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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4. 2024

낭만주의 음악과 회화

[같은 뿌리, 다른 언어 ②]

슈베르트


지난 기사에서 낭만주의 회화와 음악의 공통점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았다. 고전파의 형식 중심에서 탈피해, 서정성과 정감을 중시하는 음악으로 낭만파 음악을 정의했다. 낭만파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의 산물임도 알아봤다.


낭만파 음악이나 회화 모두 인간의 변화된 감정을 나타낸다는 측면에서 볼 때 '언어 활용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언어는 각각의 감정에 대한 고정된 덫이 아니라 사물과 감정의 존재 방식에 대한 상상적 공간을 열어주는 문이다. 19세기 선배들이 느꼈던 다양한 감정들은 낭만주의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더 넓어진 공간으로 나아갈 계기를 획득했다.


그리고 그 언어는 당연히 19세기라는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계몽주의 시대로 돌아가 보자. 데카르트에서 헤겔에 이르기까지의 철학 사조는 인간이 주체적인 이성의 진보로 윤리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게 했다. 그들이 주장한 ‘보편’은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완벽한 세상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환상은 깨졌다. 그들의 환상을 실현해 줄것으로 기대 했던 나폴레옹의 반동으로  ‘전체로서의 조화로운 세계’는 깨졌다. 다시 등장한 왕권과  산업화가 시민 생활의 기틀을 위협했다. 당대의 상황은 음악가와 화가가 그들의 언어로 표현해야 할 ‘지금 여기’가 되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이성은 마치 강남의 고급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꿈꾸게 하지만, 현실의 나는 편의점에서 3천원짜리 도시락을 먹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런 자각은 편의점 도시락이 만들어지는 위생적 과정과 칼로리의 적정성에 대한 이성적 추론이 아니다. 3천원짜리 도시락에 돈까스가 2개인가 3개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덴마크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Søren Aabye Kierkegaard, 1813-1855)의 ‘실존’은 이처럼 물신성에 점령된 ‘실존적 인간’들이 현세의 고통을 넘어서 새로운 단계의 삶을 선택해야 한다는 외침이었다. 그가 주창한 최종 단계는 ‘종교적 경건함의 단계’이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보자.

밀레, 이삭 줍는 여인들, 1857, 오르세미술관

이 그림이 목가적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제목이 <추수하는 여인들>이 아니라 <이삭 줍는 여인들>이다. 농사를 지을 형편도 못되는 최하층민들이 굶주림을 면하려고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이삭을 줍고 있다. 추수의 풍요가 아니라 최하층민 여인들의 고단한 삶을 그린 것이다. 다만, 밀레는 고단함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비참한 삶 속에서 진실로 경건하게 신의 은총을 바라는 절실함을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낭만주의의 키워드인 ‘현실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와 그에 대한 개개인의 감정’을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농촌에서 각자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이삭을 줍는 농민을 통해 드러났다면, 도시에는 가족과 친구들 끼리끼리의 모임을 통해 ‘내면의 자유를 수긍’하는 몫과 탈출구를 찾으려 했다.


그 시민들이 음악의 언어로 불러낸 낭만파 작곡가 슈베르트를 만나보자.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1797-1828)는 ‘상상력을 위하여 장엄한 경치를 찾아 피아노를 치러 가던 시대’를 살았다. 나폴레옹 몰락 이후 ‘빈 체제’(Vienna settlement, 1815년 빈 회의 이후 프랑스 혁명 이전의 상태를 부활시켜 원래의 절대왕정체제로 돌아감)에서 오스트리아 빈 시민들에게 최고의 덕목은 질서와 평화였다. 정치에서 배제된 중간 계급은 음악, 연극, 가정 음악회 등 가정 안에서 행복을 구하려는 강요된 평화의 시대를 살았다.


유럽의 시민들은 살롱에서 논쟁을 벌이기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담한 거실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음악을 즐기는 생활 양식을 선택하였다.


가정 음악회로 상징되는 당시의 음악은 예술가가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낭만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낭만주의 시대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인간과 인간의 감정, 그리고 상처에 대해 음악과 그림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좋게 표현하면 자율성이고, 현실로 보자면 부활한 절대왕정에서 배제된 각 개인들이 택할 수밖에 없었던 몸부림이기도 했다. 과도한 감정의 노출, 자신의 내면 충동 등 모든 근대 예술의 일반적 경향이 낭만주의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다. 낭만파 음악 특징 중 하나는 문학적 소재를 음악으로 만든 점이다. 이 두 요소, 문학과 음악을 융합한 선구자가 슈베르트다. 살아생전 1,000곡 이상을 썼는데 그중 600여 곡이 가곡이다. 전설, 역사, 신비, 사랑을 담은 시들은 가곡의 가사로 연결되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도 빌헬름 뮐러의 시에 착안한 것이다. 당시 최고의 악기인 피아노로 시와 선율을 하나로 융합했다. 그래서 가사와 음악의 내용을 충분히 표현한 예술 가곡이 탄생했다.


특히 피아노 변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피아노 변주를 통해서 노래의 표현력을 한껏 끌어올렸다. 슈베르트가 작곡한 가곡에서 피아노의 역할은  종속적인 반주의 기능에서 벗어나 선율과 동반자의 관계를 이룬다. 피아노는 선율과 마찬가지로 가사의 의미를 표현하고 보강하며 때로는 선율 대신에 피아노가 노래하기도 한다.

<마왕>의 피아노 반주를 보자. 잇단음표 반주가 마치 말발굽의 ‘따가닥 따가닥’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낭만주의 시대 대표적 작곡가 슈베르트가 자신의 내면 깊숙이 침잠하며 느꼈던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현한 곡이었다. 그 슈베르트는 또한 당시 빈 체제의 영향으로 가정과 동료와 같은 가장 친근한 사람들과 ‘가정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인간의 진솔한 고백과 상처를 음악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할까?

쉬빈트가 그린

슈베르트의 초기 실내악은 가족 친지과 함께 즐길 목적으로 작곡하였다. 작품 경향은 전통적인 고전 형식으로 하이든과 모짜르트의 영향을 받았는데 대표곡이 유명한 <송어 5중주>이다.



끼리끼리 즐기는 인간의 감성이 한 얼굴이라면, 폭발적 감성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슈베르트의 음악과 비교되는 화가가 독일 낭만주의 대표 화가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 1774-1840)이다.

(1824, 함부르크미술관)

그의 작품 <북극해>(1824, 함부르크미술관)는 인간의 의지를 굴복시킨 자연의 힘을 상징하기 위해 거석 기념물처럼 포개진 얼음장이 그려져 있다. 무한정 외롭게 보이는 이 장면은 어쩌면 프리드리히 자신의 고독감을 드러낸 것인지도 모른다. 이 그림은 1819-1820년에 윌리엄 패리가 북극을 탐험하던 중에 겪은 사건을 표현한것이다. 위험과 공포가 자연으로부터 온 것이든, 사회 정치적으로 온 것이든 낭만주의 회화와 음악은 거대한 외부 상황에 대한 인간의 숭고한 감정을 격정적으로 발산했다.


이러한 감정의 발산은 슈베르트의 섬세한 서정으로 가득 찬 피아노 소나타와 폭발적 정서를 드러낸 환상곡들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슈베르트 피아노곡 <방랑자 환상곡>이 대표적이다. 이 곡은 비참한 자신의 모습과 내면에 대한 집착, 그리고 먼 곳에 대한 그리움을 가리킨다.


흥미롭게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Maurizio Pollini, 1942-2024)의 1996년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슈만의 판타지’ 음반의 표지가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1818)이다. 슈베르트와 프리드리히가 느꼈을 치명적인 감성 표현을 피아니스트 폴리니도 공감한 듯하다.


화가 프리드리히는 북유럽 해안의 빙벽과 마주하는 방황자의 내면을  그렸다.  을씨년스럽고 황량한 풍경 앞에서 인간이 가늠할 수 없는 공포, 공포를 넘어서 숭고미를 그려냈다.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과 <교향곡 8번 미완성> 역시 터질 듯한 자기 성찰과 절망의 상처가 보이고 들리는 듯하다.

<출처 : 위키피디아>

이번 편에서는 31세로 요절한 낭만파 음악가 슈베르트에 대해서 낭만주의 회화와 함께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19세기 낭만주의는 합리성의 외피를 쓴 예술가들이스스로의 정신적 자율성을 얻어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은 반혁명의 부르주아 시대에 맞선 사람들이었다.


음악과 회화를 통한 미적 경험은 마음 전체 또는 상상력을 포착한다. 이것은 생생히 전달하여 결과적으로 환희를 준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작곡가와 화가들이 스스로 느꼈고, 감상자에게 전달한 그 환희의 경험은 매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질문과 대답이었다.


시인 라킨(Philip Larkin, 1922-1985)의 시 ‘Love Songs in Age’에서 첫 연을 읽을 때 나의 상상력이 불러내는 악보를 찾아내서 이미지를 채워내는 과정과 동일할 것이다.


"예전의 노래가 이제는 사랑 그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월의 무게로 

다가오듯이....."


Love Song in Ages


She kept her songs, they kept so little space,


The covers pleased her:


One bleached from lying in a sunny place,


One marked in circles by a vase of water,


One mended, when a tidy fit had seized her,


And coloured, by her daughter -


..........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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