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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근대 미술을 이끈 화가, 채용신의 흔적을 만나다

by 데일리아트

전통과 근대를 잇는 예술가, 채용신이 운영한 공방과 그 속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집중 조명


한 폭의 그림 속에는 시간의 결이 서려 있다. 화가는 그 붓질 하나 하나로 한 시대를 기록하고, 또 다른 시대를 열어간다. 누군가는 왕의 얼굴을 그렸고, 누군가는 소박한 일상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격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예술로 답을 구한 이들은 얼마나 될까? 전통을 잇되, 새로운 시대의 감각을 더해 자신만의 화풍을 구축한 한 화가가 있다. 그의 붓끝이 남긴 흔적을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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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전경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오는 4월 27일까지 주제 전시 《채용신과 근대》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전북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채용신(蔡龍臣, 1850~1941) 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는 자리다. 조선 왕실의 초상화가로 명망을 떨친 그는 20세기 초 고향으로 돌아와 화조영모화, 산수화, 고사인물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제작하며 지역 미술의 흐름을 형성했다. 이번 전시는 2021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친 채용신 학술총서 발간과 학술 콜로키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다채로운 작품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국립전주박물관이 2023년에 새로 구입한 5점의 작품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그중에서도 <정몽주순절도(鄭夢周殉節圖)> 는 고려 말 충신 정몽주(1338~1392)의 최후를 묘사한 역사고사인물화로, 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대표작이다. 작품 속에서 선죽교 위에 쓰러진 정몽주, 선명한 철퇴 자국, 주변 건물과 나무의 채색 기법 등은 채용신의 정교한 필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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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 정몽주의 순절, 20세기 초, 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89, 국립전주박물관 제공


한편, <영모도> 는 밤하늘 아래 호랑이와 다람쥐를 그린 독특한 구도로, 채용신의 초기 영모화풍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는 전북의 문인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이 쓴 글이 포함되어 있어, 화가 채용신과 이정직, 그리고 그림이 제작된 호문당의 주인 송기면(宋基冕, 1882~1956) 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이처럼 단순한 그림을 넘어, 시대와 인물들이 얽힌 사적 맥락이 담긴 작품들이 이번 전시에서 다수 소개된다.


채용신은 20세기 초 익산에서 금마산방(1906~1923), 1926년 이후 정읍에서 채석강도화소를 운영하며 주문 제작 형식의 그림을 생산했다. 특히 그는 전통적인 궁중 화법과 근대적 감각을 접목한 작품을 제작하며, 공방을 통한 근대 미술 유통의 흐름을 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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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신, 호랑이와 다람쥐, 20세기 초, 종이에 색, 국립전주박물관 전주78791, 국립전주박물관 제공


그가 1914년에 제작한 <화조화 10폭 병풍> 은 화려한 색채와 구성을 갖춘 작품으로, 궁중 화조화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화조영모화 8폭 병풍> 에서는 사실적인 동물 표현이 눈길을 끈다. 어미 젖을 빠는 강아지, 풀을 뜯는 토끼, 작은 벌레를 바라보는 공작 한 쌍 등은 채용신만의 섬세한 감각과 독창적인 도상을 반영한다.


특히, 1928년에 제작된 <정자관을 쓴 선비 초상> 은 그의 초상화 기법이 근대 사진의 영향을 받은 특징 을 보여준다. 배경에 산수 병풍을 배치하고, 하단에 깔린 화문석을 통해 공간감을 극대화했으며, 향후 이름을 기입하기 위한 사각 제목란을 비워두는 등 채용신 후기 초상화의 제작 양상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전시는 4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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