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해지는 3월, 감각을 깨우는 전시들이 서울 곳곳에서 열린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탐색하는 회화에서부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설치미술, 그리고 시뮬라크라 개념을 조명하는 철학적 풍경화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번 달 데일리아트가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리만머핀 서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 3개를 추천한다.
1. 서울시립미술관 《강명희-방문 Visit》
서울시립미술관은 강명희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 《강명희-방문 Visit》을 오는 6월 8일까지 서소문본관 1층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2년 한국을 떠나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한 한국 여성 작가 강명희를 재조명하며, 60여 년간 이어진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자리다. 자연의 본질과 존재의 관계를 탐구하며 독자적인 회화 영역을 구축한 강명희의 시기별·주제별 대표작이 전시된다.
전시 전경
전시는 ‘서광동리에 살면서’, ‘방문’, ‘비원(祕苑)’이라는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서광동리에 살면서’는 2007년 이후 제주에서 제작한 비교적 최근 작업과 제주에서의 삶을 반영한 회화를 선보인다. ‘방문’에서는 프랑스 생활과 남미 파타고니아, 남극, 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남긴 작품들이 소개된다. 작가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를 찾아 생생한 풍광을 화폭에 담았다. ‘비원’에서는 1960~80년대에 제작된 초기작을 중심으로, 보다 구상적이고 서술적인 경향을 띠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특히, 1972년 프랑스로 이주한 이후의 작품에서는 당시 한국의 시대적 상황과 작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
전시 전경
강명희의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세계와 자연과의 치열한 대화를 담고 있으며,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예술의 힘으로 위로하는 역할을 한다. 수많은 붓질을 거듭하며 생성과 소멸, 땅의 역사와 기억을 함축한 이번 전시는 강명희의 예술 세계를 깊이 있게 조망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2. 일민 미술관 《하이퍼 옐로우(Hyper Yellow)》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영상·퍼포먼스 작가 임민욱(57)이 10년 만의 국내 개인전 《하이퍼 옐로우(Hyper Yellow)》를 오는 4월 20일까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황해를 매개로 한국, 일본, 중국의 문화적 교차를 탐구하며, 관광객의 시선을 통해 낯선 곳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전시 포스터, 일민미술관 제공
전시는 총 3개의 전시실에서 펼쳐진다. 1전시실에는 일본 나라의 사찰 도다이지와 미지의 행성을 겹쳐놓은 거대한 지형 조형물 《솔라리스(Solaris)》(2025)가 설치된다. 코르크, 황토 분말, 부표 등을 활용한 이 작품은 자연이면서도 자연처럼 느껴지지 않는 풍경을 연출하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탐색한다.
2전시실에서는 3채널 영상 작업 《동해사(East Sea Story)》(2024)가 상영된다. 일본의 ‘불의 축제’(도다이지 오타이마츠)와 ‘물의 축제’(후카가와 하치만 마츠리)를 기록한 이 영상은 전통 제례가 외지 관광객에게 임시적 공동체성을 부여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임민욱 '솔라리스', 일민미술관 제공
3전시실에서는 자연물과 인공물을 결합한 조형 작품들이 전시된다. 《습합(Confluence)》(2023), 《산수 문전(Mountain & Water Patterned Tiles)》(2024~2025) 등은 갑오징어 뼈, 부표 등을 적층해 새로운 형상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또한,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가져온 다양한 사물을 활용한 《정원과 작업장(Garden & Field)》(2025)은 사물과 시간의 층위를 탐구한다.
3. 리만머핀 서울 《숭고한 시뮬라크라》
리만머핀 서울은 오는 3월 15일까지 앤디 세인트 루이스 기획의 《숭고한 시뮬라크라》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풍경화가 자연환경에 대한 경험을 매개하는 방식과 시뮬라크라의 개념을 탐구하며, 김윤신, 김창억, 홍순명, 스콧 칸의 작품을 조명한다.
전시 전경, 리만 머핀 서울 제공
전시는 플라톤이 제시한 재현의 이론과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1981)을 기반으로, 풍경화가 단순한 복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뮬라크라는 실재와 상상의 경계를 흐리는 개념으로, 《숭고한 시뮬라크라》는 이를 부정적 의미에서 벗어나 예술과 자연이 맺는 관계를 새롭게 해석한다.
김윤신의 작품은 자연환경의 리듬과 영적 요소를 표현하며, 회화의 본질적 기능이 시뮬라크라라는 점을 탐구한다. 김창억은 기하학적 추상과 직설적 구상의 변화를 거치며 풍경화가 현실과 재현을 통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홍순명은 사진을 차용한 회화를 통해 풍경의 초점을 모호하게 만들어 관습적 인식을 전복하며, 스콧 칸은 원근법과 명암을 조작해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는 독특한 풍경을 창조한다.
전시 전경, 리만 머핀 서울 제공
전시는 풍경화가 단순한 실재의 재현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경험과 숭고를 탐색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들뢰즈가 설명한 시뮬라크라의 미분적 관점과 변화하는 시점 속에서, 《숭고한 시뮬라크라》는 풍경화가 주관적 경험의 양상을 드러내는 예술 형식임을 강조한다.
데일리아트가 뽑은 3월 전시 -강명희-방문,하이퍼 옐로우,숭고한 시뮬라크라 < 전시 < 미술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