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박정현의 시각] 오래도록 기억될 이름을 위하여

by 데일리아트

《지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전시 리뷰
2024. 1. 22. ~ 2025. 3. 2.

2605_6920_2851.jpg

전시장 입구 /사진: 박정현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를 타던 기자에게 초등학교 시절 짓궂은 친구들은 휠체어를 탄다며 놀리곤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봐도 가슴이 아플 만큼, 그 시절의 기억은 힘든 시간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지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라는 전시에 더욱 관심이 갔다.


이번 전시에서는 제 3회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작들을 선보인다. 가공하지 않은, 또는 순수한 예술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아르브뤼(art brut)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상은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 없이 예술 안에서 모두가 함께하는 사회를 추구한다. 역량 있는 신경 다양성(발달장애 등) 신진 작가들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2022년 제정되었다. 특히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건용(b.1942) 작가의 후원금을 기반으로 제정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뜻깊다. 이건용 작가는 격려의 의미를 담아 이번 전시에 2점의 작품을 출품하기도 했다.

2605_6929_652.jpg

이건용, Body Scape 76-1-2025, 2025 /사진: 박정현


전시장을 들어서자 대상 수상작인 이진원 작가의 작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가 눈길을 끈다. 이진원 작가의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는 작가의 이름을 불러주며 따스한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린 작품이다. 초등학교 시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작가는 중학교 특수반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선생님의 모습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밝은 색채와 활짝 웃는 모습으로 그려진 인물들의 환한 모습에서 작가가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서 느꼈던 기쁨과 행복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2605_6941_2227.jpg

이진원,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이은주 선생님, 2020 /사진: 박정현


한편, 최우수상 수상자인 강다연 작가는 거북이와 앵무새 등 동물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그중에서도 부엉이는 작가가 가장 애정을 갖는 모티프다. 까칠한 가시가 난 선인장 속에 부엉이 가족이 모여 있다. 관객을 바라보는 부엉이의 눈빛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있다. 나이프를 활용해 세밀하게 구성된 두꺼운 아크릴 물감의 질감은 마치 선인장 위에 난 가시가 선인장을 보호하듯 외부로부터 작가와 가족을 지킨다.


2605_6945_3159.jpg

강다연, 가족, 2024 /사진: 박정현


이번 전시에는 회화 작품뿐 아니라 영상 작업과 조각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그중에서도 권세진 작가의 작품이 흥미로웠다. 자동차와 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교통수단에 관심을 가진 작가는 평면과 영상을 넘나들며 여러 작품을 선보인다. 화사한 색감과 자세하게 묘사된 부품들의 모습과 촘촘하게 쓰인 명칭들이 돋보이는 작업은, 영상과 만나 음악과 속도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2605_6946_3854.jpg

권세진, 그린시티 저상버스, 2022 /사진: 박정현


타인의 표정과 감정에 관심을 가진 김동후 작가는 입체 조각을 통해 인물의 얼굴을 표현한다. 그는 입체 조각의 양면을 활용하여 각각의 면에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묘사한다. 입체 조각의 특성을 활용하여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은 사람의 감정과 그에 따른 표정의 변화를 작가만의 시각에서 재치 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2605_6948_4339.jpg

김동후, 아빠와 나, 2023 /사진: 박정현


전시장에는 체험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객들이 직접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전시장 안에 비치된 바퀴 달린 작은 의자는 상당히 인상 깊었다. 휠체어에 앉아서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간혹 작품과 작품의 제목을 적은 명패가 높게 전시되어 있어 작품을 관람할 때 어려움을 겪곤 한다. 이번 전시에 비치된 바퀴 달린 작은 의자는 작품을 관람하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 관객이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작품 관람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2605_6953_5230.jpg

전시장에 비치된 관람용 꼬마 의자 /사진: 박정현


이번 《지금, 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전시장애와 예술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예술을 창작하고 그것을 관람하는 다양한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앞으로도 아르브뤼미술상이 오래 지속되어 한국 예술계가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 더욱 포용력 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모두의 이름이 많은 사람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기를 꿈꿔 본다.


[박정현의 시각] 오래도록 기억될 이름을 위하여 < 리뷰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전북의 근대 미술을 이끈 화가, 채용신의 흔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