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자 왼쪽이 주원, 오른쪽이 형주
"대한독립만세!!"
"만세!!"
탑골공원에 오자, 1919년 3월 1일 전국 방방곡곡 메아리치던 그 날의 뜨거운 함성이 지축을 울리는 것 같았다. 나라 잃은 망국의 백성들이 원했던 것은 오로지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이었다. 어린 손자들의 손에 태극기를 쥐어주자 손자들도 자신들이 마치 만세 현장에 있는 듯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아이들의 작은 만세 소리에도 나의 심장에는 그날의 함성이 울린다. 바로 이 장소가 대한민국 독립의 발상지였기 때문이다.
손자들은 공원 내의 3.1운동 여러 유적지를 보고 다니며 비둘기 무리와 뛰어다닌다. 그날의 함성이 없었다면 손자들에게 이런 자유를 줄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100여 년전 만세를 목청껏 외쳤던 선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대한제국은 고종이 황제로 등극하면서 세운 우리나라 마지막 나라이다. 고종은 1897년 10월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뒤이어 여러가지의 일들을 단행했다. 경운궁(덕수궁) 앞 방사형 도로, 종로 운종가 개선, 전차 부설, 경인선 철도 가설 등등. 그러면서 서양의 산업혁명 이후에 도시 이곳저곳에 세운 근대식 공원도 이곳에 조성했다. 지금은 <탑골공원>이라 부르는 '파고다 공원'이다. 공원안에는 팔각정이 있다. 팔각정은 장대석 기단위에 둥근 기둥을 세우고 기둥머리 부분에 물익공을 짠 후 기와 지붕을 덮은 모습이다.
대한제국 군악대가 탑골공원팔각정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대한제국의 국가도 만들고, 서양식 군악대를 모방해서 대한제국 군악대도 창설하여 이곳에서 연주 하게 했다. 대한제국을 선포한 지 5년이 지난 1901년(광무 5년) 2월 벽안의 서양인인 악기와 악보 등을 가지고 한국에 왔다. 그해 3월 군악대원 50명을 선발해 최초의 군악대가 창설된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군말없이 수행한 사람이 독일인 프란츠 에케르트(Franz Eckert·1852~1916)다. 그는 악보 읽기는 물론 처음 보는 악기에 신기해 하는 단원들에게 혹독하게 연습을 시켜, 그럴싸한 군악대를 만들어 나갔다. 엄한 지도자였으나 마음은 따듯해서 때로는 아버지 처럼 단원들을 보살폈다. 에케르트의 철저한 가르침으로 나중에는 서양 오페라<바그너의 서곡>을 연주할 수준이었다고 전해 진다. 1905년 독일 황태자가 독일 해군군악대와 내한, 우리 군악대와의 이곳에서 교환 연주 했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군악대의 연주가 더 훌륭했다고 하니 입을 다물 수가 없다.
그러나 나라를 잃은 후 군악대 멤버들은 흩어져 여러 극장을 돌며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만세 소리와 더불어 그들의 찬란한 연주가 들리는 듯하다.
할아버지 그림
나라를 빼앗기고 9년이 흘러 기미년 (1919년)이 되었다. 대한제국을 만든 고종이 승하한 후 고종 인산일에 맞춰 수많은 사람들이 경성으로 몰렸다. 그리고 이곳 탑골공원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곳은 독립만세 운동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대한제국 군인들이 국가를 연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던 팔각정은 기미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장소가 되었다. 원래는 3월1일 12시에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3.1만세운동을 시작하려 했지만,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음식점)에서 오지를 않자 오후 2시 33세의 청년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기미독립 '오등은 자에 아...'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선언하노라. 이러한 사실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서 인류 평등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할 도리를 분명히 밝히고, 이러한 사실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하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이라고 하는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바이다...." 정재용 선생은 선언서를 읽고 경찰에 연행되었지만, 이곳에 모인 학생 시민들에 의해 대한독립 만세가 외쳐졌고 이 만세는 들불처럼 전국 방방 곡곡으로 퍼져나갔다. 그 날의 감격은 공원 곳곳에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3,1만세운동의 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탑골공원은 본래 고려시대에는 흥복사라는 사찰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건립한 원각사가 있던 곳인데 대한제국 시기 최초의 도시공원으로 조성된 것이다.
손자의 그림
'국보다!'
손자들이 원각사 석탑 설명문을 들여다보며 국보라는 말에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소리쳤다.
이곳에서 공원을 수호하고 있는 국보<원각사지 십층석탑>은 과거 숭례문에 이어 국보 2호로 불린 10층 탑이다. 1467년 (세조13년)에 세조의 왕명으로 원각사가 지어질 때 만들어졌으며 고려시대 석탑인 경천사 10층 석탑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팔각정
이 탑은 조선시대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이며 12m높이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탑구석 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들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특히 이곳에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보물 <대원각 사비>등 문화재가 있어, 3.1운동을 기념하는 독립운동 부조판, 손병희 선생님의 동상 등과 함께 독립운동 관련 역사탐방의 장소로 의미가 있다.
그러고 보니 손자의 아버지인 나의 자녀들과 함께 이곳에 방문한 기억이 새롭다.
40여 년 전 두 자녀와 함께
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1번 출구를 나와 150m 직진하면 만날 수 있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서울이야기 ⑬] 3.1만세 운동의 발원지-탑골공원 < 문화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