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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상 너머 4인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풍경화

by 데일리아트

리만머핀 서울,《숭고한 시뮬라크라》전 개최, 3월 15일까지


리만머핀 서울은 3월 15일까지 앤디 세인트 루이스 기획의 《숭고한 시뮬라크라》를 개최한다. 김윤신, 김창억, 홍순명, 스콧 칸 4인의 풍경화 전시다.


'시뮬라크라'는 철힉적 용어로 '원본의 상실'을 의미한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원형이라면 '복제물'은 현실이고, '시뮬라크라'는 복제물을 다시 복제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어려운 주제가 네 작가의 개성적인 작품으로 재해석되어 한남동 소재 갤러리 리만 머핀에 걸렸다. 4명의 작가들의 풍경화는 현실의 복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의 풍경화와 상이한 미학적 작품, 주관적 경험의 양상, 즉 피할 수 없는 '숭고'가 시뮬라크라한 작품속에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60여 년 작품 활동을 이어온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b.1935)은 오랜 기간 자연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아 작업을 지속해 왔다. 1960년대 프랑스에 유학하고 1984년 아르헨티나 이주 후 멕시코와 브라질 등지에서도 활동했다.


작가는 나이프를 이용해 채색한 화면의 페인트를 긁어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큰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분할됨에 따라 기하학적 공간을 형성한다.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에서 자생하는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돌과 나무, 그리고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나타난 화려한 무늬와 색조에 매료되어 작가의 조각과 회화는 줄곧 자연에 대한 인상을 추상적으로 다루었다.


단단한 목재 덩어리로부터 형태를 취하기 위해 사용한 전기톱과 수공구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회화 작업을 할 때는 캔버스에 2차원 이상으로 형상화 하려는 고집이 보인다. 그래서 그의 풍경화는 모양을 표현하는 물감의 질성을 가로지른 활력으로 가득 차 있다. 회화 속 우주적 기운을 다원적으로 해석하여 이미지에 대한 기존 위계질서를 무력화하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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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신, Fragments of Memories 2020-4, 2020, Acrylic and oil on canvas, 60 x 70 cm


김창억(1920-1997)은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로, 전후 한국에서 새로운 표현 양식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는 장욱진, 변영원과 함께 일본 동경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 미술대학)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에서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경기도여자고등학교(1954-1963)와 홍익대학교(1966-1987)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김창억의 작품 세계는 신인상주의와 입체파, 그리고 바실리 칸딘스키의 작품에서 깊은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의 발전 양상과 발맞추어 여러 창작 단계에 걸쳐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초기 30 여 년간 몰두한 기하학적, 상징적 추상부터 말년에 두드러진 직설적 구상까지 김창억의 예술적 여정이었고 그 속에서 풍경화는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1970년 후반부터 1980년대는 자연환경에 대한 표현이 가장 역동적으로 펼쳐졌다. 작품이 드러내는 절제된 주체성은 그림 같은 산, 숲, 개울을 현실적으로 초월한 작품들이다. 김창억의 추상화된 풍경은 '실제' 풍경을 복제하려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유사한 감각 반응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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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억, Abstract Scenery No. 2, 1989, Oil on canvas, 23 5/8 x 28 9/16 inches


홍순명(b.1959)은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서 판화를 공부하고 1998년까지 파리에서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작가이다. 그는 특정 기법이나 재료에 얽매이지 않는다. 회화를 매개로 규범에 도전하면서 동시대 문제, 특히 권력 구조와 미디어 통제에 대해 일관되게 성찰한다. 홍순명은 보도사진을 통해 주변의 풍경에 집중해 왔다. 작가의 부분적 묘사는 언제나 보이지만 동시에 영구히 간과되는 이미지를 드러낸다.


최근에는 회화적 면모가 두드러지는 풍경화를 작품화 하였다. <낯설게 마주한 익숙한 풍경>, <저기, 일상>에서는 촬영한 사진을 활용하여 자신의 기억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홍순명은 이미지가 아무리 외형상 정당해 보여도 그것은 자연 그대로는 아니다. 그래서 작품은 '복제'라는 내재적 현실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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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명, Over there, Days-241261, 2024, Oil on canvas, 162x130cm


스콧 칸(b.1946)은 꿈같은 풍경화를 정확한 세부 묘사로 그려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억, 상상, 개인적 성찰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도상으로 이루어진 초현실적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칸의 세밀하고 정교한 묘사는 자연적 요소와 건축적 요소를 융합하여 시간, 고독, 변화를 보여준다. 1970년대 말부터는 지속적으로 언캐니한 형상화, 즉 원근법을 미묘하게 조작하고 안료를 정밀하게 사용하여 그린 모호한 풍경화를 전개했다. 이러한 접근은 초점의 무한한 깊이를 발생시켜 인간 시지각에 내재된 자연적 왜곡을 거스르고, 묘사의 리얼리즘을 훼손한다.


부피감 있는 나뭇잎이 만든 얼룩덜룩한 그림자, 미지의 목적지로 향하는 두드러진 길과 문, 기이한 분위기와 환경, 스케일의 비정상적 변주 등으로부터 스콧 칸의 대표적인 미감인 섬세함과 독특한 구성 논리를 엿볼 수 있다. 하이퍼리얼하면서 현실에 매여 있지 않은 풍경은 객관적 현실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를 대체할 수는 없는 잠재의식의 영역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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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칸, Kipling Gardens, 2000,Oil on linen,81.3x91.4cm


갤러리 리만머핀은 개관 이래 현대미술 갤러리로서 꾸준히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로 지리적 확장을 도모해 왔다. 지난 30여 년 동안 리만머핀은 국제적인 작가들을 새로운 지역에 소개하고 지속적인 큐레토리얼 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예술적 목소리를 옹호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갤러리의 프로그램은 정체성을 둘러싼 여러 담론에 도전하고 새로운 세계 문화를 창출하는 예술가들을 당당히 선보인다. 현재 갤러리는 뉴욕, 서울, 런던에 상설 전시 공간을 두고 있으며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팜비치에도 팀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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