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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시대 읽기 ③] 거장 유현목의 리얼리즘 영화

by 데일리아트

우리나라 영화는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수많은 영화들이 해외에서 큰 상을 휩쓸고 세계인들이 우리나라의 영화에 주목하자,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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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적 구토` 상영을 알리는 매일신보 광고(1919년 10월 28일자)


https://youtu.be/ExhKGhku3Dw

Lumiere Brothers 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 열차의 도착,1895 출처: 유튜브 정민


'영화의 날'로 지정된 10월 27일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극장 단성사에서 최초로 상영한 1919년 10월 27일을 기념한 날이다. 이 날을 어림 잡아도 우리 영화의 역사가 겨우 백 년이 지났을 뿐인데... 하긴 영화라는 예술 장르가 인류에게 선을 뵌 시기를 생각하면 늦은 것도 아니다.


영화의 출발은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1895년)이다. 이 영화가 형제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와 '루이 장 뤼미에르'가 만든 세계 최초의 영화이다. 형제는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보여주었다. 아무런 스토리도 없이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보여주는 50초의 짧은 단편이었다. 그후 24년 후에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단성사에서 상영되었으니, 우리 영화의 역사도 늦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이때는 일제강점기가 아닌가. 이렇게 우리나라의 영화사는 시대의 굴곡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 왔다.


오래된 영화들이 다행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복원하여 많이 남아있다. 그 영화를 보면 시대가 보인다. 아니 본다는 것 보다는 공부하듯이 읽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는 그 시대의 풍경은 물론 당대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이 남아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영화감상의 의미보다는 시대를 읽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지 모른다. 그 어떤 사람중 하나가 필자이다.


영화 중 복원된 영화를 중심으로 하나하나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복원되지 않은 것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어릴적 소풍을 가면 햇볕을 피하느라 간혹 밀짚모자를 산 기억이 있다. 큰 리어카에 산더미 처럼 쌓 놓고 파는 밀짚모자의 테두리에는 철지난 영화의 필름들이 장식처럼 둘려 있었다. 지금 생각하니 오래된 영화 필름들을 그렇게 버렸고, 그것을 주워다가 상인들이 밀짚모자 테두리로 두른 것이다. 아마도 그 속에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도 있었을 것이고, <홍도야 우지마라> 등 영화적 재미와 시대를 농축하는 작품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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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고... 이 칼럼에서는 처음에 어떤 작품을 소개하는 것이 좋을까? 전후 우리나라 시대의 상황을 가장 잘 표현한, 1961년에 개봉한 영화 《오발탄(誤發彈)》을 우선 골랐다. 2024년이 오발탄을 만든 유현목 감독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고, 오발탄은 매년 '우리나라 영화 100선'을 선정할 때 5위 안에 드는 작품이다. 2024년에도 오발탄이 4위에 올랐다.


영화 오발탄을 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말한다. 어떻게 그 시절에 이런 아름다운 영상미학을 표현하는 작품이 나올 수 있었느냐고. 오발탄은 1959년 소설가 이범선(李範宣, 1920~1981)이 『현대문학』에 소개한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이다. 여기서 오발탄(誤發彈)은 ‘잘못 발사된 탄환’이라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목적지를 잃은 탄환’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이 목적지를 잃은 탄환, 주인공 송철호로 대표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고향을 두고 남하한 실향민들의 이야기이다. 아니 그들을 포함한 당대의 이야기이다. 목적지를 잃은 듯이 부유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다. 아니 우리나라 인구중 5분의 1이 죽거나 다친 6.25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안 된 시절인데, 맨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겠는가.


사람은 넘쳐나고 일자리는 없고 전쟁으로 사람들의 마음은 흉팍해 지고, 이들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 대사는 주인공 송철호의 여동생 명숙의 말 속에서 나온다. “오빠 어떻게 하면 미칠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희생되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미치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시대. 지금의 풍요로움과 비교해보면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우리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그런 시대를 그렇게 살아왔다. 죽지 못해, 미치지 못해 살아왔다.


<영화 줄거리>


철호는 어머니와 남한에서 유명 여대 음대 출신의 아내와 남동생 영호, 여동생 명숙 그리고 어린 딸을 거느리는 실향민 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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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철호의 모친을 연기한 배우는 노재신으로 엄앵란의 모친이라고 한다.


이들은 북한에서는 떵떵거리며 살다가, 공산주의 세상이 오자 인민의 적으로 매도되어 남하했다. 그런데 오히려 이곳에서의 삶이 더 팍팍하다. 전쟁 중 실성한 어머니는 연신 '가자!'라는 말을 연발한다. 어디로 가자는 것일까? '북으로 가자'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고향인 북으로 가자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이 대사 때문에 영화는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소설이 쓰여진 1959년이나 영화가 만들어진 1961, 우리나라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960년에 4.19 혁명이 일어났고, 1961년은 5.16 박정희 구테타가 일어난 해이다. 이 시기에는 최인훈의 문제작 <광장> 발표 되기도 했다. 어수선한 시대에 이념의 공간이 약간 느슨해진 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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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철호는 기업의 '계리사'이다. 지금은 계리사라는 직업이 보험상품을 설계하는 것을 말하지만, 1966년 8월 31일 전까지 계리사는 지금의 공인회계사와 같은 직업군이다. 회사에서 받는 월급은 쥐꼬리만도 못하다. 동생 영호의 말에 의하면 월급으로 출퇴근하는 전차 차비도 감당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철호는 이가 아파도 치과에 갈 돈이 없다. 사랑니가 썩어 뽑아야 하지만 돈이 없어서 아픈 이를 그냥 방치한다. 직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갈 때 보리차로 굶주린 배를 채운다.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아내가 있다. 만삭의 아내, 표정이 늘 어둡다. 그러나 그녀는 왕년에 명문대 음악과를 나온 인텔리 여성이었지만 철호와 결혼 후 삶이 바뀌었다. 아무런 꿈도 욕망도 없는 심드렁한 모습이다. 시대에 대한 침묵이 그녀의 역할인 듯하다. 영화 전반에서 흐르는 음울한 분위기는 철호의 어머니가 쉬도 때도 없이 소리지르는 단발마의 외침 ‘가자!’라는 외침과 철호 아내에게서 흐르는 어두운 표정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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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와 그의 애인 설희(자료 영상자료원)


동생 영호(최무룡 분)는 철호(김진규 분)와는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 김진규로 분한 철호의 잘 정돈된 이미와 다르게 영호는 다소 반항적으로 보인다. 영화<에덴의 동쪽>에서 나오는 한국판 제임스 딘이다. 자료를 보니 영화<에덴의 동쪽>은 1955년에 상영되었으니 유현목 감독이 참고했을 수도 있었겠다. 영호를 통해, 젊을 때 배우 최무룡의 모습을 보는 것은 덤으로 따라오는 재미이다. 영호의 캐릭터는 최무룡의 아들 최민수가 더 연상되기도 한다.


영호는 전쟁에 끌려가서 허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러나 나라는 이들에게 속수무책이다. 당시를 지금의 복지제도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영호는 제대한 지 2년이 되었지만 별다르게 하는 일이 없다. 다른 전우들도 마찬가지, 영호의 주변에는 늘 군대시절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들이 모여 있다. 전쟁으로 팔과 다리를 잃은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들이 기댈 공간은 전혀 없다. 모여서 함께 술 마시고 시대를 한탄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러나 영호는 형과 같은 답답한 생활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형이 국산 싸구려 담배인 '파랑새'에 불을 붙일 때, 영호는 양담배를 피운다. 출퇴근 차비도 안되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형과는 다른 삶을 꿈꾸지만 사회는 이들에게 아무런 대책이 없다. 영호가 꿈 꾸고 나갈 출구가 없는게 문제이다.


마침내 영호는 애인 설희에게서 받은 권총으로 은행을 털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영화속의 은행은 상업은행(현 우리은행) 남대문 지점이다. 아마도 명동에 있는 우리은행일 것이다. 그건 그리 중요하지는 않고 아무튼 영호는 경찰에게 잡힌다. 우리나라는 과거에도 치안은 확실한 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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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군인이된 영호의 전우는 명숙과 약혼한 사이, 명숙은 결국 거리의 여자로 변한다.


영호의 여동생 명숙은 영호의 군대시절의 전우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지만 상이군인이 된 애인은 명숙을 피해 잠적하는 탓에 명숙은 거리의 여자로 전락한다. 그 시절은 미군들이 서울에 넘쳐나는 시대였다. 그녀는 결국 명숙은 양공주가 되어 경찰 단속에 걸린다.


경찰서에서 오빠에게 인계되어 걸어가는 두 사람의 사이에는 아무런 대화가 없다. 스산한 서울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저만치 떨어져 걸어가는 두 남매, 오빠는 정말 동생 명숙을 용서했을까. 시대가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의 모습은 밝다. 어린 철호의 딸은 삼촌 영호가 사준 운동화를 애지중지하고 삼촌 영호가 나이롱 치마를 사주겠다는 약속과 화신 백화점을 구경시켜 준다는 말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2편에서 계속 됩니다)

https://youtu.be/z8MP4DHecuw

[무료영화]오발탄/ Aimless Bullet/ 1961, 출처; 유튜브 무영보라디오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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