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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신성희의 꾸띠아주(재봉질)와 누아주(엮음)

by 데일리아트

갤러리 현대, 신성희 : Couturage, Nouage, 2025. 2. 5 – 3.16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서 1970년대는 추상과 단색화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 신성희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1971년에 졸업하고, 본격 활동을 시작한다. 신성희는 추상과 단색화로 물든 한국 화단에서 무엇을 새롭게 시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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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 시리즈, empty heart, 1971, acrylic on wallpaper, 145x 112x 3cm, 사진: 원정민


1971년 제2회 한국미술대상전에 출품하여 특별상을 수상하는데, 이때 출품한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 화풍의 3부작 회화 ‘공심(空心)’(1971)이다. 아직 뚜렷한 회화세계를 구축하지 못했던 23세 젊은 시절, 작가의 고민과 새로운 작업에 대한 설레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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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ting, 1974-82, Oil on jute, 116 x 89 cm, 출처: 갤러리 현대


초현실주의 작업은 그의 또 다른 대표적 회화세계인 ‘마대회화’ 와도 연결된다.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서 시각적 일루전을 일으키는 마대회화는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마대회화는 거친 마대 위에 또 다시 마대를 그려 회화와 회화의 지지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마대 작업을 통해 신성희는 탈 이미지의 작업세계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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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진동, Tremblement de Surface, 2007, Acrylic on canvas, 291 x 218cm, 출처: 갤러리 현대


1980년 작가는 새로움을 찾아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한다. 모노톤의 단색화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 화단에서 벗어나 새로운 회화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갤러리 현대의 이번 전시는 신성희 작가의 프랑스 이주 후의 작품을 조망한다. 신성희 회화 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나눈다. 마대회화(극사실 물성 회화)시리즈, 콜라주(구조공간) 시리즈, ‘꾸띠아주(박음회화)’ 시리즈, ‘「」「」’ 시리즈이다. 앞서 언급한 마대회화를 제외하고 대부분 프랑스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며 탄생한 작품이다. 전시명을 《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라고 한 만큼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은 독자적 화풍인 「꾸띠아주」와 「누아주」 시리즈가 다수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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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의 마무리 A solution to Continuity, 1993-1994, acrylic and oil on cavas, 전시 전경, 사진: 원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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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의 마무리 A solution to Continuity, 1994, acrylic and oil on cavas, 162x129.5x4.5cm, 작품 뒷면, 사진: 원정민


꾸띠아주(courturage)는 바느질 또는 재봉을 뜻하는 불어 'coutrue'에서 파생된 것으로 신성희 작가의 독특한 작업 방식을 나타낸다. 작가는 채색한 캔버스를 일정한 폭의 띠로 잘라내어 박음질로 이어 붙였다. 이러한 작업은 평면 회화의 경계를 넘어 다차원적인 공간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전시장에서 확인가능한 꾸띠아주 작품으로는 「연속성의 마무리」 시리즈가 있다. 특히 천장에 메달려 작품의 뒷면까지 확인할 수 있는 전시 방식이 인상적이다. 형형색색 칠해진 붓질은 뒷면에 은은하게 비치며 또 다른 작품을 보는 듯하다. 오히려 작품의 뒷면은 투과되는 빛에 의해 캔버스의 틀과 박음질되어 캔버스의 존재를 더 강조한다. 「마대회화 시리즈」를 통해 탈 이미지화하고, 캔버스 자체의 물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꾸띠아주 작품에서도 마대 회화 시리즈의 정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 신성희의 마대회화는 한국의 1970년대 추상작가들이 정신적인 것을 부각하기 위한 절제된 조형언어의 시기이다. 그러나 프랑스 체류 시기는 컬러풀한 색채를 사용해 신성희의 회화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러한 컬러풀한 색조는 이후 「누아주 시리즈」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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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mor of the Surface (Tremblement de Surface),1996, acrylic and oil on canvas, 91 × 77 × 4.5 cm, 출처: 갤러리 현대


이번 전시에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신성희 회화의 정점인 '누아주(nouage)'는 프랑스어로 ‘매듭짓기’, ‘엮기’를 의미한다. 기존의 캔버스 회화를 완성시킨 후 하나 또는 여러 겹을 중첩시킨 후, 직접 자르고 엮어서 하나의 새로운 조형적 구조를 만든다. 이는 일종의 직조 기법과 유사하지만 기존 직조 기법과 달리 회화적 요소가 남아있다. 단순한 끈이나 실이 아니라 잘라낸 캔버스 자체를 엮어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가진다. 기존의 그림을 물리적으로 변형하여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조형적 실험이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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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자화상 Self-Portrait (Autoportrait), 2002, found object, acrylic on canvas, 54 × 43.5 × 10 cm, 출처: 갤러리 현대 / (우) 자화상 측면, 사진: 원정민


이밖에도 누아주는 캔버스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시간성을 담고 있다. 누아주 기법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을 넘어 시간이 쌓이고 이어지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 작품이 완성된 후 해체되고 다시 엮이며 새로운 화면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연결되는 듯하다. 또한 캔버스 조각들이 교차하면서 공간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만들고, 이를 통해 평면적인 그림에서 벗어나 입체적 효과를 극대화 한다. 빛이 캔버스 틈 사이로 스며들며 작업에 따라 섬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만들어내며 캔버스 회화의 2차원적 개념에서 벗어나 조각적 특성을 지난 3차원적 회화로 확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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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로부터 From a painting,2009, found object, acrylic on canvas, 112x72x72cm, 사진: 원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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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갤러리 현대, 사진 이미지 캡처


신성희 작가는 화가로서, 회화와 캔버스를 평생 놓지 않았다.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시도함에 있어서도 자신의 신념과 추구하는 바를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있다. 신성희의 작업은 회화가 가진 기존의 의미를 넘어선 실험적 작업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2009년 갑작스러운 별세로 더 이상 신성희의 확장된 회화세계를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현재 갤러리 현대 1층에 전시되고 있는 ‘회화로부터’는 그의 유작으로 미완성 상태이다. 이 밖에도 생전에 프랑스 국기를 모티브로 한 3색 색띠 조형물을 프랑스 파리 개선문에 설치하려는 대규모 작업 또한 미완으로 남게 되었다. 다행히도 이번 전시를 통해 미완성 프로젝트와 관련된 시뮬레이션 작업 영상을 갤러리 현대 지하 1층에서 관람할 수 있으니 영상작업 또한 놓치지 않길 바란다.


작가의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재조명할 수 있는 《신성희: 꾸띠아주 누아주》는 2025년 3월 16일까지 진행된다. 관람 시간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월요일은 휴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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