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술 속 동물 이야기 ①] 사랑과 자비의 상징

by 데일리아트

사랑과 자비의 상징 까마귀


봄과 태양은 따뜻하다. 이에 만물이 생동한다. 앞편에서 보았듯이 봄과 태양, 시작을 상징하는 존재는 삼족오, 즉 세 발 까마귀였다. 그런데 까마귀는 시작뿐만이 아니라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과 불교문화 속 이상세계도 상징한다고 한다. 그 숨겨진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새로운 시작으로 연 우리 미술 속 숨은 동물 이야기, 삼족오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를 한 번 살펴보자.


사랑의 징검다리


최근 복원된 경주 ‘월정교(月淨橋)’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야경명소이다. 이 월정교에는 신라를 대표하는 고승인 ‘원효대사(元曉大師)’와 ‘요석공주(瑤石公主)’의 러브스토리가 전한다. 월정교를 건너다 물에 젖은 원효대사가 향한 곳엔 요석공주의 거처인 ‘요석궁(瑤石宮)’이 있었고, 이곳에서 두 남녀는 사랑에 빠져 신라 대학자인 ‘설총(薛摠)’을 낳게 된다. 이처럼, 예로부터 다리는 먼 거리를 쉽게 왕래할 수 있기에 남녀가 서로 만나는 장소로 그려지곤 한다.

2683_7168_107.jpg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러브스토리가 담긴 경주 월정교


동양 문화 속 사랑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최초의 존재는 바로 까마귀이다. 옛날, 어느 나라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는데 천을 곱게 만들기에 ‘직녀(織女)’라고 하였다. 직녀가 성장하여 어엿한 여인이 되자 그의 아버지는 총각을 사위로 맞이하였는데 소를 끌고 다니는 목동이기에 ‘견우(牽牛)’라고 불렀다. 이렇게 두 청춘은 결혼을 시작으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2683_7169_1052.jpg

덕흥리벽화고분 천장의 견우와 직녀(고구려 408년)


그런데 어느 날, ‘천제(天帝)’가 두 부부에게 “너희들의 천직은 소에게 풀을 먹이고 천을 짜는 것이다. 지금 너희들이 일을 게을리 하니 용서할 수 없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갈라져 ‘칠월칠석(七月七夕)’에 한 번씩만 만나도록 하여라!”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던 두 부부는 생이별을 하였고, 은하수를 중심으로 견우는 동쪽에, 직녀는 서쪽으로 끌려가 묵묵히 자신의 본업에만 매진하였다.


하지만 사랑은 어쩔 수 없는 법, 서로 오고 갈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진 두 부부는 날이 갈수록 그리운 정이 가슴에 사무쳤다. 어느덧, 칠월칠석날이 되었다. 드디어 두 부부는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은하수를 건너지 못하여 한없이 서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2683_7170_1144.jpg

남원 광한루원의 오작교


바로 그때, 견우와 직녀의 슬픈 눈물은 비가 되어 내렸고 이 소식을 들은 까치와 까마귀는 두 사람의 슬픈 사연을 해결하고자 은하수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얼른 등에 올라타세요.” 까치와 까마귀 떼가 만든 다리 덕분에 견우와 직녀는 드디어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오늘날에도 칠월칠석날이 되면 까치들은 두 부부를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고 한다. 바로, 사랑을 연결해 주는 ‘오작교(烏鵲橋)’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세 개의 다리, 왕성한 에너지의 상징

2683_7171_1331.jpg

진파리1호분 널방 천장벽화의 삼족오(고구려 5-6세기)


우리나라 미술에 표현된 삼족오는 삼국시대부터 찾아볼 수 있다. 고구려 미술 속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긴 갈기와 넓은 꼬리 깃털을 달린 모습이 특이하긴 하나 이와 같은 장식적인 요소를 제외한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이름 그대로 다리가 세 개 달려있다는 것이다. 삼족오의 다리가 세 개인 이유는 앞서 살펴본 중국 한나라 『춘추원명포(春秋元命包)』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태양은 ‘양(陽)’을 상징하고 숫자 중 ‘3’ 또한 ‘양수(陽數)’이니 태양에 사는 까마귀는 다리가 셋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주역(周易)』 내용을 살펴보면 “팔괘(八卦) 가운데 음(陰)을 상징하는 것은 ‘곤(坤)’이요, 양을 상징하는 건 ‘건(乾)’이기에 건괘의 상징으로 다리가 세 개다.”라는 기록도 확인된다.


불교문화의 삼족오


불교미술의 삼족오를 볼 수 있는 사례는 앞편에서 한 번 살펴보았던 『본생담(本生談, Jataka)』이다. 어느 날, 까마귀들의 왕인 ‘소불다라(蘇弗多羅)’의 왕비가 인간의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에 병이 들어 점점 야위어 갔다. 더군다나 왕비는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기에 소불다라의 걱정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이 소식을 들은 한 젊은 까마귀가 찾아와 인간의 음식을 구해오겠다고 하였고 소불다라는 왕비의 건강이 좋아지면 큰 상을 내리겠노라 약속했다.


이내 궁전으로 몰래 잠입한 젊은 까마귀는 몇 번씩이나 음식을 빼돌렸고 이 과정에서 인간 왕을 시봉하던 시녀들이 다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신하를 시켜 까마귀를 잡은 인간 왕은 젊은 까마귀에게 연유를 물었고, 까마귀가 사실대로 말하자 인간 왕은 놀라서 “신기하구나, 사람조차도 자기 주인에게 이토록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내지 못하는데 까마귀가 이와 같은 일을 하였구나.”라며 감동하여 음식을 마음껏 가져가도록 허락했다.


2683_7174_1849.jpg

회암사명 약사삼존도 일광보살의 삼족오(조선 1565년, 국립중앙박물관)


이후, 인간 왕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늘이시여, 저 까마귀 모습을 해 속에 옮겨 넣어 모든 인간의 빛이 되게 하소서.”라고 기원하였고, 그 후부터 까마귀의 형상이 태양에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이 내용은 태양조의 성격을 지닌 삼족오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삼족오의 관념이 불교에 자리 잡을 정도로 동아시아 문화 속에 깊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일까? 불교문화 속 삼족오는 태양을 상징하는 일광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져 일광보살이 착용한 ‘보관(寶冠)’ 위에 얹어진 문양으로 자주 표현된다.


2683_7175_1952.jpg

가사 일광첩에 표현된 삼족오(국립민속박물관)


2683_7176_2144.jpg

궁중용 일기의 삼족오(대한제국 20세기, 국립고궁박물관)


불교미술 속 삼족오는 승려들이 입던 복식 중 하나인 ‘가사(袈裟)’에도 등장한다. 삼족오는 가사를 구성하는 장식물인 ‘일광첩(日光貼)’ 문양으로 수놓아진다. 일광첩과 ‘월광첩(月光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를 통해 가사가 복식의 개념에서 신앙의 대상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신격의 상징을 부착함으로써 가사를 신성시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마치며



동양 문화 속 위대한 태양의 정령인 까마귀는 사람들의 소망을 하늘에 전달하는 신의 ‘사자(使者)’로, 뜨거운 태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신령한 ‘서조(瑞鳥)’로 인식되었다.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삼족오는 일광보살 · 월광보살의 화신으로 등장하여 장수를 주관하는 치성광여래 부처님과 병을 치료해 주는 약사여래 부처님을 보좌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불교문화 속 용과 봉황만큼이나 우리에게 오랜 사랑을 받아온 삼족오는 새로운 아침에 희망을 품는 우리 민족들에게 새로운 시작과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미술 속 동물 이야기 ①] 사랑과 자비의 상징 - 세 발 까마귀 삼족오(三足烏) 2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keyword
작가의 이전글[고영애의 건축기행] 독일 프랑크푸르트 현대미술관