이다. 외장 하드에 맡겨진 숫자보다 내 가슴에 새로 쓰는 숫자에 더 민감해볼 일이다. 우주나이 138억 년, 지구나이 46억 년, 인간세포 60조 개와 같은 장구한 숫자의 기억처럼 말이다.
[일상의 리흘라] 전화번호 기억상실, 개인적 문제일까 사회적 현상일까 < 일상의 리흘라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