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로 포스터
6.25전쟁이 끝나고 14년이 흘러 1967년 영화<귀로>가 상영되었다. 이 때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967년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1962년~1966년)이 마무리되고, 1964년 월남전파병, 1963년 독일 광부파견, 1967년 독일 간호사 파견 등 경제, 정치적으로는 요동치던 시기이다. 1967년은 5월 제 6대 대통령선거, 6월 연이어 제7대 국회의원선거가 치뤄진 해이다. 이런 역사가 격변하는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영화사에서는 뚜렸하게 족적을 남긴 영화가 많이도 탄생했다. 그 중심에는 문학적 완성도가 뛰어난 문예영화가 자리했다.
1966년 문화공보부가 수입과 흥행이 보증된 외화 수입쿼터를 정하는 과정에서 반공영화, 계몽영화, 문예영화를 연동시켰다. 즉 이런 영화를 많이 만드는 제작사에게 외국 영화 수입물량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흥행을 담보할 수 있는 외화를 들여놓기 위해서라도, 어짜피 흥행과 관계없는 반공영화, 게몽영화, 문예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기에 감독들은 흥행의 부담을 덜고 예술성 있는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럼 '문예영화'는 어떤 영화를 말하는가. 문예영화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더 나아가서는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예술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 감독들이 많이도 뛰어들었다. 오영수의 소설<갯마을>을 영화로 만들어 흥행시킨 김수용과 이범선 소설 <오발탄>을 영화로 만든 유현목, 그리고 <귀로>,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연출한 이만희 감독 등이다. 이 시기가 우리나라 영화의 황금기라 부를만하다.
오늘은 이 중에서 지금도 이만희의 여성심리의 묘사가 두드러진 영화 <귀로>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화의 줄거리
아내 지연(문정숙 분) 과 남편 최동우(김진규 분)
영화는 인천의 한 가정집에서 시작한다. 잘 정돈된 가정에 큰 개가 가정을 지킨다. 그 개를 유난히 좋아하는 여인 지연(문정숙)은 사랑하는 남편(최동우)과 함께 살아간다. 2층에 기거하는 남편은 6.25 전쟁으로 부상을 당한 뒤, 하반신 마비로 인해 성불구가 되었다. 남편 최동우로 분한 배우는 김진규이다.
남편은 제대군인으로 자부심을 느껴 군복을 입고 군가에 맞춰 방안에서 엄숙한 의식을 치른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전쟁이지만 그는 그 전쟁에서의 기억을 버리지 못한다. 잊을 수 없는 찐 기억은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모양이다.
매일 하반신이 불구인 남편에게 약사발을 주는 아내
매일 아침 2층 방의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위해 약사발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는 아내(문정숙 분)의 모습. 1층 문정숙이 기거하는 곳과 2층 남편이 기거하는 곳을 연결해주는 계단이 가파르다. 아내와 남편의 심리묘사는 분리된 계단이나 사선의 구도 등으로 표현된다. 아내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남편은 14년 동안이나 남편 구실을 못했다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다. 미안해하는 김진규에게, 아내 문정숙은 결혼은 자신의 책임하에 선택한 것이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이런 말은 남편을 더욱 절망스럽게 할 뿐이다. 남편의 유일한 낙은 자신이 쓴 소설이 활자화 되어 신문에 연재되는 일이다.
아내의 유일한 낙, 지친 삶의 탈출구는 몸이 불편한 남편 대신 신문사에 소설 원고를 전해주는 일이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의 내용이 자신 부부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아내 지연은 인천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신문사로 향한다. 소설 원고를 받아든 신문사 데스크는 소설이 너무 판에 박혀 읽는 사람이 없다고 내용을 고치라고 한다.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이 조선시대의 열녀와 같다는 것인데, '너무 시대감각과 맞지 않다. 누가 성불구의 남편과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지낼 수 있는가? 그러면서 이런 여성의 희생이 진실한 사랑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반문한다.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화가 난 지연은 자신도 모르게 가방을 놓고 신문사를 뛰쳐 나온다. 신문사 신입사원 강기자는 이 모습을 지켜보다가 가방을 전해주러 뛰쳐나가 가방을 전달하며 아슬아슬한 사랑게임이 시작된다.
어느날 기차 시간을 놓친 지연은 강기자와 데이트를 하게 되고, 우연히 이 광경을 본 여동생(전계현 분)으로부터 남편은 전해 듣지만, 아내와 헤어질 용기가 없다.
다만 자신이 집필하는 소설 속에서 여주인공(아내 이야기)의 행동을 수정한다. 부부의 거리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상황 속에서 강기자는 그녀에게 남편과 헤어질 것을 요구한다.
동생의 이혼 권유에 남편의 대답이 애처롭다. '이혼한다고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용기가 없다. 난 이제 나를 위해서도, 그 여자를 위해서도 아무것도 못한다'"는 김진규의 절규가 화면을 흔든다. 시누이는 지연에게도 똑 같이 이혼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연의 대답도 남편의 대답과 같다. "난 잘 알아요. 어떤 남자를 사랑할 수도 없고 오빠와 헤어질 수도 없어요.“ 영화의 결말은 사실 어떤 결단도 도출하지 못한다.
이만희 감독
이만희 감독과 <귀로>
1931년 생 이만희 감독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극배우, 단역배우로 영화판을 기웃거리다가 1961년 영화 <주마등>으로 영화감독에 데뷔한다. 대표작으로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년),<만추>(1966년),<귀로>(1967년)등이다. 1975년 <삼포가는 길>의 편집을 마무리하던 중 간암으로 44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1955년부터 1975년까지 감독을 하면서 49편의 영화를 찍었다. 그가 영화에서 구현하고자 한 것은 휴머니즘이었다. 대사를 통해 스토리 전개가 영화의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영상의 미학으로 리얼리즘을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수많은 작품 속에서 그는 전쟁의 허망함과 죽지 않고 살아가는 당대인의 모습을 절절하게도 표현했다. 영화 <귀로>는 전쟁 이후 14년이나 지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사회에 유령처럼 떠도는 전쟁의 아픔과 그 속에서 번민하는 인간 군상의 심리를 표현한 작품이다.
영화로 시대 읽기
서소문 건널목의 모습,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서소문 건널목의 모습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나오는 곳이 서소문 건널목이다. 서울에서 기차가 통과할 때 차단기가 내려오는 곳은 용산의 '백빈 건널목'이라 부르는 '땡땡거리'와 이곳이 가장 유명하다.
이 철길은 서울을 출발해서 신의주로 가는 경의선이다. 지금은 경의선과 중앙선을 연결한 경의중앙선이라고 하여 종착역이 도라산역이다. 1906년 개통한 경의선은 원래 용산에서 출발해서 수색을 지나 북한의 신의주가 종착역이다. 그런데 용산역이 외곽에 있다보니 서울에 사는 사대문 안 사람들을 위해서 1918년부터 1920년까지 남대문역(경성역)부터 수색간에 선로공사와 직선화 공사를 해서 서소문을 지나는 이 철로가 부설되었다.
지금은 없어진 경의선 서소문 정거장, 왼쪽 어느곳에 정거장이 있었다.
경성역을 출발해서 서소문 건널목 앞의 서소문역, 아현리역, 신촌역에 이르러 수색까지 간 것이다. 서소문역이 폐쇄되었지만 역이 있을 당시에, 이곳에서 기차를 타고 신촌역에 내려 연희전문학교를 등교한 사람이 있다. 우리가 너무도 사랑하는 윤동주 시인이다. 지금 서울 상수도 사업본부 자리에 있던 서대문 구청 옆에서 방을 얻어 하숙을 하고 경의선 열차를 타고 등교했다. 이곳에서 하숙할 당시에 쓴 시가 윤동주의 그 유명한 <자화상>이다.
건널목에서 기차가 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연(문정숙)
지금의 서소문 건널목
영화에서 이곳 서소문 건널목은 문정숙의 불안한 마음을 비추어 주는 거울과도 같다. 문정숙은 이 건널목을 빠르게 지나가려고 하지만 번번히 차단기가 내려오고, 땡땡거리며 지나가는 기차에 우선권을 내 주어야 했다. 아현동에서 서소문 쪽으로 연결된 고가도로도 그 때와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주변의 풍경도 낙후된 그대로이다. 그러나 서소문 일대의 도로는 1960년대 중반에 많이도 바뀌었다. 1966년 서소문 고가가 들어섰다. 왜 1966년에 이런 도로확장과 고가도로가 건설되었을까?
그 해에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방한했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부랴부랴 고가도 놓고 육교도 가설했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각국의 정상들은 마포에서 아현고가를 지나 서소문 고가를 통과해서 환영식을 하는 시청앞까지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었다.
대한일보빌딩 1층에 전시된 대한일보 시절의 신문
영화속에서도 이 계단이 등장한다
시청앞 육교 대한일보
신문사는 서울역 주변에 포진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인쇄된 신문을 서울역을 통해 빠르게 지방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한양대학교를 설립한 김연준이 1960년 10월 19일 평화신문을 인수하여 『대한일보』라는 제호로 신문을 발행했다. 영화에 나오는 곳이 아직도 존재할까? 시청역 8번 출구를 나오면 중구 태평로 2가 340번지 현재의 대한일보빌딩을 마주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컷이 지금과 같다. 건물의 내력을 살펴보니 1966년 준공되었고, 2002년 리노베이션되었다. 대한일보는 1973년 5월 2일 제 8622호를 끝으로 신문 발행을 중지했다. 아직도 이 건물 로비에 가면 신문에 대한 기념 공간이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서소문 육교
지금은 벗어진 서소문 육교, 멀리 시청이 보인다.
서소문 육교에서 지연
영화에서 신문사만큼이나 자주 등장하는 곳이 신문사 사옥 옆에 있던 육교이다. 당시의 서울시장은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이름높았던 김현옥이다. 부산시장으로 근무하다가 박정희에게 전격 발탁되어 서울 시장으로 취임한 김현옥은 취임과 동시에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일에 미친 사람이다. 1966년에는 도로 확장에 미치고, 67년에는 지금은 여의도를 만들기 위한 윤중제 공사에 미치고, 68년에는 세운상가를 짓는데 미치고, 69년에는 시민아파트를 짓는데 미쳤다. 서소문 육교는 영화에서는 가방을 놓고 가는 지연에게 신입기자가 급하게 가방을 전해주는 장면의 배경이다.
1966년 도로 확장에 따라 서울에는 6개의 육교가 설치되었다. 서소문 육교, 신세계 백화점 앞, 퇴계로 일신 국민학교 앞 , 시경 앞, 대한극장 앞, 아현시장 앞 등인데 거의 모든 육교가 사라졌다.
*영화는 유튜브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성인인증하기가 불편하시면 메일로 연락해 주세요. 영화 파일 보내드리겠습니다.(dart2424@naver.com)
[영화로 시대 읽기 ⑤] 이만희 감독의 '귀로', 서소문 일대 60년대 풍경 < 영화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