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고영애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60곳을 프레임에 담아 소개한다. 뉴욕현대미술관부터 게티센터, 바이에러미술관, 인젤홈브로이히미술관 등 현대 건축의 정수를 보여주는, 12개국 27개 도시에서 찾은 미술관들을 생생한 사진과 맛깔스런 건축 이야기로 안내한다.
베를린 현대미술관 입구에 놓인 프리츠 발트하우스의 '표시된 공간-표시되지 않은 공간' (사진 고영애)
유대인박물관에서 나와 오른편으로 10여 분 정도 걸어가면 베를린 현대미술관이 나온다. 미술관 입구의 광장 바닥에는 노랑 바탕 위에 회색 알파벳을 새겨 길게 나열해놓은 작품이 깔려져 있었다. 이 알파벳 작품은 베를린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160명의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열거해놓은 것으로 ‘글래스 스토리지 마킹(Glass storage marking)’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었다.
광장의 알파벳 디자인은 ‘표시된 공간-표시되지 않은 공간(Marked Space-Unmarked Space)’으로 구획되는 디자인 프로젝트로, 독일 출신의 비주얼아티스트이며 조각가인 프리츠 발트하우스(Fritz Balthaus)의 작품이다. 노란색 4각 프레임 바탕에 새겨진 알파벳 디자인은 의미도 남달랐지만 입구에서부터 그래픽아트를 선보임으로 현대예술에서의 그래픽디자인의 중요성을 암암리에 시사해주었다. 그리고 그래픽아트가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절대 배제할 수 없는 예술 영역의 장으로 자리하는 좋은 예시였다.
베를린 현대미술관 앞에 놓인 마친스키 데닝호프의 '삼위일체' (사진 고영애)
미술관 입구에 놓인 스틸로 된 대형 조각은 마친스키 데닝호프(Matschinsky-Denninghoff)의 작품 <삼위일체(Trinity)>였다. 베를린 현대미술관은 본래 1975년 크로이츠베르크에 설립되었는데, 2004년 현재의 장소인 야곱스트라세로 이전하였다. 시각 예술을 비롯해 회화, 그래픽, 조각, 멀티미디어, 사진, 다다 베를린, 건축 프로젝트 등 유럽 전위작가들 위주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고 현대 작가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었다.
또한 이 미술관의 특징으로는 예술가들의 기록보관소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예술가와의 흥미로운 대화의 장을 열어 일반인들도 예술가의 삶에 깊숙이 동참하도록 유도하여 예술 영역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인 독특한 성격의 미술관이었다. 1만 5000여 점의 그래픽아트 컬렉션은 이 미술관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베를린 현대미술관 1층 전시장 입구에 매달린 작품 (사진 고영애)
베를린 현대미술관 1층과 2층 전시장 전경 (사진 고영애)
베를린 현대미술관 2층 전시장 (사진 고영애)
1층 전시실 정면에는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나뭇가지 작품이 있었다. 특별 전시 기획전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난해했다. 다른 전시실에서는 인도와 중국 작가의 영상을 비롯해 아시아 작가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2층 전시실에는 미술관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었고 그 외에 강당, 도서관, 아카이브 보관실 등이 있었다.
베를린 현대미술관은 2014년 7월에 일시적으로 폐쇄되었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이 기간에도 미술관의 임시 프로젝트나 강의, 워크숍 등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웹사이트에서 관련 정보를 정기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역시 정확하고 빈틈없는 독일다운 경영이었다. 리모델링의 총공사비로 600만 유로나 소요되었다 하니 재개관될 내부 전시장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몹시 궁금하였다. 드디어 베를린 현대미술관 개관 40주년을 맞아 2015년 봄에 재개관하였고, 첫 전시로 ‘베를린 1880~1890’을 기획하였다 한다. 2016년에는 다다 아프리카 전을 비롯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안드레아스 라이너 전시를 기획하며 아방가르드 미술관으로서의 임무를 공고히 하고 있다. 베를린 현대미술관이야말로 21세기 현대미술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그 예를 제시하는 최전방위 미술관임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으리라.
고 영 애
오랫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관을 촬영하고 글을 써온 고영애 작가는 서울여대 국문학과와 홍익대 대학원 사진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한국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초대 전시회를 열었고 호주 아트페어, 홍콩 아트페어, 한국화랑 아트페어 등에 초대받아 큰 호응을 얻었다. 한국미술관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실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잡지에 건축 여행기를 썼다.
이 연재물은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헤이북스) 중에서 <데일리아트> 창간을 기념하여 특별히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을 골라서 내용을 요약하여 소개한다. 그가 15년 넘도록 전 세계 각지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찍고 기록한 ‘현대미술관 건축 여행기’다.
고영애 글/사진,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헤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