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양호의 현대미술
윤양호의 현대미술-Monochrome
청색의 아름다움에 빠진 클라인은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공허함, 깊은 공허함 속에서 푸른색의 깊이를 배우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청색을 공허함의 색으로 설정하여 모든 사물을 청색으로 색칠한다. 클라인에게 청색은 인간과 우주의 만남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행하는 동양의 수행자들을 보면서 그는 스스로 수행을 길을 가고자 하였다. 그에게 예술 행위는 수행의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삶의 과정이 공(空)하다는 것을 알아가는 클라인은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그는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제 그가 공허함을 표현하기 위하여 스스로 발명한 그의 청색(IKB, International Klein Blue)의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클라인은 대상은 경제, 문화, 철학적 관계성이 없는 경우에도 생명력과 존재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여성의 인체를 붓처럼 도구화하여 작품을 제작하는가 하면, 낡고 쓸모없는 것들에 청색을 칠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에게 청색은 삶의 존귀한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원동력이라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는 어린 시절 차별과 비난을 경험하였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이란인 어머니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에 따돌림과 외로움을 경험하며 불안한 생활 하였다. 그가 18세 되던 해에 일본인이 운영하는 유도장에서 유도를 배우며 그의 삶이 변화한다. 이후 그는 유도에 많은 매력을 느끼며 공인 4단에 오르게 되는데, 일본을 여행하며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며 인식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청색에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클라인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갈등에서 벗어나 공정하고 평등한 삶을 추구하였다. 그가 청색에 많은 관심과 작품을 제작하는 동기가 이러한 그의 삶의 과정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청색을 칠한 대상은 그 이전에 그것이 어떠한 용도이거나 가치를 가졌다고 하여도 청색으로 인하여 공정하고 스스로 존재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하였다.
모노크롬 회화를 통하여 보여주는 그의 청색작품들은 미국의 색면추상이 추구하는 가치들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클라인이 보여주는 청색의 작품들은 정신성, 공허, 적막, 평화로움, 깨달음 등 인식의 깊이를 상징하고 있다.
공(空)은 공이 아니며, 공이 아닌 것도 아니다. 즉, 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여 공허하다, 비어있다, 없다 등 공에 대한 의견들이 많이 있는데 수행자 관점에서 보면 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어떠한 상태를 공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말로 할 뿐 공이라는 것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던 클라인은 모노크롬 회화를 생각한 것이다. 화면에 청색을 가득 칠했을 때 청색은 바탕색이기도 하고 작품의 완성된 색이기도 하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작품 완성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고 또는 미완성되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클라인은 청색을 통하여 깊은 내면에 존재하는 본질에 가까이 가고자 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정신성의 깊이가 어느 정도 인지는 어둔한 필자는 알 수가 없으나 그의 청색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은 깊은 감동을 받는다.
필자가 독일 유학 시절 파리의 퐁피듀미술관에 있는 클라인의 청색작품을 보고 받은 감동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IKB라 불리는 클라인의 청색은 빛에 따라서 다양하게 느껴지는 특성이 있다. 태양이 가득한 햇살을 받으면 그의 청색은 우주의 허공처럼 맑고 넓어 보인다. 실내에 투과되는 빛은 맑고 깊은 보습이다. 자연 빛이 차단되고 인공 빛이 있는 공간에서 청색은 진하고 어두워 보인다.
또 한 작품을 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서도 클라인의 작품은 다르게 느껴진다. 자신의 상태가 고요하고 평온할 때 클라인의 청색은 고요하고 평온하다. 자신이 불안하고 우울할 때 클라인의 청색은 위로와 안정을 가져다준다.
클라인의 말처럼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을 때 청색은 그 가치가 더욱 드러나는 것 같다. 이 순간 자신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클라인의 청색의 작품을 보면서 느껴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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