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것은 망각되기 쉽다. 진이수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회화로 구현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SNS 와 '구글 어스(earth. google.com)'를 통해 이미지를 수집하는 방식은 상당히 흥미롭다. 그렇게 수집된 이미지는 유화 물감으로 화면에 옮겨진 후 붓 클리너를 적신 키친 타월로 두드려 닦아내는 방식으로 표현된다. 특히 레이어를 쌓고 닦아내는 과정의 반복은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닮았다. 단순 추상을 넘어 작가만의 방식으로 선택된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생시켰다. 그렇기에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들에게 생명성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우리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작가의 내포된 작품 세계는 훨씬 더 철학적이다. 작가의 작품은 시각적인 구현을 넘어 작가의 내면과 본질에 대해 탐구하게 한다. 이번 인터뷰는 작가의 생각과 철학에 대하여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작업실 전경
-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진이수입니다. 저는 소통, 공감, 공존이라는 이상적 목표를 가지고 세계를 바라봅니다. 이러한 세계가 가능하려면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내면 탐구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눈에 보이는 것이 본질을 가리는 역설적인 상황에 주목하며, 보이는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식을 탐구합니다. 이를 회화로 시각화하고, 내면적 움직임과 변화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미시세계 숲, 2023, oil on canvas, 162.2 x 130.3cm.
- 현재는 무슨 작업을 하고 있나?
저는 이 세상의 속도가 너무나도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AI의 발달로 인해서 세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속도에 맞추며 적응하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발전으로 인해 희미해져 가는 더욱 중요한 본질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요즘에는 보여지는 것이 전부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이러한 지점들을 매우 경계하고 거리를 둡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을 포함하여 시각적인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본인의 내면과 같은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하는 것을 추구해야 함을 말합니다.
저는 이 방식을 저의 손을 거친 시각적인 페인팅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SNS에 올라오는 미시 세계를 관찰하거나 구글 어스를 통해 흔하지 않은 장소를 발견해 그 색상과 형태를 기억에 저장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감각들을 사용하여 작업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현실에 있는 대상의 형태를 보고 그리는 것에서 벗어나 무의식,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곡선, 움직임들을 작업으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의 개인들이 어떠한 원인들과 과정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었는가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보이지 않지만 형성되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저의 작업 하나하나를 생명체로 바라보려 노력합니다. 인간이 각기 다른 고유성을 띄는 것처럼 작품마다 순간의 붓질과 과정을 중요시하고 그 움직임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빨리 흘러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적당히 거리를 두고 관찰하고, 바라보고, 사유하면서 각각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행위를 통해 균형을 맞추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감정의 형태 1, 2022, 종이에 유화, 30x40cm.
- <감정의 형태1> 이외에도 작가의 작품에서는 유화로 그렸음에도, 맑은 동양화나, 수채화가 연상되는 표현이 보인다. 이것이 붓 클리너로 적신 키친 타월로 두드려 닦아내는 과정에서 나타난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나?
붓 클리너로 적신 키친 타월로 두드리고 닦아내는 과정은 작업의 모호성과 겉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면의 불확실한 심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저는 작업 표현 방식을 여러 번 바꿔왔습니다. <감정의 형태1> 작업을 진행하던 당시에는 매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간의 정서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감각적으로 시각화하려 했습니다. 경계가 명확히 구분되거나 '빽붓'으로 문질러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유화 미디엄의 양을 늘려 묽은 점도로 표현한 것이 동양화나 수채화의 느낌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들여다봄1_미시세계, 2024, oil on canvas, 116.8x91cm.
- 캔버스에 유화가 일반적인데, 종이에 유화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기에는 하루에 한 작품씩 완성하자는 취지로 작업에 임하며, 부담감이 덜한 유화지를 선택했습니다. 더 자유롭게 손을 움직일 수 있는 작업 공간이 필요했는데, 유화지는 그러한 부담을 덜어줄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적 움직임을 표현하기에 알맞은 공간이라 생각했습니다.
light & darkness, 2024, oil on canvas, 60.6 x72.7cm.
- 이 밖에도 작가의 작업은 두터운 마티에르보다는 맑고 투명한 표현이 돋보이는 것 같다. 이러한 작업 방식에 대해 설명한다면?
저는 작업의 깊이와 두께감이 작품 표면 위로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화면 내부에 함축된 형태로 표현됩니다.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마치 유리 창문 밖의 풍경을 바라보듯 하나의 광택 있는 레이어 속에서 수많은 움직임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최근 페인팅은 작업 과정에서 경계를 모호하게 문지르고, 광택감 있는 미디엄을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작품을 맑고 투명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그리고 푸른 색감이 투명성을 더 돋보이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두께감 있는 마띠에르나 미디엄을 사용해 작업을 시도했지만, 제가 의도하는 바와 맞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표면 내부에 깊이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찾아냈을 때 비로소 작업 방향이 명확해졌고, 마치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방법이 저에게 적합하다고 느꼈습니다.
작업의 매끄러운 표면은 우리가 매일 접하는 핸드폰 화면의 액정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핸드폰 속 RGB 화면에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살아 숨 쉬듯, 제 작업 역시 작은 움직임들이 모여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는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살아 있음을 느끼는 작은 집합체와도 닮아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표면의 깊이에 대한 고민이 작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바운더리 세라믹 전시 전경
푸른사랑니, 2023, Oil on canvas,178.3x130.3cm.
- <바운더리 세라믹>은 단순 평면 회화 이외의 요소가 보인다. 작업물의 구성, 배치와 공간을 구획하는 듯한 하얀 물체는 무엇을 의미하나?
'바운더리 세라믹’은 손으로 움켜쥐어 만든 형태의 세라믹 조각들로, 전시 공간 안에서 가변적인 경계를 형성하도록 설치되었습니다. 저는 관람객들이 단순히 작업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닥에 놓인 ‘바운더리 세라믹’을 의식하며 가변적인 경계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나가는 과정을 통해 전시를 관람하시길 바랐습니다.
당시 저는 ‘관계’라는 바운더리의 존재와 그 유동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관계든 영원하지 않은 것처럼, 관람객들이 이 경계선을 넘는 행위를 통해 관계의 가변성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시길 바랐습니다. 특히 전시 장소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공간이어서 이러한 설치가 가능했습니다. 신발을 벗는 행위는 관람객들에게 편안함과 사적 공간이라는 인식을 주었고, 이러한 분위기가 전시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2021 국민대학교 회화 학사 졸업
2024 동대학원 석사 수료
개인전
2023 < 바운더리 >, 유영공간, 서울
2022 < INSIDE-OUT >, 드로잉룸2.5, 서울
단체전
2024 < 1초의 이름과 영원의 시_도도그랜트 공모 >, 예술공간 의식주, 서울
2023 < A Christmas Gathering >, 뮤지엄 웨이브, 서울
2022 < 꼬물꼬물 >, 폴스타아트갤러리, 서울
인스타 그램
@genie_.su
-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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